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110.청운산악회 북한산(독바위)
初心, 自笑, 識見을 기르는 讀書
(초심을지킨다면, 내자신이 우스워, 책읽기와 글쓰기)
初心을 지킨다면...
@성호 이익(李瀷 1681~1763), 동시도습(東詩蹈襲)
(流水喧如怒 高山嘿似嗔 兩君今日意 嫌我向紅塵)
“흐르는 물은 노한 듯 시끄럽고 높은 산은 화난 듯 말이 없네
저 둘이 오늘 보이는 행태는 속세로 가는 내가 싫어서이리”
@원감(圓鑑) 위원개(魏元凱)는 누구인가?
.고려 고종시절, 장원급제하여 벼슬이 한림에 이르렀고,
훗날, 출가하여 법명을 충지(沖止)라고 하였다.
.중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권유에 의해 환속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다시 승려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는 아마도 다시 환속할 때의 심사를 읊은 듯하다.
*고려(高麗) 때의 문사(文士)인 위원개(魏元凱)의 시이다.
“물이나 산이 무슨 감정을 표현하랴,
그들은 평시와 다를 것이 없건만,
내 마음이 불편해서 그렇게 비춰지는 것이리라”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詩
“靜看山水意 應笑往來頻”
“저 둘이 왜 저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응당 왕래가 잦다고 비웃는 것이리라”
.송시열이 벼슬길에 나가면서 비슷한 시를 썼다가,
성호(星湖) 이익(李瀷)한테 표절을 했다고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동양에선 전통적으로 山林을 중시하고 벼슬길을 경시해 왔다.
.北山에 은거하며 덕행으로 이름을 얻었던 주옹(周顒)은
황제의 부름으로 벼슬하다가 여의치 않아 북산으로 돌아가려 했을때,
동지였던 공치규(孔稚圭)가 山의 뜻에 가탁해서 거절하는 글을 지어
인구에 회자되었을 정도였다
.당(唐)나라 승려 영철(靈澈)의 詩는 그런 마음이 진심일지 모르겠다.
“相逢盡道休官去 林下何曾見一人 ”
“만나는 사람마다 벼슬 버리고 돌아간다 하는데
산림에선 은거하는 사람 하나도 못 보았네”
@염계(濂溪) 주돈이(周敦頤)처럼 맑은세상에서 뜻을 펴기위해 벼슬하였다
.벼슬하러 간다는 이유만으로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是處塵勞皆可息 時淸終未忍辭官”
“이곳은 세상 고뇌 모두 잊을 수 있는 데지만
시대가 맑아 끝내 차마 벼슬을 버리지 못하겠네”
.진심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어떤 계기로, 어떤 목적으로 벼슬하러 갔는가”일 것이다.
부모의 권유 때문에 마지 못 해 벼슬하기도 하고...
.벼슬길은 역시나 험한 곳이다.
이욕과 영화에 물들어 자칫하면 작게는 자신과 고을을 망치고,
크게는 나라를 망칠 수 있다. 초심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옛 사람들이 국화나 송백, 송죽의 절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험한 환경에서도 변하지 않는 모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만약 벼슬한 사람이 초심을 잃지 않고 세상을 위해 기여할수 있다면,
그리고 때가 되어 미련 없이 벼슬을 내놓고 돌아갈 수 있다면,
어디에 있든 문제될 것이 무엇이랴.
내 자신이 우스워(自笑)
@病裏圍碁如不病 閑中覓句亦無閑 求閑養病都無用 嬴被旁人拍手看
“병중에는 바둑을 두니, 아픈 사람이 맞나 싶고
한가할 때는 시 짓느라 애를 쓰니, 또한 한가롭지 않네
한가롭길 구하고 요양하겠다는 것, 다 소용 없으니
한껏 사람들의 웃음거리만 되었다네”
@서거정(徐居正 1420~1488), 사가시집(四佳詩集)
.사가 서거정은 조선 초기의 유명한 문장가로써,
당시 국가적 차원에서 쓰인 문장의 거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한가로운 틈이 없었다.
