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10. 2020-2021 당선총재 가버너스쿨 입교
*기간: 2020,2,11~2,14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세인트찰스 Q센터(시카고)
*출국: 2,10,월,10:40(인천)~08:30(일리노이주 시카고) *KE 037 대한항공
*입국: 2,15,금,11:25(시카고)~16:30(인천) *KE 038 대한항공
小學(해동속소학)
小學(해동속소학)
@박재형(朴在馨)은 小學을 朝鮮의 새로운 古典으로 대중화(창조)시켰다
.김유신(金庾信)이 어렸을 때에 母親은 매일 엄한 訓戒(훈계)를 하여 함부로 교유하지 못하게 하였다.
.하루는 우연히 여자 노예인 천관녀(天官)의 집에서 묵고 오자,
어머니가 면전에서 꾸짖어 말하였다
“나는 이제 늙어서 네가 자라 功名을 세우기를 밤낮으로 바라고 있는데
지금 어린아이들과 어울려 창녀가 있는 술집에서 놀다 온 게냐?” 하면서 하염없이 울었다.
.김유신은 즉시 母親에서 다시는 그 집을 지나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하루는 술에 취해 말이 옛길을 따라 잘못 창녀가 있는 집에 이르렀다
공(김유신)은 이를 깨닫고 타고온 말을 베어 안장을 버리고 돌아갔다
@현곡(玄谷) 조위한(趙緯韓)이 한번은 옥당(玉堂)에서 숙직하는데,
.학사(學士) 한 사람이 책을 보다가 마치지 못하고 말했다.
“책을 덮으면 곧 잊어버리니 보아서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공이 말했다.
사람이 밥을 먹으면 밥이 항상 뱃속에 남아있지 않아서 소화되어
변이 되지만 그 정기(精氣)가 절로 능히 신체를 윤택하게 한다.
독서하는 것도 이와 같아서 보고나서 곧 잊어버려도 절로 크게
진보하는 효험이 있으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옛날에는 순장(殉葬)의 풍습이 있었다.
.부여(夫餘)의 순장은 삼국지(三國志)에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으며,
.가야(伽倻)의 순장은 경남 창녕 고분에서 발견된 가야 소녀의 유골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다.
.조선시대 순장의 풍습중에 순장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책이었다.
.1794년, 정조는 창덕궁 주합루(宙合樓)에 四書三經 1질(帙)을
특별히 잘 보관하라고 규장각 각신(閣臣)에게 일러 놓았다.
효종의 영릉(寧陵)에는 심경(心經)을 순장하였고
영조의 원릉(元陵)에는 小學을 순장하였는데 정조도 그 뜻을 계승하겠다는 것이었다.
.만일 정조의 말이 사실이라면, 효종은 心經의 제왕이고,
영조는 小學의 제왕이고, 정조는 四書三經의 제왕이라는 말이 된다.
.그런데 효종~정조는 조금 근사해 보이지만, 영조는 약간 빈약해 보인다
大學 공부가 안된 어린사람이 공부하는 책이 小學이기 때문이다
영조는 서른에 가까운 나이에 늦게 동궁이 되어서야
小學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만학도였고,
오래오래 살아 노년기에 자신의 입학을 회고하며
다시 小學을 공부하는 즐거움을 누린 노학자였다.
小學은 장년과 노년의 자기 삶을 가다듬는 빛나는 책이었고
그런 의미에서 小學의 제왕이라는 칭호는 영조에게 영예로운 이름이 될 수 있었다.
@小學은 어려운 책이었다.
.예조 관리(세종시대)들은 小學에 이해가 안되는 구절이 많고
참조할 해석서가 충분하지 않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당시, 小學 해석서는 설장수(偰長壽)가 小學을 중국어로 풀이한 소학직해(小學直解)였는데,
이 책은 노걸대(老乞大), 박통사(朴通事)와 함께 통역관을
양성하는 사역원에서 중국어 학습의 기본 교재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 간행된 小學의 학술적인 주해서는 하사신(何士信)의 소학집성(小學集成) 이었는데,
.중종대에 완성된 번역소학(飜譯小學)은 이 책을 저본으로 삼아
비록 의역 중심의 불완전한 선역이었지만 최초로 小學을 한글로 해석하였다.
.성종대 이후 조선 士林 사회에서 인기가 있었던 小學 주해서는
명나라 정유(程愈)가 지은 소학집설(小學集說』이었는데,
사림의 취향이 반영된 듯 선조대에 출간된 소학언해(小學諺解)는
이 책을 저본으로 삼아 직역 중심으로 小學을 완역하였다.
.소학언해의 완성에는 이황(李滉)의 문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때문인 듯 경상도 방언의 영향이 감지된다.
.선조대에 출현한 이이(李珥)의 소학집주(小學集註)는
기왕의 小學 주해서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나온
조선 小學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는데,
.조선후기 점차 小學集註가 널리 확산됨에 따라
소학집주와 소학언해가 서로 일치하지않는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고,
.마침내 영조는 소학집주에 훈의와 언해를 가하여
소학훈의(小學訓義)를 제작함으로써 조선 小學의 종결자가 되었다.
.영조는 단순히 小學을 공부만 했던 인물이 아니라
조선의 小學 전통을 완성한 인물이었고
그렇게 본다면, 小學의 제왕이라는 이름은 더욱 그에게 합당하다.
@小學동자의 의문이 있다
.조선 전기 性理學이 정착하던 시기에 한훤당 김굉필(金宏弼)가
소학동자(小學童子)를 자처한것은 시대의 전위에 섰다는 비장한 기운마저 전해 주는 면이 있지만,
.영조같은 제왕이 소학동자를 자처한것은 완고한 보수를 고집하는
답답한 느낌을 전해 주는 면이 있지 않은가?
.소학은 이념의 책이기에 앞서 실천의 책이었고,
실천이란? 불변의 사회에서 나무처럼 서있는 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에서 깃발처럼 펄럭이는 동적인 것이었다.
.영조가 小學을 중시한것은 실천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이익(李瀷)의 학맥에서 안정복(安鼎福)의 하학지남(下學指南), 황덕길(黃德吉)의 동현학칙(東賢學則)...
끊임 없이 하학(下學)의 문제를 탐구했던것도 변화하는
세상에 대응하여 이상적인 일상을 창조하려는 실천적 노력이었다.
.황덕길의 손제자(孫弟子) 박재형이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을 지은것은
小學의 의미를 연구하고, 그 가치를 실천해 왔던 조선의
주자학 전통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생각된다.
.小學이 중국의 고전이라면,
.해동속소학은 조선의 가언선행(嘉言善行)으로 구성된 조선의 고전이다
@김유신은 母親의 훈계를 듣고 창가(娼家)에 가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이를 어기게 되자 가차없이 말을 베어 버렸던 일화는 어떠한가?
.이익의 해동악부(海東樂府), 오광운(吳光運)의 해동악부,
이학규(李學逵)의 영남악부(嶺南樂府)에 실렸던 유명한 일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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