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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6-1210.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봉사(도봉구청)

by 조흥식 2023. 5. 5.

2016-1210.세종로라이온스클럽 정기봉사(도봉구청)

농암(聾庵) 유수원(柳壽垣)의 마지막 진술

 

 

 

 

 

농암(聾庵) 유수원(柳壽垣)의 마지막 진술

@추안급국안(推案及鞫案)

*을해년 5월 역적심정연등추안(乙亥五月逆賊沈鼎衍等推案)

저의 신원입니다.

아버지는 유봉정(柳鳳廷)이고 할아버지는 유상재(柳尙載)인데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김조이(金召史)이고 외할아버지는 김징(金澂)으로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충주(忠州)에서 낳았고 저는 부모님을 따라 서울에서 자라고 호적에 올렸습니다.

저는 신치운(申致雲), 박사즙(朴師緝) 등과 사귀고 결탁하며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관직에 쓰이지 못하고 막혀 있는 처지는 신치운과 다르지 않았는데

이는 오로지 조제(調劑) 탕평에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위로는 나라를 비방하고 아래로는 조제 탕평에 관여한

여러 신하를 욕하면서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을 몰래 쌓아 갔습니다.

매번 서로 마주할 때마다 흉악하고 패악스러운 말을 내뱉었는데 마치 김일경(金一鏡), 박필몽(朴弼夢)이 말하듯 하였고

때로는 김일경, 박필몽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으며, 저는 그들과 하지 않은 얘기가 없었습니다.

우리들은 여러 역적에 대해서 그들이 다만 흉악한 역적임을 알지 했던 것은 아니었으나

실로 준론(峻論)의 당론을 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원망하기까지 하였고,

나라를 원망하는 마음으로 망측하고 패악스러운 말을 항상 입에 올리기까지 하였습니다.

대역부도죄를 저지른 사실이 확실하다고 지만(遲晩)합니다

 

*이두(吏讀) 풀이

矣身: 본인,

: ~

: ~

竝只: 모두

白良乎: ~하셨더니

是白乎㫆: ~이시며

是白置: ~이옵니다

的只是白乎事: 확실하온 일

 

@1755(영조 31) 524,

조선 후기 관료이자 실학자인 유수원이 유봉휘(柳鳳輝)의 지휘를 받고

그의 상소를 베꼈다는 혐의, 역적인 신치운, 박사즙과 함께

김일경의 뜻을 마음에 담아두고 주도면밀하게 일을 꾸몄다는 혐의를 받고

추국을 받은 후 죄를 시인한 결안(結案)이다.

입사 후 조정에 잠깐 등장한 시기를 빼면 평생 지방으로 전전하였던

유수원은 영조 20, 속오례의 편찬 작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난 이후

시골에 은거하면서 조정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10년이 지나서 역옥(逆獄)사건에 연루되어 추국청에 붙잡혀 오게 되었다.

영조 31년에 일어난 을해역옥 사건은 나주 괘서(掛書) 사건과 무신난 때

처형당한 심성연(沈成衍), 심익연(沈益衍)의 동생인 심정연(沈鼎衍)

영조와 조정 대신들을 비난하는 내용을 쓴 답지를 제출한 시권(試券) 사건을 아울러 말한다.

 

@유수원은 대표적 소론 가문의 사람으로 영조 초반기의 정치적 참화를 잘 피해 갔으나

결국 심정연의 시권사건에 연루된 것이다.

유수원이 유봉휘의 종질(從姪)이라는 점, 신치운과 심악(沈䥃),

그리고 역모로 처형된 증조부의 처가 쪽 후손인 박사즙과의 친분이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경종을 지지한 유봉휘는 연잉군을 왕세제로 책봉한 노론에 반대하는 소론 측의 선봉에 섰는데

신임사화의 배후로 지목이 되면서 유배된 뒤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유수원이 바로 그러한 유봉휘의 종질이었다.

 

@유수원은 처음 진술에서

5촌 간인 유봉휘가 나라에 대역죄를 저지른 죄인이고 자신에게도 대대로 원수였다며

유봉휘와의 친밀성을 부인하면서 살길을 도모하였다.

유봉휘의 상소를 베낀 적이 없고, 역적 유봉휘가 전라도 관찰사였을 때,

어머니가 병이 나서 그에게 찬거리를 구했으나 한 꾸러미의 조기도 주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친척 간의 친밀한 정이 전혀 없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추안급국안 을해 5월 역적심정연등추안 逆賊沈鼎衍等推案 524일 유수원 1차 진술)

그러나 자신이 이 옥사(獄事)에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진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524일 심문을 받은 후 유수원은 밥을 먹지 않고

미친 사람처럼 굴면서 수갑을 풀어달라고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

이에 대해 추국청 심문관들이 추궁하자 유수원은 속이 좋지 않아 미음을 먹고자 했으나 먹지 못했다는 것,

수갑을 풀어달라고 한 것은 옷을 갈아입고자 했기 때문이었다는 것,

또 처형 여부를 나졸에게 물어보면서 처형될 때 수갑을 푸는지를 물어보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문관은 유수원이 황당하고 미친 듯한 얘기를 하며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다고 했다.