.어쩌다 쉰다는 것은 병이 나거나 특별히 휴가를 얻었을 경우에만
가능했는데, 위의 시는 그 때 지은 것이다.
@시를 읽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과연 우리 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걸까?
.그 원하는 것이 도래했을 때, 과연 제대로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가?
.누구나 한가로운 삶을 갈구하지만 정작 한가로워졌을 때,
.그 한가로움을 제대로 즐기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 한번쯤 모든것을 내려 놓을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아닐까?
@마침 아름다운 단풍의 계절이 왔다.
.가까운 교외로 나가 한가로움을 즐기는 연습도 해보라!
.잘 쉬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식견을 기르는 책읽기, 글쓰기
@1885년, 김창희(金昌熙)가 완성한 “회흔영(會欣穎)”
.한유(韓愈)~원매(袁枚)까지 中國 문장가 26인의 古典을 감상하고
평론하는 행복한 작업을 펼친 文人이다
@소식(蘇軾)이 대나무를 그리는 것에 대해 논하였다
“완성된 대나무를 마음속에 먼저 구상해서 붓을 놀려 곧바로 완성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놓치면 사라지고 만다”고 하였다
.도(道)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묘하게 알아낸 것이 있으면 반드시 빨리 적어 놓아야 한다.
.이것이 “회흔영(會欣穎)”이 지어진 까닭이다.
.문장은 깨달음(悟)을 주로 하여 말이 통달하면 이치가 나타난다.
.더러 오래 씹어 터득하기도 하고 더러 대번에 달려가 만나기도 한다
.홀로 아는 신묘함의 경지가 필묵(筆墨)의 바깥에 있으니
“이아(爾雅)”의 벌레 이름에 주석이나 달고
“이소경(離騷經)”의 향기로운 시구를 주워 모으기나 하는 자들과
어찌 이런 이야기를 함께 하겠는가.
@내가 병들어 기억을 잘못해 석릉(石菱) 金尙書(金昌熙))를 찾아갔더니,
.김상서는 말하였다
“책을 읽고 잊어버리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잊어버리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뿐입니다.
샘물은 더럽고 오래된 것을 씻어내야 활수(活水)가 오는 것과 같습니다”
.석릉자(石菱子)는 서적을 생명처럼 여겨 총각시절 만권을 독파하니
축적된 지식이 이미 풍부하다.
신령하고 슬기롭고 통투(通透)하고 쇄락(灑落)하여 껍데기와
찌꺼기는 모조리 빼서 없애 버리고,
문을 닫고 마음을 가라앉혀 서각(書閣)에서 고인(古人)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는 매번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기쁘게 기록하여
글상자에 보관한 것이 수만 개나 된다.
이를 덜어 내어 두 권으로 추린 다음에 내게 글을 구하였다.
@내가 한두 가지 꾀를 내어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아직 깨달음이 오지 않은 것 같소.
깨달음의 지극한 경지에 가면 말이 없는 법이오.
어느 날 그대를 따라 계원(溪園)에 가서 망건을 벗고
琴을 타며 도연명(陶淵明)의 “구름보니 물가에 서니(望雲臨水)”
의 시구3)를 읊조려 빈 마음에 진상(眞想)이 일고 적막한 중에
지음(至音)을 두드리면 토끼와 그물을 모두 잊고
물고기와 통발을 모두 잊을게요.
이때가 되면 회흔영(會欣穎)이 있는 줄이야 누가 알겠소.
하물며 내가 거기에 붙이는 군더더기 말이겠소.
그렇기는 하나 일단 그대와 껄껄 웃으며 적는다오.”
*계원(溪園)이란?
