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29. 북한산포럼(광화문 송추가마골 더 어반, 세종문화회관 뒷편)
三陟에서 朝鮮을 태동하다(준경묘,영경묘)
三陟에서 朝鮮을 태동하다(준경묘,영경묘)
1.삼척이야기
@삼척(三陟)이란?
.3개 하천(마읍천, 오십천, 전천~동해시)의 골짜기를 말한다
.묵호(墨湖)? 물빛이 먹물처럼 검다(석탄과 탄광 항구)
.북평항(北平)+묵호(墨湖)를 통합하여 동해시가 탄생하였다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제1함대 사령부
.三尺童子(삼척동자)란?
무식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키가 석자 정도밖에 되지않는 어린아이(철없는 어린아이)
@삼척동자(三尺童子)와 삼척(三陟)은 아무런 상관성이 없다.
.그러나 “삼척이 아름답다는 것을 어린 꼬마(三尺童子)도 알고 있다?”
“삼척은 어린 꼬마라도 찾아올 만한 가치가 있는 곳?”
삼척시는 삼척동자를 시(市)의 로고로 삼은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오십천은 삼척이 자랑하는 물길이다.
주민들의 애환을 담고 유장한 세월을 흘러내린 역사의 증인이다.
2.삼척 죽서루(竹西樓)
.고려 충렬왕(1274~1308), 이승휴(李承休)가 창건
.1403년(태종),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
.주심포식(柱心包式) 건축이지만,
.부재(部材)들은 다포식(多包式)의 모습을 더 많다
.기단(基壇)과 주춧돌 없이 자연암반위에 세우고 있다
.이이(李珥)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부사 이성조(李聖肇, 숙종)의 글씨
.백제식 전통한옥의 다포는 “하앙식” 공법으로 깊은 지붕이다
3.동해 망상의 유래?
@송강 정철(강원도관찰사)가 사랑했던 소복(삼척 관기)을 떠나보낸후
.아쉬움을 상상했던 “망상의 동해” 이다
4.삼척 추암촛대바위
@愛國歌의 해뜨는 일출의 장면(화합의 상징)
.한명회(강원도 관찰사)는 추암바위를 능파대로 불렀다
.凌波臺(능파대)
“파도가 느릿느릿 오가는 곳”을 말한다
“관동팔경에서 통천 총석정~강릉 경포대에 뒤지지 않는다”
“겨울연가”에서 주인공이 여인과 이별하는 아픔의 장소
.전설속의 어부는 천하일색 첩을 들였는데,
두여자의 심한 다툼으로 추한꼴에 지겨워 바다신이 잡아간뒤,
漁夫는 바위로 변했다
@海岩臺(해암대)
.심동로의 정자(고려말 예의판서, 삼척沈氏 중시조)
三陟 준경묘~영경묘
1.숭례문 화재후 재건준비
@삼척 濬慶墓(준경묘) 금강송 10그루(경복궁 복원에 사용)
.裨補策(비보책 풍수),불은 불로 제압한다(무학대사)
.景福宮의 유래? 詩經에서 인용, 이성계가 승인한다(삼봉 정도전)
“君主가 술에 취하고, 德으로 배가부르니, 福이 가득하리라”
.조선을 창업한 이성계 조상묘 부근에서 금강송을 베어왔다
.경복궁, 광화문, 남대문, 창덕궁...삼척 금강송을 대들보로 사용했다
@배희완 대목장
.돈암장(이승만 대통령, 현 대성그룹), 춘양목+백향목(백두산)
돈암장~마포장(흥선대원군의 아소정)~이화장~경무대
.한국의 집(박팽년의 터)은 경복궁 자경전을 본떠 건축한다
.현, 광화문과 남대문 복원공사(제자 신흥수, 200억원)
2.조선 건국의 실마리(준경묘, 영경묘)
.高麗 멸망~朝鮮 건국을 통해서 흥망성쇠를 동시에 찾아 볼수있다
@이성계의 4대조 이안사(목조)는 전주지방 무인세력가(1231년)
.목조 이안사(태조의 4대조)가 전주에서 관기(官妓) 문제로
산성별감(山城別監)과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전주州官+전라도 안렴사+산성별감(중앙파견)는
이안사 호족을 공격한다는 첩보를 입수하자, 도주를 결심하였다
전주의 지주(知州, 주장관)가 산성별감과 한편되어 죽이려 하므로,
목조는 외가가 있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천연요새)로 피신했다.
