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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0-0710. 지구임원골프 7월 정기월례회(사우회, 여주CC)

by 조흥식 2023. 12. 14.

2020-0710. 지구임원골프 7월 정기월례회(사우회, 여주CC)

간통 사건

 

 

 

 

 

간통 사건

@1798, 양반집 며느리와 장용위 병사의 간통사건

정말 양반집 부인인지 몰랐습니다

저는 노는 여자(遊女, 유녀)인줄 알고 그랬습니다...”

시아버지와 서고모의 행악을 견딜 수 없어 이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양반집 부인은 정관채(함경도 병마절도사)의 며느리로써,

그녀의 남편은 정관채의 수양아들(동생 정양채의 아들)이었다

.동생 정양채(한성부 서윤)도 주요 관직자였다

.가칭 청담동 며느리로써, 장용위 병사와 시골마을에서 간통후에

내처, 그 남자의 집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남자는 곤장을 맞고 풀려났으며,

며느리는 중벌을 받았는데 노비가 되어 제주도로 쫓겨났다

.장용위 병사의 직급은 양인 이하의 계급으로 볼수있다

며느리는 불륜의 이유를 시댁식구에 대한 행악을 들며 시집살이에

불만을 제기하였다

 

@평안도 병마절도사가 동생이 사랑했던 기생과 간통하였다

.형은 기생의 머리를 올려주고 장래를 약속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비록 수청기였으나, 거의 첩의 역할을 하던 관계였기 때문이다

.형은 기생에게 반하여 한양으로 동행하여 살았는데,

동생과 삼각관계가 된것이다

 

@홍대협(홍문관 고위 관직자)은 며느리와 간통하였다

.아들은 충격을 받아 정신적 파탄을 겪고, 친정부친은 음독했다

.禮儀之國夷狄之國(이적지국)으로 혼탁람으로 변질된 것이다

 

@1800, 노상추는 홍주 영장의 수망으로 올라 비답을 받았다

.1801, 천주교인들이 들끊는 홍주에 부임하여 사학죄인과 씨름한다

7개월간 사학죄인을 체포, 심문으로 지친것이다

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형벌도 겁내지 않았다

7개월만에 근무성적 평가에서 ()를 받아 홍주에서 해임되었다

.정암 조광조가 살아올수 없는가? 고민에 빠진다

 

@조선, 佛敎는 비주류로써 풍속을 통제가 강력했다

.1468(세조14), 정경부인의 끔찍한 간통 괴소문이 나돌았다

(오성정)의 처(정씨부인, 판사 정지담의 딸)는 남편이 일찍 죽고,

죽은 남편의 천도를 위해 불사를 일으키며 절에 자주 드나들었다...

(설준, 심명, 혜초...)와 번갈아 사통했다

임신하여 누설될까봐 잠시 고향으로 피하여 아이를 낳았다...?”

.(오성정)는 경녕군의 아들이니 처(정씨부인)은 집안의 종실이었다

특히 중(설준)을 사랑하여 노비를 30구나 주었다는 소문이 있어

스캔들을 비꼬는 가 유행하였다

오성정 부인 정씨는 까까중과 사통하여 새까중을 낳았다네...

장안의 화류객들에게 말하노니 어찌 왕래하여 인연을 맺지 않는가?”

 

@1428(세종10), 사헌부는 왕에게 추국을 건의하였다

오진이 죽자, 차씨부인은 중(명담)과 관계가 의심스럽다...”

.(명담)이 차씨부인 집에 출입하다가 사헌부에 체포된 것이다

중의 도첩상자 안에 여자의 머리장식등 증거물이 나왔다

.풍속교화를 이유로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의 의도를 알수있다

.經國大典, 婦女上寺의 금지조항

儒生과 부녀자들이 절에 가면 곤장 100대에 처한다...”

목표는 부녀자를 대상으로 정한 악법중의 일부이다

 

.儒敎는 내세가 없고 복을 비는것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교를 공부함은 정치성이 강하여 각종 정치원리를 포함되므로

곧 정치 참여를 뜻하므로 여성에게는 어려운 난관이었다

독서할때는 선비지만, 정치에 참여하면 대부로 신분이 바뀐다

학문으로 공부하다보면 벼슬을 얻을수 있고,

벼슬을 그만두면 학자로 명망을 남길수 있기 때문이다

.유학 대표 경전들은 과거시험 과목으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1492(성종23), 인수대비~인혜대비는 불교를 옹호하는 언문을

성종에게 올리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묵살되었다

그러나, 불교가 살아남는 결정적인 계기로 발전한 공로는 틀림없다

민심의 동요를 막고, 불교는 백성들의 마음의 위안을 준다는 것이다

 