김창희는 “회흔영”의 출간을 앞두고 독자들에게 작자의 인생 역정을
알려 주기 위해 1888년 “계원퇴사자전”을 지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호(號)의 변천에 따라 과거의 석릉(石菱),
현재의 둔재(鈍齋), 그리고 미래의 계원퇴사(溪園退士)로 구분하였고,
계원퇴사가 되어 자유롭게 자연에서 은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였다.
한장석이 말한 “계원”은 곧 김창희가 스스로 밝힌 바 자신이
미래에 얻고자 하는 이상적인 삶의 공간을 가리키는 것이다.
*“구름 보니 물가에 서니(望雲臨水)”의 유래?
도연명의 시에 “구름 보니 높이 나는 새에게도 부끄러움을 느끼고,
물가에 서니 헤엄치는 물고기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
(望雲慙高鳥, 臨水愧游魚)”는 시구가 있다
@우리나라 한문학의 정수와 만나려면 어떤 책을 펼쳐야 할까?
.조선 성종~중종~숙종, 3회 출간된 동문선(東文選)이 기본 도서이다.
.관각(館閣)의 문장에 관심이 있다면 정조시대 문원보불(文苑黼黻)
.뚜렷한 古文정신으로 만들어진 선집은 김택영(金澤榮)의 문인
왕성순(王性淳)이 지은 여한십가문초(麗韓十家文抄)
.대한제국 애국과 자강의 의식은 장지연(張志淵)의 대동문수(大東文粹)
박은식(朴殷植)의 고등한문독본(高等漢文讀本)
.韓中日의 한문학은 1918년 원영의(元泳義)의 근고문선(近古文選)
@김창희의 “회흔영”
.19c 조선 방방곡곡 숙사(塾師)가 양산되고多讀多作만 일삼았다
“책읽기는 식견을 구하려고 하는 건데 무엇을 구하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읽고만 있으니 아니 읽은것만 못하고,
글쓰기는 식견을 드러내려 하는건데 무엇을 드러내려고 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쓰고만 있으니 아니 쓴것만 못한” 상황이 벌어지고
.그 결과는 책읽기를 더할수록 어리석음이 증가하고
글쓰기를 더할수록 진실성이 상실된다는 비관적인 진단이었다.
@김창희는 방포(方苞, 1668~1749)의 글을 읽고 말한다.
.靑대 동성파(桐城派)문학을 창시한 방포는 초년에 깊이 고문(古文)을
추구했지만 만사동(萬斯同)의 조언을 받아 경학에 잠심하였다.
.후일 청대 문장을 정리한 서비연(徐斐然)은 방포의 문학적 성취를
위해 이를 애석하게 여겼고 사실 문학과 이학이 분리된 현실에서
송유(宋儒)의 성리로 당송팔가(唐宋八家)의 문장을 짓는 것은
무모해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학과 문학은 절대로 서로 같지 않으니 겸할 수 없다는 것은
세속적인 상식일 뿐이며 오히려 절대로 서로 같지 않은
이학과 문학의 양합(兩合)을 통하여 창조적인 작품이 나올수 있다.
.이는 일반적인 주자학적 고문론의 재도론적(載道論的) 감각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차라리 이학과 문학의 상이한 두 식견의 융합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회흔영”에는 이 밖에도 글쓰기 철학에 관한 유익한 단상들이 많다.
.김창희는 평소 “답고즉속(踏古則俗), 반속즉고(反俗則古)”
또는 “문무고금(文無古今), 지유아속(只有雅俗)” 확고한
문학적 식견을 지니고 있었고,
“속(俗)”에 대한 치열한 대결의식 속에서 아무런 식견 없이
옛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낡은 관습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청운산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1226.청운산악회 송년의 밤 (0) | 2023.05.05 |
---|---|
2013-1208.청운산악회 2013년도 송년산행(도봉산) (0) | 2023.01.23 |
2013-1013.청운산악회 도봉산 (2) | 2023.01.22 |
2013-0921.청운산악회 도봉산(추석 번개산행) (0) | 2023.01.19 |
2013-0908.청운산악회 도봉산 (0) | 2023.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