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703.그린라이온스클럽 박금옥회장 이취임식(빅토리아 호텔, 미아사거리)
서북인(西北人) 차별 관행
서북인(西北人) 차별 관행
@이가환(李家煥 1742~1801) “서북인을 차별하다”
“나라에서 자(子), 오(午), 묘(卯), 유(酉)가 들어간 해를 式年으로 삼아
3년마다 詩와 부(賦), 三經의 뜻, 四書의 의문(疑問)으로 선비 200명을
뽑는데 이를 진사라고 한다.
이조에서는 그들 중 우수한 자를 선발하여 관직에 임용한다.
진사시가 끝나면 대궐에서 왕이 참석한 가운데 합격자를 발표하는데,
200명의 합격자가 모두 뜰에 들어가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가
자신의 이름이 불리면 절하고 교지를 받아서 품에 안고 종종걸음으로
물러난다.
이때는 기러기 행렬처럼 나아가고 물고기를 꿴 듯이 줄지어 물러나가
서로 간에 차이점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대궐 문을 나간 뒤에는 처지가 현격히 달라진다.
서울이나 경기 지방에 사는 자들은 대부분 차례대로 관직에 임용되고,
벼슬이 현령이나 목사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러므로 비싼 옷에 좋은 말을 타고 평생 영예와 부를 누린다.
반면 먼 지방에 사는 자들은 곧바로 서둘러서 행장을 꾸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난삼(襴衫) 한벌에 연건(軟巾) 하나를 쓴채로 돌아와 부모님을 뵙고
조상의 묘소에 성묘한 다음 친지들을 찾아뵙는다.
*난삼: 과거 유생, 진사, 생원 등이 입었던 옷.
*연건: 소과(小科)에 합격한 사람이 합격 증서를 받을 때 쓰던 건(巾)
그러면 온 집안이 기뻐 웃고 온마을 사람들이 발꿈치를 들고 구경하지만,
합격의 기쁨과 영광은 열흘이면 끝난다.
그러고 나면 아무리 출중한 재능이 있는 자라도 모두 포의(布衣)로
지내다가 산골에서 생을 마치게 되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성상께서 즉위한지 10년째 되던 해에 내가 정주 목사(定州牧使)로
부임하여 고을에 진사시 합격자 명단이 있어서 살펴보았더니,
1450년부터 지금(1786)까지 나온 합격자가 얼마 되지 않았고,
그중 관직에 제수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였다.
아! 하늘이 그들의 벼슬살이에 제한을 두고자 한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하러 재능을 부여하여 이름을 얻게 했겠는가.
국가가 그들의 임용을 막고자 한 것인가?
그런데 법령을 살펴보아도 명시된 조항이 없다.
게다가 성상께서는 인사가 있을 때마다 서북 지역 사람들을 거두어
쓰라고 거듭거듭 간곡하게 당부하곤 하셨다.
그래서 나는 이를 드러내어 하늘은 사사로움이 없고 국가도
사사로움이 없으니 인사를 담당하는 자들은
의당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한다.
정주의 진사가 관직에 임용된 몇몇 사례는 모두 100년전에 있었고,
지금은 그마저도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내가 또 이를 드러내어 세속의 습속이 갈수록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취업난이 극심해지면서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늘어나고 있다.
요즘 같은 때에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큰 장점 때문이겠지만,
누구에게나 동등한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학연(學緣), 지연(地緣), 혈연(血緣)과 상관없고 화려한 ‘스펙’을
갖지 않아도 실력만 갖추면 되는 비교적 공정한 리그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조선 진사시는 지금의 하위직 공무원 선발고사와 같은 성격을 가졌다
대과(大科)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시험이기도 했지만,
합격하면 하급 관료로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유생이라면 누구나 진사시를 치르려 했을 터인데,
3년에 200명밖에 뽑지 않았으니 그 경쟁률이 어떠했을지,
합격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똑같이 시험을 쳐서 힘들게 합격해도 정작 임용에서는
출신 지역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하였다.
명문대가와 고위 관료들이 많은 서울과 경기 지역 출신들은 합격 후
곧바로 임용되어 지방 수령까지 될 수 있었던 반면,
시골 출신들은 대다수가 진사시에 합격했다는 영광으로 만족하고
평민과 다름없이 살아가야 했던 것이다.
@인용된 이가환의 글에 보이는 정주(定州)는 함경도와 함께
‘서북(西北)’으로 지칭되던 평안도 고을이다.
조선은 건국 이래 서북 지역 사람들의 기질이 사나워 반역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이들을 중앙 및 중요 관직에서 배제하였다.
서북인(西北人)으로 불리는 정주 지역에 진사시 합격자가 많지도 않고,
설사 합격했더라도 대부분 관직에 임용되지 못한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조정에서 서북인에 대한 인사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심심찮게
제기되었고 잘못된 관례를 시정하라는 왕명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별반 효과가 없었다.
19세기 초 평안도에서 발생한 홍경래 난의 원인 중 하나로
이 지역에 대한 차별을 드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결국, 서북 지역민에 대한 심한 차별이 농민항쟁까지 유발하였던 것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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