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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빛사랑 조흥식

2013-1009.한글날 백일장(정의공주)

by 조흥식 2023. 1. 22.

2013-1009.한글날 백일장(정의공주)

  *2013.10.9..14:00~우이동 원당마을(연산군묘, 정의공주묘)

  *貞懿(정의)공주와 한글날

 

 

제목: 貞懿(정의)공주와 한글날

정의공주는 한글을 창제하신 世宗 슬하의 딸(공주) 이었다

婚姻후에도 한글창제에 공헌하여 父王을 후원한 결과 우리 民族 유산의

최대 자랑이자 으뜸으로 물려 받은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2013년도 한글날에 도봉산 자락에 잠드신 정의공주의 묘를 찿아

아름다운 忠心孝心, 지혜로운 女性의 능력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으며

우리 또한, 백일장에 참여하지 않을수 있단 말인가?

일부러 묘의 방향도 이천(세종릉)을 향하고 있는 방향으로 볼때

아마 父王의 따스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신장로 건너편에는 燕山君의 초라한 묘가 있는데, 생전에 간난아이

왕손의 연산군과는 각별한 인연을 있었을까? 없었을까?

장녹수를 사랑했던 연산군은 寡人(과인)을 즐겨쓰며 늘 부족한 사람임을 자처하면서

열등감이 가득했던 임금의 말로는 참담하기 그지없다

연산군의 묘역에 딸(공주)와 부마도 합장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 앞에 원당샘과 83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원당공원이 자리를 지켜준다

그리고 정의공주 묘 뒤편 능선을 도봉산 줄기를 따라 북쪽 자락에는

의혜공주(중종의 딸)의 사연때문에 賜牌山(사패산)으로 불려지고 있다

임금께서 의혜공주가 그리워 많은 것을 하사했을지도 모른다

우이동은 전통적으로 愛國志士들의 묘소가 많은 북한산 기슭이다

 

@역사적으로 世宗北漢山城과 인연이 많은 것으로 평가되는 이유가 있다

世宗은 관상으로 보아 5째아들 광평대군이 일찍 죽는다는 말을 듣고서

각별한 애착을 가졌지만, 결국 20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北漢山城은 태조가 1차 공사, 世宗2차 보강공사를 하였는데,

녹천 이유(광평대군 8대손)가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시킨 유공자인 셈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속에서 전재산 300섬을 동원하여 북한산성 축성에

보태고 가솔들이 직접 공사장에서 인부들의 끼니를 도와준 가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鹿川驛(녹천역)의 유래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광평대군의 증손 이천수가 지은 고택 필경제(수서)에서 훗날 인조반정

필요한 준비를 했던 곳으로 가세가 대단했음을 짐작케 하고있다

당시 공사물자를 보관했던 동네를 지금의 倉洞(창동)이라 하였고

북한산성 공사완료후 北漢山城의 행궁에 戰時 비축물자를

보관했던 곳은 평창동인데, 당시 한양 백성의 한해 필요한 양식을

75만섬으로 추정해 본다면 무려 45만섬을 비축한것은 국난을

철저하게 대비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주가 정치에 관여한 비극적인 시대도 적지 않다

또한 공주를 인접국과 정략결혼의 희생양이 되기도 하였으며

잘못된 공주의 짝사랑으로 조국과 부친을 배신한 경우도 많았다

따라서 공주는 철없는 유년시절부터 철저한 인성함양은 물론이고

더불어 밥상머리 교육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수 있다

선조들은 늘 숟가락에는 가정의 행복()과 어르신의 장수()

염원하는 문구는 나름대로 가문의 위계질서가 엄격함을 강조한 것으로

볼수있으며, 한때 기성세대들의 선물로 각광을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보다 사랑을 선택한 歷史는 수없이 많다

특히, 공주의 충동적 사랑이 祖國父母를 저버린 경우가 많았지만

致命的背信不孝의 사랑은 대부분 悲劇으로 끝난다

따라서 혼인한 공주와 부마는 일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게 옳다고 본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여인들의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울수 있다

딸이 분수를 모르고 쓸데없는 걱정을 해서는 안된다

나라(春秋時代)에 칠실녀(노처녀)가 임금이 병들고 늙어 태자가

걱정되어 혼인하지 못한다는 웃지못할 고사도 전해지고 있다

 

