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6. 클럽회장 간담회 4조(천하복집)
겸재 정선(謙齋)~사천 이병현 우정
겸재 정선(謙齋)~사천 이병현 우정
@號(호)는 그 사람의 제2의 존함이다
.당신의 꿈, 理想, 탄생지, 인연, 이력의 일부로써 나타나면서 스승이나 동료의 念願을 담아 지어준다
.그 사람의 됨됨이와 형편까지 다양한 情報가 숨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는 號가 무려 500여개를 사용했는데,
그속에서 당시 처해있는 행적과 형편을 짐작할 수가 있다
.先안동김씨 청음 김상헌의 큰손자(김수증: 화천으로 은거)
둘째 손자 김수항(영의정)의 6명의 아들은 매우 유명하다
창집, 창협, 창흡, 창업, 창즙, 창립...昌을 빼면 이름은 두자이다
@號를 짓는 方法
1)所處以號(소처이호): 인연이 있는곳~현재 살고 있는 곳
2)所志以號(소지이호): 이루고자 하는 꿈~이룩한 理想
3)所遇以號(소우이호): 자신이 처한 환경~여건
4)所蓄以號(소축이호): 소유한 애장품~기호품
@諱(휘)는 “높은 사람의 이름”이다
.높은 사람의 이름으로 함부로 쓰지 않았기에 號를 사용했던 것이다
.退溪, 栗谷, 茶山은 1)所處以號에 해당된다
.秋史는 秋氣와 같이 맑은 品格과 義理를 위하여 集中하겠다는 意味로써
2)所志以號에 해당된다
.면앙정 송순(담양, 가사문학의 선구자)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없이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孟子의 仰不愧於天(앙불괴어천)에서
인용하였으며, 2)所志以號에 해당한다
.고려 문장가 이규보는 6개 호를 사용했다(백운거사, 삼혹호선생, 지지헌, 사가재, 자오당, 南軒丈老 남헌장노)
삼혹호 선생(三酷好 先生)은 기호품을 소재삼아 지었다
止止軒, 四可齋, 自娛堂은 등급이 다른 建物의 堂號를 사용했다(2등급: 堂~ 5등급: 齋~ 6등급: 軒),
무려 3개의 당호를 사용했다
.寒暄堂 김굉필(한훤당)~점필재 김종직(점필재)~晦軒 안향(회헌)~申師任堂(신인선)~晦齋 이언적(회재)...
@건물에는 8등급으로 분류할수 있다
1)殿(전): 왕의 공간(근정전,인정전,명정전), 대웅전(부처님을 모신 성전)
2)堂(당): 어른이 사용하는 공간(자선당, 희정당)
3)闔(합):
4)閣(각): 樓와 비슷한 모형이지만, 정자를 2~3개 합쳐진 건물이다
5)齋(재): “堂”과 비슷하지만 공부공간으로 소박한 모습이다
*낙선재(창덕궁)는 대비들의 공간으로 단청도 안했다
6)軒(헌): 처미를 높게 건축하지요(오죽헌)
7)樓(루): 2층형태로 단청을 하고 모임하는 곳이다(공적용도)
*鐘閣은 최초 鐘樓였으나, 고종이 증개축할 때 개칭하였다
8)亭(정): 소형 건물로써 창문과 침실은 없고, 사적용도로 활용되었으며
건물형태는 “ㄱ형~+형”으로 단청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복궁 후원의 향원정(고종)은 단청을 한것이다
.궁(宮): 옥황상제~황제~왕~제후가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대(臺): 흙을 부토하여 높인 지상건축으로 덕담공간 관망대이다
.사(思): 수사(물가)에서 물(호수)구경하도록 평지위에 건축한다
@목조건물(3대)
1)주심포 양식(3대): 봉정사 극락전(안동)~수덕사 대웅전(예산)~부석사 무량수전(영주): 배불뚝이 기둥
2)다포 양식(힘의 분배): 성불사 웅신전(황해도). 석왕사 웅진전
3)하앙식(백제 건축)
@謙齋(정선)의 號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謙遜(겸손)하게 살아야 한다는 哲學과 處世術(처세술)을 엿볼수 있다
.號作法(호작법)을 적용한다면 2)所志以號과 3)所遇以號을 적용했다
.周易15괘의 地山謙(지산겸)에서 찿은 것으로 보인다
*謙(겸): 亨(형). 君子有終 謙謙君子 用涉大川...勞謙君子 有終吉
(겸손해야 형통하고 끝이 아름답다.