(추안급국안 을해 5월 역적심정연등추안 525일 유수원 2차 진술)

처형당하리라는 것을 예견하였고, 그 시간도 빨리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하며 안절부절못하던, 죽음을 목전에 둔 한 인간의 모습이 읽힌다.

 

@실제 추국청에 끌려와서 심문받은 사람들은 진술에서 심악은 준론으로 유명해서 이름을 알고 있으나

유수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했다.

그만큼 유수원은 조정에서 먼 사람이었다.

유수원 본인도 낙향(落鄕)해서 버려진 자신이 어찌 당론에 간여할 수 있겠냐며 억울해했고,

심악이 비록 자신을 가리켜 준론이라고 하였다 해서

어찌 그 때문에 죽어야 하느냐고 항변하였다.

그러나 결국 영조를 비롯한 추국청 대신들은 자신을 죽이고야 말 것이라는 점을 알고 체념했다.

신치운, 박사즙의 진술이 맞고, 자신도 동참했다는 것,

진술 도중 영조를 올려다본 것 역시 불경(不敬)스러운 행동으로

역적의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고 했다.

신치운, 박사즙 등과 나라를 원망하는 말을 하였고, 등용될 수 있는 자들이

모두 등용되지 않고 있는 점이 지극히 원망스럽다고도 하였다.

 

@130대의 신장(訊杖)을 맞고, 당색에 관계없이 고루 등용한다는 탕평이

결국은 일부 소론과 노론들만의 등용이었다며 영조의 조제(調劑) 탕평을 비판하는 결안을 바친 뒤,

서소문 밖 앞길에서

대역부도죄로 부대시(不待時) 능지처참(陵遲處斬) 되었다.

추국에 붙잡혀 와서 하루 동안 두 차례 추국을 받고 다음 날 능지처사(陵遲處死) 된 것이다.

 

@유수원은 저서 우서(迂書)를 통해 조선 정국 전반에 대해 문제점을

진단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였다.

결국, 그러한 논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우활한 글이 될 것이라는 뜻에서

우서라 이름 지었으나 그 내용은 탁견이었고 특히 법제도 개혁안은 현실적이었다.

법사(法司)의 전문성 부족, 소송 절차를 무시하는 월소(越訴)의 만연,

지방 감사의 자의적인 속전(贖錢) 유용 등 사법 제도 전반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특히 정치적인 논리로 반역죄를 다루는 추국청 운영에 대한 지적은 정확했다.

 

@대간(臺諫)의 월권행위를 가장 큰 문제로 보았다.

추국청에 대신(大臣) 이하 사헌부, 사간원 대간들이 참여하였는데,

이들이 죄의 사실 여부를 조사하지 않은 채 억측으로 생살(生殺)

임의로 결정하고 바로 극률(極律)을 청하고 있다는 것,

임금의 윤허만 내리면 의금부에서는 그저 전지(傳旨)대로 시행하는 형편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평소 대신(大臣)의 직위에 있던 자라도 역모 사건에 연루되면

사실을 진술할 겨를도 없이 죽게 되는데,

죄인이 한 마디 해명도 못하고 죽어가며,

심문도 하지 않고 바로 죽이는 예는 어떤 경전(經典),

어떤 율령(律令)에도 없다면서 그 부당함을 토로하였다.

 

@실제 영조와 노론의 정적인 남인, 준소 세력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영조 31년까지 추국청의 재판은 그러한 문제점들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죄인의 조율(照律)에 있어서 대관들은 상소를 통해 영조를 좌지우지했고

연루된 죄인들에게 대역죄를 씌우거나 추시(追施)하여 자손들까지 연좌시켜 처형하였다.

무신난 이후 살아남은 남인, 준소들은 계속되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사라져갔다.

 

@유슈원의 우서에서 추국청의 문제를 짚었을 때

자신이 그로 인한 희생자가 되리라는 점을 조금이라도 예견할수 있었을까.

비록 귀는 들리지 않았으나 보는 눈은 밝았던 유수원은

같은 당색이었던 왕, 대신, 대간 등이 재판관과 심문관이 되어 운영하는 추국에서,

그리고 준론이라는 죄목에 대해 어떤 해명도 요구되지 않은 상태에서 6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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