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07.지대위원장 워크숍 1일차(11,7~11,8)
*추사 김정희고택, 윤봉길의사 기념관, 천수만, 압면도, 니케별장, 수덕사
*꿈에 본 내 고향
꿈에 본 내 고향
@한응인(韓應寅 1554∼1614) 백졸재유고(百拙齋遺稿)
“꿈을 기록하여 송덕구에게 보여 주다(記夢 示德求)”
침상 추워 꿈 깬 뒤 해진 갖옷 두르고
아직도 눈에 선한 고향 꿈을 생각한다
국화 꽂고 부모 앞에 덩실덩실 춤추었고
백주 들고 마을에서 친구들과 노닐었지
그 음성 그 모습에 객지에서 기뻤는데
두 고향을 이별하고 지금 가을임에랴
아침 일찍 누대 올라 저 멀리 바라보니
계주 숲 요동 구름 갈 길이 아득하다
@백졸재 한응인은 선조(宣祖) 연간의 문인이자 정치가입니다.
그의 특이한 점은 사신(使臣)으로 중국에 다섯번이나 갔다 온 사실입니다.
한 번도 어려운 사행(使行)을 그렇게나 많이 다녀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교관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입니다.
중국어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준수한 외모, 온화한 대인관계,
뛰어난 글 솜씨, 꼼꼼한 일처리로 신망이 꽤 두터웠다고 전해집니다.
@31세,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의 書狀官으로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지은 것입니다.
실록(實錄)에 의하면, 1584년 5월 3일에 출발하여 11월 1일에 귀국 보고를 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비행기로 세 시간 거리지만,
당시는 漢陽-의주(義州)-봉황성(鳳凰城)-요동(遼東)-심양(瀋陽)-산해관(山海關)-계주(薊州)-北京까지,
왕복 6,200여 리에 6개월이나 소요되는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새벽 안개, 한낮 먼지, 저녁 바람에 맞서야
하는 행역삼고(行役三苦)와 들판에 장막을 치고 모닥불로
언 몸을 녹이는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여정이었습니다.
‘추워서 잠을 깬 뒤에 해진 갖옷을 둘렀다’는 것이 고단함을 말해줍니다.
객지에서 갖은 고생을 하다보면 누구나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운 법입니다.
그래선지 새벽에 시인은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들과 술 한잔 진하게 나누는 꿈을 꿉니다.
사무치는 이들과 만나서 너무나도 기쁘고 행복했었는데, 그게 그저 한바탕 꿈이었으니 얼마나 허망했을까요?
‘두 고향을 이별했다’는 실제 어머님의 손을 놓고 고향을 떠나올 때와 방금 꿈속에서 고향에 다녀온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마침 고향 꿈을 꾼 시점이 가을 중에서도 추석 즈음이었다면 깨고 난 뒤의 쓸쓸함이 오죽했겠습니까?
실제 노정을 따져보면 이 시는 추석 무렵에 지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눈물에 젖어 향수에 젖어 아침 누대(樓臺)에 올라보지만, 굽이굽이 돌아가야 할 길만 아득히 놓여 있을 뿐입니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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