겸손하고 겸손하면 큰 물을 건너도 吉할 것이다.
수고하고도 겸손한 君子는 끝네 吉하다)
.겸재(정선)은 周易에 능통하여 겸손을 깨달아 삶의 座右銘으로 살았기에 長壽하였다(86세)
.13세(1689년), 父親이 죽은뒤 어려운 형편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母親과 두동생을 봉양했던 것이다
@양천 향교의 城山(성산)
.城山으로 부른 이유는? 옛날에 城이 있었다
.巴山(파산)으로 칭한것은 양천의 옛지명이 구멍바위(孔巖 공암)의
음가식 표현 齋次巴衣(재차파의)에서 비롯되었다
바위의 이두식 표기로써 巴衣(파의)를 살려 巴山으로 칭했다
따라서 양천 관아를 파릉관으로 불렀다
.關山(관산)은 한강하류를 행주산성과 함께 漢陽 관문을 지킨다
부근에는 양천감영이 있었으며, 漢江을 마주한 곳에 소악루가 있다
최초, 中國 동정호에 있는 악양루를 차명하여 악양루로 불렀으나
1737년(영조13)에 李楡(이유 1675~1757)가 再建하였다
1994년 재건축 되었다
@겸재(정선)의 숨결이 살아있는 양천관아
.겸재(정선)은 사천(이병현)과 영조(무수리의 아들)과 함께
인왕산 기슭(청운동)에서 함께 교유하면서 성장하였다
.겸재와 사천은 동문수학한 절친한 인연으로 김창흡(김수항의 아들)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안동김씨 집안을 외가로 여겼다
.연잉군 시절(영조), 영빈김씨(숙종비)를 母親처럼 따랐다
영빈김씨(숙종비, 영조의 생모)는 김창국의 딸로써, 김수증(김수항, 영의정)의 손녀이다
즉, 김창흡은 김창국과 사촌간으로 창흡의 조카인 셈이다
.영조(연잉군)는 겸재와 교유하면서 詩書畵를 배운것이다
훗날 예술적 감각을 펼수있었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겸재 35세(1710년) “辛卯年風樂圖帖(신묘년풍악도첩)”
.금화현감(사천 이병현)의 초청으로 금강산을 탐방하게 된다
.조선의 實景(실경)이 중국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되었는데.
.46세, 경상도 하양현감으로 재직할 때, 경상도 65군현의 승경을 화폭에 담았다
.과거 낙방후 포기, 음직(蔭職: 父祖의 공으로 벼슬을 얻는것)으로
양천현에서 공직(3년간)으로 양천향교와 인연을 맺는다
김수항(안동김씨)의 후원과 외조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조의 예술적인 후원
.관동지방의 명승을 詩畵로 표현할 기회를 부여한다
.1732년(영조8), 사천(이병현)을 삼척부사로 임명된다
.1733년(영조9), 겸재(정선)는 청하현감으로 부임한다
중국의 관념적인 화풍을 벗어나, 조선 특유의 實景을 그린다
.眞景山水畵(진경산수화)가 탄생하고 眞景詩의 선구자로 변신한다
@붕(朋)이란?
