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02.리치라이온스클럽 창립 13주년 기념식(이기홍회장 이취임식)
차라리 벙어리로 살지언정
차라리 벙어리로 살지언정
@윤기(尹愭 1741~1826) 무명자집(無名子集)
무명자(無名子)는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어두워 지식이 없고
도모하는 일도 없으니, 천하의 버려진 사람이다.
억지로라도 말을 하면, 그 말을 반드시 실천할 수 없어 한갓 일에
방해가 되고 화합만 잃을 뿐이다.
그러므로 묻고 답하는 것과 나에게 절실하여 말하지 않아선 안 될 경우가 아니면
맹세코 다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아 귀머거리의 본분을 잃지 않겠다.
또 혹 손님이 찾아와 인사를 주고받은 뒤, 입을 닫고 가만히 있으면 나를 까칠하다고 여길 것이므로,
전혀 관계가 없는 쓸데없는 말을 뽑아서 응대하는 데 대비하였다.
이런 일 외에는 조용히 앉아 책이나 보면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춥고 배고픔을 견딜 뿐이다.
이렇게 하면 족히 제 명대로는 살 수 있을 것이다.
옛사람 중에 청맹과니 행세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계집종이 앞에서 음행을 하고 자식이 우물에 빠지는데도 끝내 말을 하지 않았다.
만일 마음을 한번 정했다면 어찌 이렇게 하지 못하랴.
옛날 거백옥은 나이 50세에 49년간의 잘못을 알았다.
지금 무명자는 나이 70에 69년 동안의 잘못을 알았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이긴 하나 이 또한 다행이다.
*거백옥의 고사는 회남자(淮南子) 원도훈(原道訓)에 나오며,
끊임없이 개과천선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윤기(尹愭)는 조선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정조~순조에 활동했던 문인이다.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과 실학자들과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삶의 궤적은 전혀 달랐다.
86세로 장수하였지만 그는 문장과 벼슬, 양쪽 모두 당대에는 크게 이름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과거 시험과 관련해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윤기는 33세에 생원시에 합격하면서 성균관에 들어가는 자격을 얻었다.
당시 선비들이 대개 20대 초반쯤 생원 진사시에 합격하는 것에 비춰보면 상당히 늦은 나이였다.
문과 시험은 더욱 늦어 51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급제의 기쁨을 맛보았다.
생원에서 문과 급제에 이르기까지 18년이 걸린 것인데,
그는 이 기나긴 세월을 대부분 성균관에서 시험을 준비하며 보냈다.
어쩌면 조선에서 가장 오랫동안 과거시험을 준비한 선비였는지 모른다.
만년에 급제여서인지, 벼슬은 성균관 전적, 종부시 주부, 현감, 찰방, 실록 편수관 등 낮은 자리를 전전했다.
동시대에 고관대작들이 즐비하고 쟁쟁한 문인, 학자들이 활약하였던 것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무명의 삶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언제부터인가, 그는 ‘무명자’라는 호를 사용하였다.
그는 자신의 호를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평소에 언행을 신중하지 못하여 남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했으니, 참으로 무명씨(無名氏)이다.” 「가금(家禁)」
윤기가 자신을 무명자라고 부른 것은 크게 현달하지 못한 데 대한 자의식의 발로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을 보면, ‘무명’으로 살아가야겠다는 가치와 철학을 드러낸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는 양반 사대부였지만, 당색을 좇아 행동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순과 비리를 그냥 넘기지도 않았다.
세도가도 아니며, 벼슬도 높지 않았던 그가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남기는 것이었다.
늦깎이 과거 급제자였던 윤기는 과거제의 폐해를 잘 알고 있었다.
당시 과거시험장은 부패의 온상이라고 할 정도로 부정행위, 뇌물수수,
당색에 따른 합격자 안배 등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보고, 들었던 과거의 실상을 하나하나 글로 썼다.
또 글쓰기의 벽(癖)이 있다 싶을 정도로 주변의 이야기를 채록하였다.
돈에 대한 이야기, 자녀 교육 방법, 노년의 소일 방법, 독서의 순서 등
그가 기록한 글은 오늘날,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그가 쓴 글들은 훗날 무명자집으로 영인(影印)되었고,
지난해에는 완역되어 성균관대 출판부에서 간행하였다.
조선 사회의 안과 밖, 명과 암을 두루 보고 경험했을 윤기는 70세 되던 해
돌연 벙어리가 되기를 맹세하는 글을 남긴다.
위에서 소개한 서음(誓瘖)이 그것이다.
왜 그는 벙어리로 살겠다고 다짐을 하였을까.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어두워 지식이 없고 도모하는 일도 없어
천하의 버려진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또 ‘행동이 말을 따라가지 못해 일에 방해가 되고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해서’라는 게 그 이유다.
윤기는 그토록 벙어리가 되기를 맹세하였지만, 제대로 실천을 하지 못한 것 같다.
‘서음’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나중에 또 쓰다’라는 글에서 자신의 심지가 굳지 못함을 한탄하면서 다시 한번 벙어리가 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다시 채찍을 가하며 벙어리가 되겠다고 맹세하는
시 “서음 신전설 갱가편벽(誓瘖申前說更加鞭辟)”을 남기기도 한다.
윤기의 일생을 보면, 사회의 화합을 해치고 기강을 어지럽힌 일은 없었다.
대부분 낮은 관직을 맡아, 사회에 대해 높은 도덕적 책무를 지지 않아도 될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적 관계가 원활치 못한 점을 들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며 채찍질하였다.
윤기의 ‘벙어리 맹세’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실천을 민첩하게 하라’는 유교 가르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광복 70돌을 맞아서도 몇몇 학자들은 “위안부는 성 노예가 아니다”,
“일제 땐 모두가 친일파”라는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윤기는 벙어리가 되기 위해 수백 번이라고 ‘혀에 바늘을 꽂아야 한다[刺舌]’고 했는데
오늘날 혀에 바늘을 꽂아야 할 사람은 이처럼 망언을 일삼는 자들이다.
-생략-
너에게 네 입이 있어네가 열고 네가 닫으니
닫으면 거스름이 없고열면 곧 재앙을 이룬다
입을 열면 후회가 생김을 네가 이미 알았다면
어찌 후회가 다시 이를 것을 염려하지 않는가
입을 닫으면 허물이 없음을 네가 이미 알았다면
어찌 이빨과 턱을 굳게 닫지 못하는가
-중략-
네가 벙어리가 되는 약을 마시고자 하면
날마다 삼백 배를 들이켜야 하고
네가 바늘로 혀를 찌르고자 하면
-상략-
날마다 삼백 회를 참아 내야 하리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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