@호동왕자(고구려)와 낙랑공주(낙랑국)의 비극적인 사랑 때문에

낙랑국이 망하게 되는 전설같은 사랑의 노래를 더듬어보면,

高句麗樂浪國은 서로의 국가의 目的을 위해 婚姻을 승낙하지만

대신왕은 호동에게 정탐시켜, 공주에게 婚姻을 위장해 압력을 가한다

낙랑국의 안위가 危險할 때 울리는 自鳴鼓早期警報 장치였는데,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에게 북을 찢고, 나팔주둥이를 베어 버리게 한다

낙랑공주는 사랑에 눈이 멀어 秘密 武器庫自鳴鼓를 없애버리자,

즉시 高句麗(대신왕)攻擊하여 낙랑국이 敗亡하게 된다

侵攻하면 귀신처럼 알아차린 북과 나팔이 울지 않았던 것이다

낙랑(최리)祖國背信한 딸(공주)를 죽이고, 항복하게 된다

먼훗날, 호동왕자도 자결하여 悲劇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호동왕자는 둘째왕비(갈사왕 孫女)의 소생출신으로 매우 촉명했다

대신왕의 후궁(王妃)는 거짓으로 호동왕자가 후궁(왕비)

姦通(간통)했다면서, 어처구니 없이 처단을 요구하자,

호동은 칼을 품고 엎드려 자결하여 결백을 증명하지요

 

@문성공주의 서역 토번국 수령과 정략결혼으로 100여간 동맹을 유지하여

부황 태종에게 忠孝를 바친 孝女공주의 불행한 역사도 있다

일월산 3500m(문성공주 동상과 사원) 서역 티벳가는 고개에는

나라~티벳 경계점 고개(서역)는 문성공주 성황신이 모셔져 있다

문성공주는 거울을 깨트리자, 청해호수가 생겼다는 전설도 있다

(해발 3260m, 소금호수, 서울의 7배 넓이)

 

@나라 말기, 원제는 궁녀를 선발하여 공주(수양딸)를 흉노 선우에게

혼인시킨 유명한 주인공이 전설적인 중국 4대미인 落雁 왕소군이다

훗날 한원제는 미인을 아쉬워하며 후회했더고 하지만,

그러나 이후 평화를 유지할수 있었다니 얼마나 슬픈일인가?

 

@미노스에 대한 엉뚱한 짝사랑한 스퀼라공주도 비슷한 경우이다

치명적인 공주의 사랑으로 비참했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미노스(크레타 王國)은 니노스(알카토오스)을 이길리가 없었는데

니노스白髮(백발)중에 보라색 머리카락 한올이 있어,

守護神(自鳴鼓)처럼 알카토오스 王國을 지켜주었는데,

니소스 王國(알카토오스)城壁에는 이 있었는데,

아폴론(音樂)黃金으로 만든 수금을 건 이후,

벽돌마다 신묘한 音樂이 스며들어 있다는 城壁이었다

스퀼라 공주는 城壁에서 미노스 에게 첫눈에 매료된 것이다

결국, 스퀼라 공주(니소스의 딸)은 미노스이 사주하지도 않았는데,

잘못된 짝사랑으로 父親의 머리카락을 잘라서 미노스에게 바친다

저를 아내로 받아 주십시오하면서 간청을 하였다

그러나, 미노스은 스퀼라에게 전대미문의 罪惡을 꾸짖는다

우리시대에 너 같이 더러운 것이 있었구나, 내 아버지 제우스

요람이었던 크레타 섬에 너처럼 더러운것이 들어오는걸 용납하지 않겠다

征服戰爭을 마친후, 야속하게 軍艦을 타고 出港을 해 버리자,

스퀼라 공주는 헤엄으로 어렵게 크레타 王國의 뱃전을 잡았지만,

父親 니소스왕(보라색 머리카락을 잘려 물수리로 변신)이 부리로

공주의 손을 힘껏 찍으니, 공주가 손을 놓쳐 버리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스퀼라 공주를 감아 올리는 것이었다

이제야 자기 몸에 깃털이 달린 새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아리아드네 공주(미노스 의 딸)의 이상한 사랑도 전해진다

실타래의 유래가 미노스 (크레타 왕국)이 승리후 귀국했을때,

이미 부인이 아들(괴물)를 낳은 뒤였다

미노스왕은 바다의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괴물아들을 낳은것이다

아들 미노타우로스는 상반신은 황소머리”+하반신은 사람이었다

다이달로스(建築家)는 거대한 미궁의 시설을 建築하여 감금케 하였는데

미궁은 構造가 매우 교묘하여 한번 들어가면 脫出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出入口를 찾을수 없는 建物(미궁)로 지었다

