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202. 청운산악회 도봉산(눈구경) *2023,2,2(일)
*입춘에 함박눈이 내리면, 풍년이 온다고 전해옵니다
*11명(이의양, 조흥식, 희서공주, 남구현, 이석철, 정숙희, 채수아, 김천숙, 장정금외 1명)
*거창 수승대(추송대), 거창신씨
愁送臺~搜勝臺(거창신씨)
1.수승대(搜勝臺, 거창, 안의현 유래?)
@최초명칭: 수송대(愁送臺): “근심을 떨쳐 버린다” 사신들의 환송잔치
.小論들의 반란(영조): 함안(이인좌)+안의(정희량)
.동계 정온(정희량의 祖父):은 살아남아, 혼맥으로 가문을 유지한다
.해우소(解憂所): 근심을 풀어 버리다(화장실)
.백제~신라 사신들의 환송잔치로 위로하는 공간이다(넓은 바위)
@1543년, 退溪(이황)가 영승마을에 온다는 기별이 왔다
.신권은 요수대에 조촐한 주안상을 준비하였으나,
퇴계는 급히 왕명으로 상경하면서 편지 한통을 보내온 것이다
“수송대(愁送臺)를 수승대(搜勝臺)로 바꾸는게 좋겠다.....”
.신권은 퇴계에게 답장을 했지만, 두사람은 만나질 못한다
@암구대(岩龜臺)에는 글씨가 빼곡하다
.퇴계 詩를 새기고, 그 옆에 갈천 임훈의 詩를 적었다
.너럭바위 긴돌구멍(藏酒岬)에 술을 담아둔 곳이다
.갈천 임훈은 퇴계와 동갑, 낙향하여 효행으로 정려문을 받았다
.갈천 임훈(은진임씨, 巨儒, 갈계리 출생, 종택은 남덕유산 입구)
@오숙(1602~1675)는 갈천의 詩를 오묘하게 비판한다
.갈천의 詩에는 “외지인 퇴계(이황)”가 수승대 현지에 오지도 않고
이름을 바꾼것은 반대하는 詩라면서...엇갈린 해석을 하였다
.현지인 입장에서 “근심을 보낸다”는 愁送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워낙 바쁜 분이어서...한양으로 급히 떠났지만
.“꽃은 강 언덕에 가득하고 술은 술통에 가득하다”의 의미는
자신이 처사다운 여유로움이 있음을 암시했다는 것이다
2.수승대(암구대)가문의 결투
@퇴계(이황)의 詩는 1개, 요수(신권)~갈천(임훈)의 詩는 많이 있다
.신권~임훈...가문의 결투가 시작된다(유명한 退溪 때문에 발단)
.퇴계의 詩옆에 요수(신권)이 아닌, 갈천 임훈의 詩가 있기 때문이다
.퇴계 덕분에 갈천(임훈)의 후손들은 위신이 높아지고,
임씨동천으로 전해지자, 매우 좋아했다
@요수(신권)~갈천(임훈): 후손들은 억울하여 글씨를 새겼다
.요수(신권)후손: “요수신선생장수동 (樂水慎先生藏修洞)”
.갈천(임훈)후손: “갈천장구지소 (葛川杖屨之所)”
@이건창의 수승대기(1852~1898)
(신권후손들은 대대로 이곳에 살면서 어쩔수 없었다
신권후손들이 과거급제을 많아하고 가문이 부흥하여
임훈가문을 능가하였다
.구연재에 구연서원(신권)을 설립(1694년,숙종)
임진왜란에 소실, 요수정을 재건할 때 살인사건(1805년,순조)
.신권후손 “이 臺는 우리집안 물건이다” 라고 새긴것이다
조상명단~자손~종족명단을 묘비. 묘갈처럼 세부적으로 새겼다
지방수령~왕래객~사신들은 임훈가문이 있는줄 몰랐다
.이에, 임훈 후손이 화가나서 글씨를 써 넣었다
“이곳은 우리 갈천 임훈선생이 노닐던 곳이다”
두 가문은 현감~감사~조정에 100년간 소송을 제기하였다
3.문인화가 관아재 조영석(함양 안의현감)
@조영석이 觀水樓(2층누각 문루)에 용틀림 모형의 기둥을 사용했다
.영조의 부름을 받고 “세조의 초상화를 고쳐 그리라”는 하명을 거절
“그것은 환쟁이가 할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니다”
@관수? 맹자(君子의 학문을 배우는 순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물의 흐름을 봐야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4.거창신씨 시조(慎)
@宋나라 출신(신수), 고려(문종)에 귀화, 참지정사
.신수의 아들(신안지): 병부상서
.신안지의 아들 신승선(1436~1502)은 이조참판
신승선은 임영대군(세종대왕의 4째아들)의 딸과 혼인(오빠 구성군)
.신승선의 딸: 성종의 세자빈(연산군의 부인)
신승선의 아들: 신수근(정승), 중종반정(장인)
.신수근의 딸: 단경왕후(12세, 7일간 왕비, 인왕산 치마바위, 온릉,70세)
.연산군은 왕비의 관향 “거창군”으로 승격~중종반정후 “현”으로 강등
.신수근의 딸은 단경왕후(12세, 7일간 중종 왕비)....
.신씨는 중종의 부름을 기다리며, 인왕산을 그리워했다
.중종이 그리워 인왕산에 치마폭을 펼쳐...치마바위 유래
.양주 장흥(溫陵; 남편 손길이 그립다, 70세)
@신권(樂水堂 요수당)
.400년간 거창신씨의 본향 “요수정 신권” 벼슬 포기, 은거, 학문에 전념
.巨儒 “갈천 임훈” 신권(樂水, 요수)의 매부
.거창은 400년간 거창신씨의 본향으로 “신권”이 낙향하여
“벼슬은 사람으로부터 받지만, 自我는 하늘에서 받는다”
.거창 신씨고가(원학고가, 猿鶴古家)
.12대 후손: 신도성(경남도지사)
@요수정 “신권”(거창신씨)는 벼슬을 포기하고 은거하며 학문에만 전념
.거북을 닮은 암구대(岩龜臺)를 짓고, 단을 쌓아 나무를 심고,
.냇물을 보로 막아 구연(龜淵)을 만들었다
.부근 정자에 자신의 호를 본떠 현판 요수정(樂水亭)을 걸었다
.구연재(龜淵齊, 훗날 구연서원)를 짓고 후학을 양성한다
.수승대, 암구대 부근에 유흥지가 되었다(거창 국제연극 축제극장)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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