@1423(세종5), 하연(대사헌)의 독대 보고내용

유씨부인(이귀산의 처, 관찰사)이 조서로(지신사 1382~1445)

간통을 하였으니 국문을 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유씨부인을 옥에 가둔뒤, 보름후 참형으로 가중처벌이 내려졌다

조서로(지신사)는 영월로 귀양을 보낸다

.유씨부인과 조서로는 먼 친척사이 관계였기에 친밀했다

유씨부인은 어렸을때 부친이 죽자, 여승이 되었는데

친척 조서로(14)의 집에 자주 들나들어 우정이 발전된 것이다

.실록에는 ()”로 기록되었고, 조서로의 모친에게 탄로나는 바람에

출입이 어려웠고 많은 미움을 받았던 것이다

.훗날, 유씨부인은 평민으로 환속하여 이귀산과 혼인하였다

조서로는 이귀산집에 자주 출입하며 대우를 잘 받았다

후한 대접과 좋은 말도 선물로 받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는데,

.유씨부인이 몰래 조서로에게 연애편지(쪽지)를 보냈는데 들통났다

木卜(목복) 집에서 만나 이 울울하게맺힌 정을 풀기 바란다...”

을 풀어 쓴 문장은 조서로의 여동생의 아들(조카) 박동문 집에서

만나서 회포를 풀바는 내용이 잘못 전달되었는지? 탄로가 났는데,

이미 1년전부터 정을 통해왔던 것이다

 

.세종은 엄명을 내린다

조서로는 부친(조반)이 조선 개국공신의 맏아들이라 형을 가할수

없으나, 유씨부인은 대신의 아내로써 음탕한 짓을 벌렸으니...”

.유씨부인은 3일간 저작거리에 묶여있다가 참수를 당하였다

양반집의 부인이라 벌이 무거웠다

.조서로는 귀양자체가 매우 고통스런 형벌이었다

20년간 관직에 복귀하지 못하고,

죽은후 단종에게 告身(관리 임명장)을 받게 된다

22, 문과급제를 하였고

24, 이조좌랑으로 승승장구하였다

건의를 잘못올려 잠시 좌천되었으나 1년후 복귀하여

의정부~사헌부, 지신사(차후 도승지)...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44, 도승지...왕의 최측근, 세종초기 중국사신접대에 두각을 보였다

.25년전의 우정과 사랑이 간통으로 승화되어 유씨부인에게 빠진것이다

유씨부인은 본인에게 잘해준 남편을 배신하고, 죄책감에 빠지는데...

 

@남녀의 사랑과 우정이 공존할까?

.1614(광해군6), 칠서의 옥 광해군을 몰아내고 영창대군을 세우자?”

.대부분 주모자는 체포되어 처형되었으나, 박치의는 도주했던 시기이다

.오언관()~이여순()는 박치의로 오인 신고되어 체포되었는데

나는 영일이 아니라 여순이다...부사를 지낸 이귀의 딸...

죽은 김자겸(유학)의 처...17세부터 글을 배웠는데

세상에는 마음이 없고, 15세에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사는데는

뜻이 없으며, 에만 마음을 두어 8~9년 공부하여 뭔가를 얻었네...

제 남편은 志氣가 비범하여 일찍 禪學을 공부하여 저를 무시하여...

오언관은 를 함께 공부한 교우로써 나의 일생의 행운이오...”

.이귀는 인조반정의 핵심공신이다

(이여순)은 살림에는 관심이 없고 불교에 심취되어

매일 남편과 남편친구들과 어울려 를 논한 것이다

.남편이 죽으면서 오언관에게 아내를 칭찬한 것은

내 처가 있으니, 나는 죽지 않았네...그대는 세상말에 신경쓰지 말고

모름지기 를 위해 지금처럼 방문하게...”

 

.오언관은 평소처럼 집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산으로 간다고 말하자 이여순도 따라 동행한 것이다

시어머니와 친정부모에게 편지한통을 남기고 길을 떠난다

.이여순은 덕유산에서 머리를 까고 중이 되었다

승려행세를 하기에 도망자로 의심을 받아 촌민들에게 체포되었다

.양반집 부녀자가 외간 남자와 함께 산천을 유람하는 풍속은 특이하다

조정에서 심문을 받을때 정(나정언의 첩)이 진술하였는데

이여순을 끝까지 옹호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여순은 가 이미 경지에 올라 제때 밥을 먹지않았고,

20일동안 물도 마시지 않아도 피곤한 모습이 없었으며...

한달간 잠을 자지 않고 도를 공부하였다...

온몸에 향기가 발하고, 깜깜한 밤에도 얼굴에서 광채가 발산되어...”

.광해군은 신하들이 처벌을 건의했지만, 증거부족으로 사면령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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