괴물아들(미노타우로스)는 사람고기(人肉)를 즐겨먹었다

아테나 에서 보내온 租貢(少年:7+少女:7)을 먹이로 주었다

괴물은 미궁을 돌아다니며 소녀와 소년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테세우스(아테나이 王子)國家災殃(재앙)으로부터 인간먹이를

구하기로 決心하고, 父王의 간원을 뿌리치고 스스로 租貢 供物自請한다

9년후, 아테나이 에서 공물이 온뒤 괴물(미노타우로스)이 죽은것이다

아리아드네(미노스 의 딸)供物에 포함된 테세우스를 보자마자

짝사랑에 빠져 명주 실타래을 몰래 건네주면서

괴물(미노타우노스)을 죽이도록 알려줘 入口부터 명주 실타래을 풀어

13租貢백성들을 구하고 미궁을 빠져나올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아리아드네幸福했을까?

테세우스는 공주와 함께 낙소스 섬으로 갔지만,

그 섬에 공주를 남겨놓고, 테세우스는 아테나이로 떠나버린다

훗날, 테세우스도 미노스왕의 총애를 잃고 크레타 섬에 갇히게 된다

현명했던 테세우스 家門의 비참한 最後를 보면 더욱 슬프다

테세우스는 멜라니페(女性들만의 나라, 아마존의 女王)婚姻하였다

아들(히폴뤼토스)를 낳고, 부인은 일찍 죽는다

크레타 王國侵攻한후, 파이드라(크레타 의 누이)再婚하지만,

파이드라는 테세우스가 背信했던 아리아드네 공주와 姉妹 사이였다

계모는 아들(히폴뤼토스)에게 요염(추파)을 거절을 당하자,

알몸으로 遺書(거짓 편지)를 남긴뒤 自殺해 버린다

폐륜아 히폴뤼토스의 목숨을 거두어 달라...”

결국, 아들(히폴뤼토스)은 머리카락이 뱀처럼 살아나면서,

솟아올라 올리브 나무를 감싸더니 떨어져 죽어버린다

이때부터, 아테나이 王國(테세우스 )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古代 그리이스~로마 神話 그림속에 자주 등장하지요?

미노타우로스: 상반신은 황소머리+하반신은 사람같은 힘센人間

히폴뤼토스: 머리카락이 뱀처럼 살아나 휘감는 괴물人間

 

@아이에테스 (콜키스 王國)의 딸(메데이아 공주)도 사랑을 선택한다

英雄 이아손은 조상이 빼앗긴 황금양의 털가죽을 찾아나선다

아이에테스 은 이아손에게 不可能한 조건을 提示한다

불을 뿜는 황소에 쟁기를 메워, 마르스(戰爭)밭을 갈아라

공주와 사랑을 맹세하고 安全保障約束받은후,

이아손에 첫눈에 반한 공주(메데시아)火傷防止 고약을 발라준다

승리후 메데이아 공주도 同行하지만, 공주의 父親追擊해오자,

父親祖國背信한 공주는 2명의 동생을 찢어 바다에 버리지만,

父親()葬禮를 지낸뒤 계속 추격해온 것이다

다행히 함께 歸國했지만, 남편(이아손)은 새 아내를 맞이하는데,

화난 메데시아 공주는 嫉妬心(질투심)으로 새 부인을 毒殺시키고,

아들 2명까지 죽인뒤, 宮殿에 불을 지르고 멀리 떠나버린다

 

@한편, 대영제국으로 도약시킨 엘리자베스1세 여왕은 父親(헨리8)

母親(앤 불린, 후처)100일간의 서글픈 사랑으로 유명하다

이렇게 미묘한 부모의 슬하에서 태어난 庶女출신으로 볼 수 있다

훗날, 캐서린(본처)의 딸(메리)이 영국 최초 여왕으로 등극했을 때

이복 자매간의 사랑은 있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할뿐이다

전처를 뛰어넘어 사랑을 독차지했던 앤은 3째왕후 시모에에게

사랑을 빼앗긴 이후 공주들(메리, 엘리자베스1)은 어떠했겠는가?