이때 이안사를 따르던 170여호도 함께 이주했다.
.이강제(고려대장군, 삼척李氏 중시조, 이안사의 外祖父)의 혈연으로
.야사(애첩 관기를 성추행한 산성별감을 골탕먹여, 보복을 우려했다?)
.선박 15척을 건조하여 왜구를 물리치고,
두타산성을 구축하여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肇慶檀(조경단, 전주 덕진)은 묘는 전주李氏의 중시조(이한)
.건주산(주산)과 명당수(덕진)
.풍수지리 “행주형(行舟形)”...부자 마을의 터
3.濬慶墓(준경묘, 이양무)+ 永慶墓(영경묘, 부인, 삼척李氏)
@이안사 부모(이성계 5대조 이양무)의 묘이다
.전국 10대 명당으로 우백호가 좌청룡을 압도하는 풍수지형으로
.훗날, 세자(長孫)들의 수난이 심하고, 왕자간의 대결이 많은 풍수이다
.삼척 활기리의 원래 명칭은 皇基里(황기리)이다
“왕이 탄생할 명당”으로 알려지고 있다
4.고종이 준경묘+영경묘를 명명하였다(1899년, 14명 인력배치)
@“兩墓守護節目”을 제정한다(금강송 군락지 100년)
.묘소 수축으로 비각+제실, 성역화와 토종 소나무를 조림한다
.송림(황장목)은 임금의 棺으로 경복궁 중건에도 사용되었다
.정2품송(속리산)+미인송 교배, 200그루 키운다(2001년, 혼례식)
5.金棺百牛 설화
@준경묘~영경묘의 金棺百牛 설화(금관백우), 조선개국을 예고한다
.삼척에서 이안사는 부친(이양무) 喪(상)을 당했다.
.父母 묘자리를 노승+동자승이 알려주었다
葬地(장지)를 정하지 못하고 산속을 헤메는 중에 한 道人이 나타나,
목조가 앉아있는 곳을 가리키며,
“그 곳에 소 100마리를 잡아 개토제(開土祭)를 지내고, 棺을 金으로
싸서 장사지내면 5대손이 새나라의 창업주가 되리라” 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쫓겨사는 이안사는 道人이 지시한대로 실천할 재산이 없었다.
.이안사는 편법으로 소 백 마리면 백우(百牛)인데,
이를 달리 백우(白牛)로 표현하여 처가의 흰 소를 잡아 올리고,
관은 금색이 돋는 귀리짚으로 감싸 장사를 지냈다.
“백우금관(白牛金冠)의 전설”을 실천한 것이다.
가난속에서 만난 시련을 지혜로 헤쳐 나간 목조 이안사는
재치있는 기지를 발휘하여 훗날 이성계가 임금이 될수있었다
.누런 호밀대(棺)+힌소(白牛)를 잡아서 濬慶墓(준경묘)를 장례하였다
(편법으로 제를 지냈기에, 조선시대 고난과 풍파가 많았다)
(호밀대는 노란색, 평창李氏“처가의 白소” 사용; 글자+음이 비슷)
.장사지낸 준경묘는 미로면 상정리에 있고,
훗날,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는 동산리 영경묘이다.
6.함길도 덕원군으로 집단이주(元나라에 귀화)
@江原道안렴사(전, 全州 산성별감)의 三陟을 순시한다는 소문에 도주한다
.함길도 덕원군에서 元나라에 귀화(170호 함께 이동, 경흥부 정착)
“성품이 호방한 穆祖(4대조부)는 天下經營의 포부를 품고 있었다”
.日本 극우학자는 이성계를 여진족 후예로 평가절하했다
“朝鮮은 500년간 女眞族의 지배(이성계 조상)를 당한 셈이다”
.삼척을 떠난 160년후, 이성계는 조선을 창업한다
.이성계의 古祖(穆祖)의 伊陵(이릉)은 江陵변에 있다
@이성계는 삼척군을 府로 승격시키고 “홍서대를 내린다”
.서대(犀帶)는 일품벼슬의 관리의 혁띠, 물소뿔, 붉은색이다
.세종: 삼척부사를 시켜 양묘를 찾지만 실패한다
.성종: 묘소 수축하던중 중단하였고 “어사홍서대기적”을 내렸다
.선조: 송강 정철(관찰사)의 수축건의에 개축하고 수호군을 두었으나,
황지에 있다는 소문으로 중단하고, 수색했으나 발견치 못했다
@조선의 역사를 이성계의 4대조인 목조에서 시작한것도 그 이유이다
.제사를 지낼때 4대조를 봉사(奉祀)하는 관례에 따른것이다.
