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04. 2021년도 신년하례 및 시무식
김훈 소설 남한산성(1636년 병자호란 이야기)
김훈소설 남한산성(1636년 병자호란 이야기)
1,인조는 과연 14년동안 뭘 했는가? )
@왜 임진왜란의 전철을 왜 밟았는가?
.폐모살제의 광해군을 강화로 유폐시킨 인조반정의 주인공 능양군
.인조반정의 잘못된 논공행상으로 이괄의 난(1624, 인조2)
당시, 공주성으로 피신했던 실책을 잊었는가?
공주성에서 恨을 쓰다듬었던 나무에게 정3품의 벼슬과 쌍수정으로
칭호까지 남겼다니, 참으로 정신이 있는 임금인가?
.이때, 공주성부근 백성(임씨)이 떡을 진상했는데, 너무 맛이좋아
떡이름을 "임절미"라고 불러 “인절미”라고 아직도 불리고있다
@남한산성에서 부식이 없던지라 "도루묵"이 얼마나 맛이 좋았으면
"충미어"로 불렀을까? 훗날 정축화약후 배가 따뜻했을때 생각났다
.그때 먹었던 충미어는 맛이 굴비처럼 맛이 없었을테지...?
.그래서 다시 “도루묵”으로 불렀던가?
2.외교정책 미흡으로 호란(2회)을 자초했다
@정묘호란(1627년. 인조5년. 후금 공격: 3만명)
.강화도 피신후, 의형제국 조공약속등 "강화도 조약"을 어긴것이다
@병자호란(1636년 12월. 인조14년, 청태종: 12만명)
.형제국 약속, 명나라 호의에 불만으로 침략해온 것이다
“군신관계 전환, 조선군 3만명을 지원하라” 거절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피신(1636,12,15)
병력(13000명), 식량(14300석, 50일분), 소금(90일분)
.강화도 함락후 순절(김상용/김상헌의 형, 김익겸/서포 김만중의 父親, 윤방...)
@남한산성에서 3갈래 의견이 분분하였다(和, 戰, 守)
.김류(영의정)
.최명길(이조판서): 화친주장으로 판서들의 처형 상소, 항복문서 작성
.김상헌(예조판서): 항복문서를 찢어버려...자살 실패(전, 안동김씨)
.이성구(병조판서)
.김자점(도원수)
.이시백(수어사): 최명길(이판)보다 5세 연상
.동계 정온: 활복자살 시도(61세), 함양으로 낙향(某里재)
3.南漢山城의 47일간의 비참했던 모습(南漢山城, 김훈 小說)
@수라상: 닭다리조림, 취나물, 무말랭이,젓갈(밴댕이), 도루묵(충미어)...
.숯을 땅속에 보관~활, 허수아비 제작(뽕나무, 밤나무)
.송진으로 야간에 조명을 밝히고, 탈영병이 난무하였다
.쌀 가마니의 다양성(말먹이, 깔판, 난방용...)
.식량부족으로 말을 잡아서 사기진작을 시키고,
.초가 민가를 철거하여 화목으로 사용하고, 지푸라기는 말먹이...
4.최명길의 항복문서(주화파, 1586~1647)
@".....칸을 황극이라 일컫고 있으니 만고에 없는 일이옵고 明에게도 바치지 않았던 말이옵니다"
.天人所歸: 하늘과 사람이 귀의하는곳(하늘에게 칸을 내주자는 뜻)
5.三田渡 굴욕(삼전도: 마루), 삼전동 나룻터(1637.1.30)
@서문으로 군복착용 三拜九叩頭(삼배구고두: 여진족의 천자 배례의식)
.丁丑和約(정축화약, 항복조건)
명나라 단절, 청나라 군신관계(연호사용), 성곽 축성금지
歲幣(세폐, 공물)제공
.還鄕女(환향녀, 금의환향 錦衣還鄕: 비단옷에 출세후 고향방문)
.기념비(대청황제공적비), 이경석 필체(훗날, 영의정 1595~1671)
5.인질들의 포로생활(심양)
@소현세자(9년간), 봉림대군(소현세자 사망후 귀국), 인평대군(1년간)
.청음 김상헌(6년간)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삼학사(심양에서 참수되어 효수, 메밀국수로 연명+무우말랭이)
.윤집(30세, 처, 아들3명을 남양으로 피신시켜...)
.오달제(27세, 노모, 임신한 부인을 남겨두고...)
.홍익한(인조반정 공신, 이정구제자, 기호학파)
6.남한산성 수어장대
@인조즉위후 산성공사 시작하였다(친명배금정책, 전쟁대비)
.연못(45개), 샘(80개), 행궁...
.북문 법화골 기습공격으로 패배(300명 몰살)
.훗날 북문 개축(정조, 전승문 “병자호란의 패배를 잊지말자”)
.수어장대를 2층으로 증축하였다(1751 영조27년)
7.계속되는 인조의 외교정책 혼선과 결단성없는 리더쉽
@인조는 薪膽大義(와신상담)는 靑나라 복수를 내세우지만,
.소현세자 “親和論” 정치노선으로 9년만에 귀국, 2개월후 의문의 독살
.모든 사체구멍에서 검은 피가 흘렀다(독살, 인조의 방치?)
.소현세자의 자녀(아들 3명, 석철 12세...)에게 세자승계를 하지않았다
송시열의 추천을 묵살한다
.세자비(강씨 1611~1646)의 사약을 내린다(독약을 넣었다...모함)
.봉림대군(효종)은 薪膽大義를 지향하지만, 10년후 자손없이 죽는다
8.西人의 영수: 우암 송시열(효종의 스승) 등장
@山林, 士林이 정치에 참여하여, 南人(허목, 윤선도)과 대립이 시작된다
.西人은 노론(율곡학파, 송시열)과 소론(윤준, 파평윤씨)이 분류된다
.괴산 만동묘 大報壇(대보단)은 명나라 태조~신종~의종을 모신 사당
@봉림대군의 스승(효종즉위: 1649~10년후 사망: 1659)
.예송논쟁(효종사망: 1659, 5월), 西人들의 몰락
*효종 사망: 1차 예송논쟁(기해예송,1659), 조대비 복상문제(西人승리)
*효종비 사망: 2차 예송논쟁(갑인예송, 1674): 南人승리
@송시열의 유배
*1689년 1월, 숙의장씨 아들(경종)의 세자책봉 반대(기사환국)
(덕원~장기곶(5년)~거제도~제주도 유배~6월 한양으로 압송중, 정읍에서 사약을 받는다)
*1694년(갑술환국): 西人집권으로 명예회복한다
.노론의 영수, 조선실록에 3000번 이상 기록된 인물
.매일 손자와 토론 “산책길에 혹시 위리를 넘어건적이 있었느냐?”
손님들이 위리를 넘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학질환자 손님이 위안리치에 들어오면 깔끔하게 나았다
.송시열이 떠난후, 환자의 등에 “송대감” 글씨를 써붙이면 완쾌되었다
.孔子, 孟子처럼 松子로 불렀다
@서원철폐(1865. 47개 사액서원 제외, 600여개 폐쇄)
.흥선대원군(이하응)은 노론세력을 제거 목적이었다
.유생들의 집단 행동에도 초강경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백성을 괴롭히면, 공자가 살아나도 용서를 안한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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