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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20-0203.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사회

by 조흥식 2023. 11. 27.

2020-0203. 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사회(팔당숯불갈비 건대입구역, 자양동)

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산비리속속리산(山非離俗俗離山)을 찾아서

@황준량(黃俊良), 금계집(錦溪集)

*2일 유신(維新 충주(忠州))에 도착하여 속리산을 유람하는 김중원(金重遠 김홍도(金弘度))에게 부치다

오래된 길에 사람 자취 사라져 울긋불긋 이끼가 끼었는데,

산이 속세를 떠난 게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구나!”

 

*어느새 바람도 제법 쌀쌀해지고 일교차도 커지면서 반팔을 입은 사람들도 부쩍 줄었다.

조금 더 있으면 곱게 물든 단풍을 즐기러 산행(山行)에 나설 이들이 많을 것이다.

단풍 명소의 하나로 속리산(俗離山)을 꼽는데,

이 산에 관한 명구로 山非離俗俗離山이 자주 회자(膾炙)된다.

 

*이 구절이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의 작품이라고 한다.

더 찾아보면 그가 886(헌강왕12) 속리산에 와서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

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은데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

산이 속세를 떠난 게 아니라 속세가 산을 떠났구나이라는 시구를 지어

산 이름이 속리산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런데 막상 최치원의 전기(傳記)를 수록한 삼국사기(三國史記)나 문집인

계원필경집(桂苑筆耕集고운집(孤雲集)을 검색해 보면

그가 이 구절을 지었다는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만년에 산천을 떠돌며 은거 생활을 하던 최치원이 어쩌면 속리산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확한 근거가 없는 이상, 최치원 창작설은 일단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면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누가 지었을까?

이수광(李睟光, 1563~1628)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이러한 내용이 있다.

임제(林悌, 1549~1587)가 속리산에 들어가 中庸800번 읽고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시구를 얻었으니, 中庸의 말을 응용한 것이다.

 

*여기서 中庸의 말中庸 13장의 道不遠人(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을 가리킨다.

그런데 정작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임제의 문집인 임백호집(林白湖集)에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임제의 종제(從弟) 임서(林㥠, 1570~1624)1617(광해군9)에 임백호집을 간행하면서 쓴

발문과 임백호집의 내용에 따르면, 임제가 20살이 되던 1568(선조1)

대곡(大谷) 성운(成運, 1497~1579)의 문하에서 中庸을 배운 뒤

속리산에 들어가 몇 년 동안 글을 읽었다고 한다.

비록 임백호집에 없더라도 그의 작품이 맞다면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은 속리산 시절에 지었을 것이며,

적어도 이수광은 임제의 작품으로 알고 있었다.

 

*훗날 영남(嶺南)의 선비 노우(魯宇) 정충필(鄭忠弼, 1725~1789)

1776(정조즉위) 고향 친구인 이헌유(李憲儒, 1733~1804)에게 보낸 시에서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구절이 보인다.

때마침 이헌유는 옥천 군수(沃川郡守)가 되었는데,

당시 옥천이 속리산 서남쪽으로 하루거리에 있었다.

예전부터 속리산 유람을 하고 싶었던 정충필이 이헌유의 옥천 부임 소식을

듣고서 반가운 마음을 담아 이 시구를 지어 보낸 것이다.

임제가 이 구절을 지었다던 때로부터 약 200년이 흐른 당시에도

道不遠人人遠道, 山非離俗俗離山.’속리산 관련 명구로 사용된 예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山非離俗俗離山을 쓴 사람이 있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 금계(錦溪) 황준량(黃俊良 1517~1563)인데,

그의 문집인 금계집(錦溪集)에 따르면 1557(명종12) 32일에 지었다고 한다.

이보다 한 해 전인 1556년 겨울에 황준량은 병으로 사직한 뒤 이곳저곳을 유람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충주(忠州)에 도착했을 때, 그와 교분이 있던 김홍도(金弘度, 1524~1557)가 마침 속리산을 유람하고 있었다.

이때 황준량이 그에게 지어 보낸 시의 맨 앞에 古徑無人紫蘚斑, 山非離俗俗離山.’이라는 구절이 보이는데,

현재로서는 山非離俗俗離山이 가장 먼저 쓰인 사례로 보인다.

 

*‘山非離俗俗離山에 대해 江似龍黑黑龍江 강이 검은 용을 닮아 흑룡강이네이라는 누군가의 대구(對句)를 보았다.

문맹(文盲)조차 자기도 모르게 성어(成語)를 입에 올린다고 할 만큼 중국인들이

한국인에 비해 한문(漢文)이 언어생활에 녹아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江似龍黑黑龍江만큼은 왠지 모르게 山非離俗俗離山과 같은 자연스러운 멋이 느껴지지 않는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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