 

@정의공주의 묘비를 찿아서 북한산 둘레길을 택하여 원당마을을 향했다

"올레길"이란? "작은 골목길"을 말하며

하이킹(Hiking)처럼 심신단련을 목적으로 산천을 누비는 것이다

트레킹(Trekking 인도어)은 가벼운 배낭차림으로 여유롭게 들판, 산을

오르며 걷고 사색을 즐기면서 대자연을 감상하는것을 말하지만,

산 정상을 목포로 등정함은 Mountaineering 라고 해야 옳다

전문 산악인들의 Backpacking(백백킹)은 무거운 짐을 꾸려

장거리 산행(야영숙박)을 말하며, 워킹(Walking)은 건강증진을 위한

단순한 걷기운동인 것이다

 

@정의공주의 묘비에서 처음으로 햇과일과 정종을 올리고 성묘하였다

추석 차례상과 조상님의 성묘상에 "풋과일"을 올린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해동안 수확한 곡식과 과실을 조상들의 차례상에 올리는 것은

우리민족의 전통적인 예의로 내려오고 있다

""이란? "미숙한, 깊지않은..."라고 해석할수 있다

"풋닭"이란? "채 자라지 않은 닭(영계)"를 말한다

북한에서는 영계백숙(만한용어)"풋 닭곰"이라 부르고 있다

, "닭곰"은 삼계탕을 칭하고 있는셈이다

""이란? "고기, 생선등을 진한국물이 나오도록 푹 삶은 국"을 말하며

북한에서 "닭고기 국"은 남한에서 "닭곰탕"으로 부르는 것이다

북한에서 추석절에 필수음식은 만두와 송편이라 할수 잇있다

 

@묘비를 ()할 때 ()하였다의 표현은 大夫의 죽음을 말하는데

정의공주와 부마의 묘비는 엄숙함이 넘쳐나고 있었다

 

@전남 장성 아곡 박수량의 白碑(백비)를 눈여겨 봐야한다

홍길동 생가부근에는 빈터만 남았지만, 38년간 공직생활을 마치고

낙향했을 때 초가 한칸조차 없었던 청백리로 유명하다

명종이 99칸 대궐을 하사했을 정도로 찬사를 받았으나

비석에는 글씨조차 없었던게 참으로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을 것이다

 

@명재 윤증의 묘비도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유언을 남겼는데,

조정에서 부른 학덕이 높은 선비 윤증의 무덤이라 쓰였는데

관직도 쓰지말고 작은선비를 강조했던 모양이다

회니시비로 발단이 되었던 우암 송시열에게 부친(윤선거)의 묘비명을

부탁한 것은 아마 고전에서 착안했는지도 모른다

 

@당나라 재상 요숭의 지혜를 배울 필요도 있다

정치적 앙숙이었던 후임재상(장성)의 후환때문에 유언을 남긴다

내가 죽거든 장성이 틀림없이 문상을 올 것이다. 미리 금은보화를

많이 쌓아둬서 환심을 보이고 뇌물로 전해줘라...

곧장 나의 묘비명을 써달라고 공손하게 요청하거라

장례가 끝나자 재상(장성)은 요숭을 탄핵하려 했을 때,

이미 소문을 듣고 황제는 재상의 인품을 극찬하였는데

정적이던 요숭을 그렇게 사모하여 묘비를 써준 당신이 훌룡하오...”

이에 장성이 탄핵을 하지못하고 오이려 요숭의 아들을 등용한 것이다

 

@퇴계(이황)은 손자에게 미리 묘비 自讚銘(자찬명)을 남긴 이유는

제자(고종 기대승)이 거창하게 ()할까 걱정되어 미리 약소하게

묘비명을 남긴 사람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청백리는 육권, 유통훈(청나라)를 꼽는다

삼국시대 육권(, 손권)은 울림태수로 부임되어 임기종료후

귀경할때의 이삿짐이 똑 같았다는 전설적인 청백리이다

부친이 남겨준 탐관오리의 미니 비석을 휴대하고 다니면서

부정부패와 각종 탐욕을 경계했던 인물로써,

후진타오 주석이 취임하여 육권의 드라마를 시청케 할 정도로

개혁과 부정부패 추방의 정신적인 지주로 거듭난 입지적인 인물이다

 

@정의공주의 묘바는 정인지가 찬하였고, 공주가 우측에 잠들어 있다

묘비앞으로 牛耳川(우이천)이 발원되어 흐르고

뒷산에는 牛耳岩(우이암)이 있는 전형적인 背山臨水 지형이

牛耳(소 귀)”를 뜻하는 곳에 묘를 세웠으니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도 좋다

