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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빛사랑 조흥식

2021-1011, 도봉산(청운대)

by 조흥식 2024. 3. 6.

2021-1011, 도봉산(청운대)

낙방의 아픔

 

 

 

 

 

낙방의 아픔

@김득신(金得臣 1604~1684), 백곡집(柏谷集)

*공산을 지나는 도중에-과거에 떨어진 후 지었다[公山途中 - 下第後作]

올해의 실패에 마음이 놀라

쓸쓸한 객관에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 겹겹 구름에 산의 푸른 빛이 묻혔고

금강의 층층 파도에 차가운 소리가 울리네

온갖 마귀 나를 괴롭혀 내 운명이 궁해지고

모든 일이 어그러져 이번 삶이 개탄스럽네

북쪽으로 집을 향해 겨우 눈길 보내는데

저물녘 비바람에 돌아가는 길이 어둑하네

 

썩은 선비 과거에 떨어져 정신이 놀라고

출세를 기약했건만 또 이루지 못했네

계룡산에는 낙엽 시들어 바위가 보이고

웅진(熊津)에는 바람 급해 파도 소리가 철썩인다

주머니 속의 시초는 천 편이나 많은데

거울 보니 센털이 양 살쩍에 돋아났네

여윈 말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자꾸 발만 구르더니

황혼에서야 목주(木州)로 가는 길에 오른다네

 

*조선시대 많은 사대부가 과거시험에 응시해 입신양명을 추구하였다.

과거는 일반적으로 생원진사시라 불리는 소과를 합격하고

다시 대과에 급제해야 관료로 나아갈 수 있었다.

과거 합격자 중에서는 15세에 급제한 이건창(李建昌 1852~1898)처럼

어린나이에 급제하여 세상을 놀라게 한 사람도 있고,

59세에 급제한 김득신처럼 노년에 합격의 영예를 안은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 김득신은 매우 잘 알려진 인물이다.

노둔한 자질을 이겨내기 위해 모든 책을 만번 이상 읽고

사기(史記), 백이전(伯夷傳)은 십 수만번을 읽으며 자신의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로 삼은 일화는 유명하다.

 

39세가 되어서야 소과인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59세란 늦은 나이에

대과에 합격하기까지 누차 낙방의 고배를 마시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끈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귀감이 된다.

 

*위 시는 김득신이 공주(公州) 쪽에서 열린 향시에 응시하였다가

낙방한 후 집이 있는 목천(木川)으로 가면서 지은 작품이다.

낙방한 현실이 얼마나 절망스러웠으면 온갖 마귀가 내 운명을 망치는

것 같고 이번 생에는 온갖 일이 어그러졌다고 탄식하였다.

첫번째수 자에서 집에는 가야겠는데 낙방한 처지라 갈팡질팡하다

겨우 돌아가길 결심하고 집 쪽을 바라보는 무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두번째수에서 과거에 낙방한 자신을 썩은선비라고 폄하하기까지 하였다.

 

2구의 제주(題柱)’는 한()나라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장안(長安)으로

가면서 성도(成都)의 승선교(昇仙橋) 다리 기둥에

대장부 4마리 말이 끄는 수레를 타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다시는

건너오지 않으리[大丈夫不乗駟馬車, 不復過此橋]” 라고 쓰며

성공을 다짐했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마상여와 같은 큰포부를 가지고 수없이 시를 쓰며 실력을 갈고닦았으나

현실은 머리가 세도록 합격하지 못한 낙방생 신세이다.

집에 돌아갈 면목이 없었던지 애꿎은 말을 탓하며 미적대다 저물녘에야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서글퍼 보인다.

 

*김득신은 59세 문과에 급제하기까지 수많은 낙방을 겪었다.

위 시에서 보이는 절망과 슬픔을 수없이 겪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낙방의 횟수가 더할수록 마음은 더욱 조급하고 무거워졌을 것이다.

무너진 자존심을 다잡아가며 또 과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했을까.

책을 만번 이상 읽는 노력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는

그런 단단함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김득신은 실패에 동요하지 않고 돌부처 같은 우직한 이미지였다.

그런데 그 역시 실패에 절망하고 아파한 인간적 면모가 있음을 보고서

그에 대한 이미지가 좀 바뀌게 되었다.

김득신의 처지와 심경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절망과 아픔을 극복하고 다시 과거시험에 묵묵히 도전했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그 노력과 끈기가 더욱 존경스럽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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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