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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동우회(2014-2015)

2015-1202. 회장동우회 2015년도 송년의 밤

by 조흥식 2023. 4. 2.

2015-1202. 회장동우회 2015년도 송년의 밤(베누스타)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

 

 

 

역사가 기억하는 이름(청송심씨 심환지)

@순조실록(21018일 영의정 심환지 졸기)

영의정 심환지(沈煥之)가 사망하였다.

심환지는 본관이 靑松으로 명종의 장인이었던 심강(沈鋼)의 후손이다.

젊을 때는 김귀주(金龜柱)와 매우 절친한 벗이 되어 홍국영(洪國榮)을 공격하는 논의를 극력 주장하였다.

김귀주가 실패한 뒤로 심환지는 하급관료에 침체해 있다가 정조임금 통치의 중기에 비로소 발탁되었다.

 

정동준(鄭東浚)이 죄를 얻은 이후에 병조 판서에 발탁되고 드디어 정승이 되고,

노론 벽파(僻派)의 영수(領袖)가 되어 세도(世道)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자임하였다.

 

만년에는 또 김종수(金鍾秀)와 의견이 서로 어긋났는데

그를 따르는 자들이 대체로 마음 씀씀이가 험악하여 화()를 즐겨하므로

심지어는 상문(相門)의 십음(十蔭)이라는 비난까지 있었다.

 

정조가 승하하고 대왕대비가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하던 초기에

특별히 원보(元輔)에 제수하여 국정의 권한을 전적으로 위임하였다.

그러나 본래 아둔하고 재능이 없어 공적이 보잘것 없었고,

오직 자기편만 감싸고 다른 쪽은 배척하는 당동벌이(黨同伐異)를 일삼아

김관주(金觀柱), 정일환(鄭日煥)의 무리를 이끌어 진출시켰을 뿐이었다.

 

경신년(1800)~신유년(1801) 무렵에 참륙과 찬축의 여러가지 중대한 刑政을 맡아 모든 일을 결정하였다.

끝내는 노신(老臣)의 충곤(忠悃)으로써 역적 권유(權裕)의 흉소(凶疏)장려한 죄로 관작이 추삭되었다.

다만 권세와 지위가 높았는데도 자못 검소하다고 일컬어졌다.

 

@심환지가 죽은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늦가을이었을 것이다.

일인지하만인지상(一人之下萬人之上)이라 일컬어지는 자리,

신하로서 권력의 정점인 영의정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했으니

생이 끝나는 그 순간이 그리 한스럽지는 않았으리라.

임금 순조도 깊은 애도와 함께 최대의 예우를 표했다.

 

@순조는 관재(棺材)를 내리고 각신(閣臣)을 보내 영전에 제사하게 하며

시장(諡狀)을 기다릴 것도 없이 즉시 시호를 내리도록 조치했다.

내가 상중(喪中)에 있던 처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몸소 안위(安危)의 큰 책임을 짊어지고 사보(師保)의 중임까지 겸하여

세도(世道)를 안정시키고 군주의 덕을 보좌하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은 사람은 바로 이 영상이었다.”라 하고,

강을 건널 때 필요한 돛대처럼 의지했다.”라고도 했다.

나아가 영영 가버렸다는 슬픈 소식에 놀랍고 서러운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애도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영광스러웠다 하겠다.

하지만 역사는 그를 그리 훌륭하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 죽음으로부터 불과 40년도 지나지 않아 순조실록을 편찬한 사관의 붓은 차갑기만 하다.

아둔하고 재능 없어 아무런 공적도 남기지 못하고 그저 제 식구만 감쌌다는 것이

2년 남짓 되는 영의정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한 평가이다.

 

@심환지는 정조 서거 당시 좌의정이었다.

영의정 이병정이 중국에 사신으로 가서 채 돌아오기 전에

정조가 서거하는 바람에 혼란 상황에서 영의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대리청정을 하던 정순왕후와 함께 매서운 피바람을 일으켰다.

신유사옥, 사관이 말한 경신년~신유년의 참륙과 찬축을 주도하였다.

사학역적(邪學逆賊)이라는 이름 아래 참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아까운 인재들이 귀양을 떠났다.

 

@그때 귀양길을 가야 했던 사람 중에 마흔살의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다산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나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아마 그때 심환지의 의식 속에 정약용이란

이름은 그저 그런 사학 역적 중 한 명이었으리라.

살아 있는 동안 그 이름을 다시 기억이나 했을지 의문이다.

그러나 어떤 고통, 어떤 환희 속에서도 세월은 모두에게 똑같이 흐르고

역사는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평가한다.

동지섣달 칼바람 같은 시간이 지나고 머잖아 심환지는 세상을 떠나고

18년의 유배 생활을 견디어 낸 다산은 빛나는 학문의 성과를 안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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