공주와 부마로써 정치와 부귀영화에서 멀리하겠다는 것으로 보고싶다

 

@許由隱士로써 기산아래에서 반듯한 의자에만 앉고

상하지 않고 깨끗한 음식만 먹었다

임금()은 도덕적으로 관불솔 수준의 이지만,

이 태양, 달과 같은 許由(허유)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청한다

天下가 부담스럽다면 九州(중국 전대륙)를 맡아달라며 제의했지만

許由는 거절하였는데

이미 天下公明正大가 완성된 治國인데,

왕위를 욕심낸다면 名譽, 탐욕을 위한것이다...”

許由는 지체없이 영수(潁水)로 달려가서 더러운 귀를 씻었다

냇가에서 소에게 물을 먹이던 소부가 귀를 씃는 이유를 물었다

 

소부(巢夫)는 상류지역으로 나귀를 끌고간다(더러운 물을 먹일수 없다)

소부가 목격후 許由 隱者의 소문을 내어 후세에 알려진 古事이다

하남성 箕山高士(許由)가 죽은뒤, 箕山公神(기산공신)으로 추대한다

결국, ()임금은 순()~()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후난성 쥔산에 전설적인 고대중국의 대나무밭 (어영, 아황)가 있다

 

어영과 아황은 (요임금)의 딸이자, (순임금)婦人이다

당시, (요임금)許由(허유)를 불러 왕위계승을 요구했으나,

남편()이 죽자, 어영과 아황(姉妹지간)은 소상강가(샤오강)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울다가 죽었다고 하는데,

피눈물의 얼룩무늬가 선명한 대나무 簫湘斑竹(소상반죽)

자랐다는 전설적인 덕담이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다

 

@영남학파의 거두 남명 조식의 덕천강면 산천재의 벽화를 살펴보면,

현풍 도동서원에도 벽화 산수화가 있지만 매우 드문 현상이다

면벽화(노인4명 바둑놀이)~우측벽화(농부가 소를 몰고가는 모습)

소부와 허유가 복거할 때 관직에서 나오라는 전갈을 듣고,

귀 버렸다하면서 냇가에 내려가 귀를 씻는 모습,

귀씻은 더러운 물을 소에게 먹일수 없다고 끌고 올라가는 모습이다

조선의 대표 處士는 남명(조식)~조선의 대표 徵士는 명재(윤증)이다

 

@공주들은 정의공주처럼 권력을 멀리하라!

차마설(借馬說) 統一新羅도 자만하여 멸망하한 역사를 상기해야 한다

잘 나갈 때 조심하라지성의 목소리를 명심해야 할것이다

가정 이곡(李穀 1298~1351, 목은 이색의 父親)을 빌려탄 이야기

역사속에서 흐트러짐을 바로잡는 경고, 부패와 갈등의 경구이다

인간은 항상 값싼 말(하등급)을 빌렸을 때 항상 조심하는 것이다

냇가를 내려갈 때 싼 말은 조심하기 때문에 사고가 드물다

비싼 말은 마구 부리니까 낙상을 하기 쉽다(자만심 경계)”

 

@麥秀之嘆(맥수지탄)의 채미자세가를 들어보라!

나라가 망한 자리에는 보리만 무성하여 탄식한 고사이다(기자, 箕子)

나라와 충신 3명이 어찌 되었는가?

미자(微子: 이복동생): 타국으로 망명한다

기자(箕子): 거짓으로 미친척하며 종으로 연명한다

비간(比干: 숙부): 처형될때 간을 꺼내 7개구멍을 확인한다

훗날, 箕子나라로 가면서 은나라 도읍을 보고 한탄을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조선 519년간 공주가 적극적으로 정치개입이나

정파분쟁에 관여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고 전해지고 있다

북한산, 도봉산 둘레길을 따라 정의공주의 묘를 찿아라!

늘리게 걷는 삶으로 탐욕의 병을 치유하라!

도심속의 시민들은 매일매일 시합이고 그날그날이 결승전 같은 삶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의 대화록을 e지원으로 보관했다고 한다

대부분 국민들은 “e지원이 무슨말인지 조차 모른다

志遠(지원)이란? “멀리 내다보라! 큰 뜻을 품어라!”

김형직(김일성의 부친)의 삶의 좌표, 인생의 좌우명이다

한글날, 생각해보니 참으로 아이러니 할뿐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