.사천(이병현)은 겸재(정선)보다 4살이 많다
.兄으로 부르지 않고, 詩書畵를 통하여 竹馬故友로 남겼다
.붕(朋)이란? 鳳凰의 모양을 본뜬데서 유래되었다
봉황이 날면 뭇새들이 따르지 못하기 때문에 벗을 뜻하는 글자로 발전하게 된것이다
“月~月” 반쪽달은 서로 합해져야 완전한 달이 되어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달빛을 뿜어낸다
“月~肉”은 같은 의미의 부수로 많이 사용되어 “肉+肉”으로 변형가능하다
.친구는 서로 헤어지면 人格體로 완전한 사람이 아니라,
단순한 육체에 불과하다는 해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따라서 반쪽이 다른 반쪽을 위하여 존재하는 셈이다
.반쪽의 精神과 다른 반쪽의 肉體로 하여금 완전한 빛을 발휘하게
보완해 주는게 친구이므로 반드시 共存해야 한다
@겸재(정선)과 사천(이병현)의 友情
.우정의 완결판이 궁산 소악루에서 이루어진다
.宮山(궁산)이란? 양찬향교가 있었기에 얻은 이름이다
.孔子를 숭배하던 成均館을 學宮이라 칭하였다
.공자의 위패를 모신곳 향교가 곧 學宮이라, 宮山이라 부른것이다
.양천향교 부근에는 볼거리도 많다(궁산, 겸재 기념관, 허준 박물관, 구암공원, 공암진, 양천 향교...)
@겸재의 유명한 작품: 금강전도(金剛全圖), 단발령망금강(斷髮嶺望金剛),
장안사(長安寺), 만폭동(萬瀑洞)...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1740년(65세), 겸재(정선)은 양천 현령(한양에서 30리)으로 부임하였다
.이별하면서 사천은 겸재에게 “詩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내자”며 제의한다
@“詩畵換相看(시화환상간)” ...작별의 아쉬움을 토로했던 詩
爾我合爲王輞川 畵飛詩墜兩翩翩 歸驢已遠猶堪望 醋創江西落照天
(이아합위왕망천 화비시추양편편 귀려이원유감망 초장강서낙조천)
“자네와 나, 합쳐야 왕망천이 되는데,
그림 날아가고, 시 떨어지고, 양쪽 다 허둥댄다
돌아가는 나귀, 이미 멀어졌지만 아직 보이는데,
슬픈 감정이 솟아 강서의 하늘을 물들인다”
*왕망천: 당나라 왕유(王維)는 시인(서정시를 잘쓰는 詩佛로 칭함),
화가(남종문인화 창시자)로써 두명이 함께해야
왕유의 수준에 이른다는 겸손한 표현으로 볼수있다
與鄭謙齋 有詩去畵來之約 期爲往復之始
(여정겸재 유시거화래지약 기위왕복지시)
“겸재 정선과 더물어, 시가 가면 그림이 온다는 약속이 있어,
약속대로 가고 오기를 시작하였다”
.약속을 이행한 과정을 말한다
我詩君畵換相看 輕重何言論價問 詩出肝腸畵揮手 不知誰易更誰難
(아시군화환상간 경중하언논가문 시출간장화휘수 부지수이경수난)
“내시와 자네 그림을 서로 바꿔 볼때에 작품의 경중을 어찌 값으로 따지겠나?
시는 간장에서 나오고, 그림은 손으로 휘두르는데 모르겠네, 누가 쉽고 또 누가 어려운지...”
.創作과정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예술 장르를 서로 존중의 대상이지
경쟁으로 우열을 가리는 대상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겸재는 그림을 즐기는 순수예술가이며, 사천은 작품을 모으는 수집가
.우정속에서 “京橋名勝帖(경교명승첩: 한양근교의 그림)”이 탄생했다
.郊는 성밖 50리 땅을 近郊(근교), 100리 떨어진 땅은 遠郊(원교)이다
.사천은 겸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였다(중국의 고서와 그림도 많았다)
@사천 이병현(1671∼1751)과 겸재(정선)
.삼연 김창흡(三淵 1653∼1722)의 제자로써 동문수학 학문적 동지이자
.인생의 붕우(朋友)로 겸재(정선)과 진경문화를 이룩해 낸 이다
.사천과 겸재는 매우 막역한 사이로 사천이 시를 써서 보내면 겸재가 그림으로 화답하고,
겸재가 그림을 보내면 사천이 시로 응수한다
.우정의 맹약(詩畵換相看,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자)의 장면을 담은 “시화환상간”이라는 작품이다.
