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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0-1008. 오정순 운영위원 수재학원

by 조흥식 2023. 12. 24.

2020-1008. 오정순 운영위원 수재학원 방문(동대문구 답십리)

大邱(달구벌), 雪中梅 박팽년(死六臣)

 

 

 

 

 

 

大邱(달구벌), 雪中梅 박팽년(死六臣)

@왕건과 견훤이 팔공산(공산동수)전투

.신라 경애왕은 견훤의 침공을 받고, 왕건에게 지원요청을 하였다

.견훤은 경애왕을 죽이고, 김부(경순왕, 56)를 임명하였다

.왕건(5000)의 군사가 전멸하며 김락, 신숭겸등 장수8명이 전사한다

 

@칠곡(왜관), 다부동전투

.가산산성(해발 901m)은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1639, 인조)

.10만명을 동원하여 가혹한 공사를 추진하여 해임되었다(1640)

.칠곡도호부를 산성에 설치후, 불편하여 80년후 이전한다(1819, 순조)

.왜관 융단폭격(1950,8,16): (전투기 98, 폭탄 960, 26분간 맹폭으로 중공군 3만명 전사)

 

@달구벌은 경상감영 300(,우도 통합)

.달구화~달구벌~대구(경덕왕 737)

.통일신라의 도읍천도를 계획했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최초 돌거북의 머리는 남쪽에, 꼬리는 북쪽을 향하였다

.3대 약령시장(대구 약전골목, 평양, 전주)

.팔공산 갓바위(850m), 동화사, 파계사

*3대 기도처: 갓바위(팔공산), 도솔암(선운사), 홍련암(낙산사)

 

 

 

 

雪中梅 박팽년(死六臣)

@설중매 박팽년, 달성 파산서원 *인문학열전(처가, 외가의 위력)참고

.달성 파산서원(荷葉亭, 하엽정, 1747)

.박성수(박팽년의 11대 후손)가 낙향한 순천박씨 운집마을

.낙빈서당(1678)~파산서원(사액, 1694, 사육신 6명 배향)

.99칸 건축, 박계창(13대 후손)24칸으로 줄어들었다

.태고정(양녕대군 필체), 초천자 현판, 삼가헌(1747), 3대정문

.대들보에 미수 허목의 필체(전서체)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

“1447(4), 꿈속에서 인수(박팽년)과 어느 산속 복숭아 숲을 만나...

시골 옷차림에게 길을 물었더니(이곳을 따라 북쪽 골짜기에 이르면 桃源입니다)

신선이 사는곳처럼 평온하여 박팽년에개 말하였다(바위에 나무 얽고 골짝에 구멍 똟어 집을 지었다...)

그때 뒤따라 오던 몇 사람이 있어 돌아보니 정보(최항)과 범옹(신숙주)이 아닌가?

낮에 한일은 밤에 꿈이 된다고 했던가?...”

.안평대군은 가도(안견)을 불러 그리게하여 3일만에 완성하였다

 

@박팽년은 수양대군이 즉위할 때 자결을 시도했으나, 성삼문이 살아남아 후일을 도모하자고 설득하였다

.왕의 친국에 나리칭호를 사용하며 상감은 사용하지 않았다

()으로 쓰지않고 ()로 기록하였으며 부귀영화를 멀리하고 죽음과 멸문을 각오한 충신이었다

 

@사각형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하고, 연못풍수도 매우 중요하다

.수경(사각형 연못)도 중국의 연못(둥근형 섬과 교량설치)을 본받아

방지원도형으로, 음양오행을 응용한 정자 건축과 석물을 전시하고

.연못에는 둥근모형 섬(봉래섬)을 만들어 수련(연꽃)을 키웠다

 

@사위도 緣坐制(연좌제)에 해당되는가?

*설중매 성삼문(1418~1456 死六臣)

.1421(세조3), 김질은 성삼문의 역모 사실을 고변했다(62)

.단종 복위를 함께하자고 꼬였다는 것이다

근래 혜성이 나타나고 시옹방의 시루가 절로 울었다

*시옹원, 시옹방: 궁중 주방을 말한다(어선방: 황제주방)

.고변 하루전날, 창덕궁 연회(명나라 사신영접)에 거사하기로 했었다

.고위 무반(2)이 임금 옆에 侍立(시립)하는 雲劒(운검)의 임무를

성승(성삼문의 父親)과 유흥부가 맡기로 하였으므로 세조의 측근(신숙주, 권람, 한명회)을 제거하기 좋은 여건이었다

.한명회가 창덕궁 광연전이 덥고 협소하고, 운검을 생략하기로 건의하여

세조는 신숙주를 시켜 재검토한뒤 운검을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성삼문과 박팽년은 거사를 연기하기로 주장을 하였지만,

雲劒을 세우지 않은것과 세자가 본궁(경복궁)에 있게되어 참석치 않은것은 하늘의 뜻이다...”

참석키로 했던 세자도 참석을 하지 않았으며, 급히 통보를 받고 군사를 거느리고 올까봐서 불안하였다

.성승과 유흥부는 보안누설을 염려하여 강력하게 추진을 강조하였다

.유흥부는 훗날, 심문과정에서 통탄을 하였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書生과는 같은일을 도모하기 어렵다더니, 과연 그렇구나!” 성삼문이 결단하지 못함을 원망하였다

 

.1672(현종13), 인왕산 비탈에서 오지 그릇이 발견되었는데,

그릇 속에는 신주 3(성삼문, 외손 박호 부부)가 있었다

성삼문의 신주는 외후손 박씨집안으로 전해져 250년후 발견되었다

.성삼문의 아들(5)은 모두 참살되어는데, 부인이 종에게 성삼문의 신주를 부탁하였고,

종이 죽은뒤, 외손(박호)에게 전해진 것이다

.박호는 아들이 없었고, 성삼문의 외손으로 불이익을 받을수가 있었다

그래서 종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박호는 과거급제후 정언으로 등용되었으나, 대사간의 논박을 받았다

역신의 후손으로 간관이 될수 없다...”

 

.박호는 한참 후에야 관직에 나갈수 있었는데,

(박증)의 아들을 養子로 들였지만, 성삼문의 祭祀는 맡기지 않았다

後孫에게 부담을 주지않으려 했던것이다

.이후, 오지그릇의 신주는 다시 박씨집안(모친 박씨)으로 보내졌는데,

박팽년의 生家와 박씨들은 홍주(충남 홍성)에 있다

박팽년은 자신의 딸을 자신의 外家로 출가시킨 것이다

외가이자, 외후손이 되었다

*聯婚(연혼)이란? “여러대에 걸쳐 婚姻한 가문을 말한다

.계속 박씨가문에서 祭祀를 지낸 外孫奉仕를 한것이다

.1691(숙종17), 死六臣을 재평가하면서 박씨가문을 고려하게 되었다

지방에 流落한 외손이 지금 祭祀를 받들고 있으나, 가난하여 祭祀를 올리지 못하니,

감사로 하여금 그 성명을 찿아 등용케 하시면 殿下의 거룩이 더욱 빛날 것입니다

숙종은 건의 받아들여 등용한 것이다

.大明律(역적 집안의 여자, 연좌제 여부)

어미, , , 아들의 처는 功臣의 종으로 삼고, 만약 딸이 시집가기로 하여 남편이 확정된자는 연좌하지 않는다

시집간 딸과 사위는 연좌가 없어, 문제삼지 않은 것이다

.세조는 역모한 집안의 사위도 모두 먼 지역으로 안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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