.高麗를 멸망시키고 새 왕조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성계의 4대조부터 朝鮮 개국의 업적에 많은 공을 남겼다는 것이다
7.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
@海東六龍이 하늘로 올라갔다
.周易 건괘(乾卦)의 “뜻을 마음껏 펼쳐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용비어천가는 어휘와 문법의 생경함의 본향이기도 한다
육룡(六龍), 전주 이씨의 내력을 말해 준다.
.목익도환태태? 기억이 새로운 용어다.
.龍飛御天歌에는 목조~익조~도조~환조의 삶이 고대의 성인들이
中國을 개국하던 업적과 똑 같다는 천우신조(天佑神助)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시니...(제1장)”
*해설: 여섯 임금님이 나시어(飛) 개국(開國)의 일을 하시는데
하는 일마다 하늘이 내리신 福이었다는 것이다.
@해동六龍은 누구인가?
.목조(이안사)~익조(翼祖 李行里)~도조(度祖 李椿)~환조(桓祖 李子春)
~태조(太祖 李成桂)~태종(太宗 李芳遠)으로 이어진다.
.2대(정종)은 六龍의 반열에 들지못한 이유는 정종이 2년 2개월 동안
재위했지만, 태종(이방원)과 형제지간이기 때문에 一代를 넘는
조(祖)의 개념인 六龍에 넣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미로면 활기리의 목조가 살았던 집터에는 구거지비각(舊居地碑閣)이
세워져 있어 조선 건국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여진족이 사는곳까지 밀려갔던 가문이 오랫동안 기반을 다지고,
.왕조 창건을 자랑하고, 선조들을 높이려고 6代祖 내력을 노래했다
@1~2장: 노래 전체의 주제가 요약되어 있다
.1~2장: 옛 聖人은 중국의 창업주들을 말한다
中國 창업주와 여섯龍의 위업을 1줄씩 노래했다
.3~8장: 목조~환조에 이르는 한아비들의 행적을 노래했는데,
이들은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다고 했다
@9~89장: 태조(이성계)
.9~14장: 태조가 위화도회군, 한양으로 천도한 경위를 노래했다
.15~26장: 태조가 왕이 될 징후가 고려 초기부터 보이기 시작하여
목조·익조·도조·환조에 와서 표면화되었다는 내용이다
.27~46장: 태조의 비범한 모습과 재주 및 신이한 기적을 노래했다
.47~62장: 태조의 武功과 德을 왜적/오랑캐를 예로 들어 말했다
.63~85장: 태조의 활쏘기 재주, 학문, 인격을 기리고,
.86~89장: 다시 태조의 신이한 힘과 무공을 기리면서 끝을 맺었다
@90~125장: 태종(이방원)
.90~109장: 태종의 용모와 인품, 하늘의 도움, 부인의 내조...
.110~125장: 작품의 결론이자 후대 임금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선조의 어려움을 기억하여 건국의 뜻을 잊지말라고 하고,
.정치의 그릇됨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태평과 사치, 교만, 간사, 백성 수탈은 모두 잘못된 정치라 하며,
.治者가 지켜야할 행동규범을 제시, 정치철학적 詩의 면모를 보였다
@月印千江之曲(찬불가, 불교서사시)
.석가모니 일대기를 詩의 형식으로 읊다(수양대군이 성균관에서 집필)
.세종28년(1446), 소헌왕후(심씨) 사망이후 고인의 명복을 위한 작품
“부처가 백억세계에 모습을 드러내 교화를 베푸는 것이,
마치 달이 즈믄 강에 비치는 것과 같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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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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