.겸재의 많은 작품에 사천의 시제(詩題)가 실려있는 이유이다
.벗간의 상호 교류는 서로의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되었음을 알수있다
@퇴계 이황(退溪 1501∼1570)~고봉 기대승(高峯 1527∼1572)
.퇴계와 고봉은 性理學의 세계관과 인간관등은 서로 생각이 같았지만,
.사단칠정(四端七情)과 이기(理氣)에는 약간 상이한 견해를 가졌다
.서로간에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논쟁을 벌였고,
결국 두 사람은 견해를 함께하게 되고, 사단칠정의 논쟁은 마무리 된다
@우암 송시열(尤菴 1607∼1689)~동춘당 송준길(同春堂 1606∼1672)
.우암과 동춘당은 가까운 친척 사이이며,
.사계 김장생(沙溪,1548~1631) 문하의 동학이자 벗으로,
.노론의 쌍벽을 이루는 학자로서 학문 경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같았다.
.나라의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도 대부분 의견이 합치했지만, 편지의 교류를 통해 예학에 대해 논하였다.
@담졸 강희언(澹拙 1710∼1784)의“사인삼경도첩(士人三景圖帖)”
.작품을 살펴보면 뜻을 함께하는 여러 선비들이 모여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짓거나, 활을 쏘는 모습을 볼 수가 있는데 “나무와!” 가 그러한 모습인 것이다
.자연과 벗하고 자연에 기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모여,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꽃과 인사를 하며, 시를 나누고...
@대국자하류(大國者下流 노자 도덕경)
.겸손이란? “하류가 정답이다”
.꿈꾸는 上流는 인간의 허항된 욕심이 빚어낸 신기루와 같은 것이다
오히려 아래로 흐르는 하류(下流)가 되어야 한다
.위로 흐르는 물(상류)이 보다 아래로 흐르는 물(하류)가 되어야 한다.
.군림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습관은 바꿔야 한다
.남보다 위에 있으라 한다면, 반드시 상대방보다 낮추어야 한다.
상대방보다 먼저 있으려 한다면, 반드시 몸은 뒤에 있어야 한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그를 앞세우고도 싫어하지 않는다
.대국자하류(大國者下流): 큰 사람은 하류이어야 하며,
천하지교(天下之交):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난세에는 낮추어야 결국 살아남을수 있다(하류의 철학)
.군림하려 하지 마라! 낮춰라! 그것이 진정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상류보다 하류가 한 수 위라는 노자의 성찰입니다.
@항용유회(亢龍有悔: 2012년 임진년. 60년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
.오방위로 따진다면 다섯 색을 입은 오룡(五龍)중의 하아이다
“청룡(靑龍)~적룡(赤龍)~황룡(黃龍)~백룡(白龍)~흑룡(黑龍)”
.흑룡의 해! 길운 트인 해라고 말하지만 그 반대 의미가 더 많다
.삼국사기~백제본기 “흑룡이 나타난후 왕이 돌아갔다” 말이 자주 나온다
.용은 왕을 의미하고 승천은 붕어를 의미한다.
.어찌보면 세상의 변화를 예고하는 메시지가 담겨있을지도 모른다.
.잠긴 용이니 기용하지 말라는 잠룡潛龍이 되느냐,
천하를 한 번 휘젓는 역동적인 비룡飛龍이 되느냐.
.최소한 살아있다는 증명을 하기위해 세상 모습 드러내는 현룡(現龍)이
되긴 해야겠지만 조금 뜬다고 자만에 빠진 항룡亢龍이 되선 안되겠다.
.항용유회(亢龍有悔)란 무엇인가?
“맨 꼭대기에 오른 용이 이젠 내려올 때가 되었으니
후회할 일만 남았다” 용은 승천해야 어울린다.
.黑龍은 사해용왕(四海龍王)의 하나로 바다에서 건너온 해룡(海龍)이다
임진왜란도 흑룡의 해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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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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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허재갑총재(2020-2021 지구집행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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