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829.세종로라이온스클럽 영화관람(피카디리극장)
*종로산악회 방문(구,민주산악회)
*양동마을 경주 월성손씨(西百堂)
양동마을 경주월성손씨(西百堂)
@古宅(60여채)의 영남제일의 班村 양동마을이다(500년의 歷史)
.嶺南의 4대 班村마을: 양동(경주), 하회(안동), 내앞(안동), 닭실(봉화)
.하회마을(안동)은 商業化로 변신하여 人心이 사나워진 마을로 변했다
.양동마을은 언덕빼기 산 중턱에 자리를 잡고 있는게 특징이다
방문객의 눈높이보다 높게보이는 權威와 威嚴을 느끼게 하고있다
팔라티누스 언덕~안벤티누스 언덕에 로마 귀족들의 관저들이 많고,
LA 버버리힐스~샌프란시스코의 부자촌은 언덕부근에 있다
.양반들의 전통 世居地(세거지: 양반들이 이룬 집성촌)이다
@경주 월성, 손씨(양동마을) 대종택 書百堂의 후손은 약10만명이다
.堂號 書百堂(서백당)이란? “참을 忍을 100번씩 쓴다”
“이 집안의 宗孫이 되려면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警句이다
.古宅은 양민공 손소(入鄕祖, 1433~1484)가 양동마을에서
처가살이 하면서 건축하였다(1458년 추정, 대종택과 서백당)
.우재 손중돈(1463~1529, 양민공 손소의 아들)이 家門을 復興시켰다
.대지 1300평, 33~34칸으로 비교적 작은 古宅이이지만,
.현재, 20대 宗孫(손성훈)까지 550년이 경과된 건물이다
@여강이씨 無忝堂(무첨당)은 500년 古宅이다
.회재 이언적(1491~1553, 조선5현)이 탄생한 명당이다
@전통가옥중 가장 오래된 명문 古宅(고려~)은
.충남 아산에 있는“맹씨행단(1330년)” 북향집이다
@서백당의 傳說같은 예언 “3명의 血食君子가 나오는 집터”
*혈식군자란? “書院에 배향될 만큼 큰인물(인재)이 배출된다”는 말이다
1)첫번째 인재: 우재(손중돈)
우재는 서백당 안채에서 태어났다: 入胎(입태)와 産室(산실)
靈地에서 아기가 잉태되면 4차원의 꿈, 태몽(胎夢)을 경험한다
행장을 쓸때, 반드시 태몽을 기록하는게 전통이다
2)두번째 인재: 회재 이언적(모친이 친정 서백당에서 출산하였다)
3)세번째 인재는 누구일까?
@우재 손중돈
*“태양이 품에 들어오는 태몽”으로 태어났다(모친: 류씨)
.대과 급제(27세), 관찰사(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함경도), 月城君
.상주 목사(43세, 중종반정 직후), 주민들이 “生祠堂”을 짓고 추모하였다
살아있는 사람을 사당에 배향한것은 극히 드문일이다
우재의 인품과 덕망을 알수있다(현재, 상주시 교육연구원 정문)
.상소문(五條疎, 오조소)를 보면 경륜과 선비정신을 짐작할수 있다
국가 지도층(관료)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指針書이다
.조카(회재 이언적)의 외삼촌(우재 손중돈)의 추모 제문을 바칱다
“외삼촌의 넓고 크고 강직한 성품은 이미 타고난 것이어서,
德이 완성되고 행적이 높아 별 노력을 않고도
스스로 남의 모범이 되셨다
제가 조금이라도 義를 안다면 모두 외삼촌이 주
@양동마을의 明堂 風水, 마을 전체 형국은 “물(勿)”자 地勢로 독특하다
.배산 설창산(161m)에서 4가닦 줄기로 내려와 “물(勿)”자를 만들어
物形法(물형법)으로 동물의 모습으로 비유할수 있다
.동물의 형상(누운 소~호랑이의 배~뱀의 머리)이란?
臥牛穴(와우혈: 소의 배 형상)
伏虎穴(복호혈: 호랑이의 배 형상)
巳頭穴(사두혈: 뱀의 머리 형상)
.최고의 豊水로써, 人間~動物~山川의 互換(호환)하는 경지로 볼수있다
.물(勿)자 형국은 장점이 많다고 해석하고 있다
을(乙)자~용(用)자에 비유되기도 한다
겨울에 찬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동네入口는 좁고, 안쪽은 넓어진다)
4개 언덕이 찬바람을 걸러주는 지형으로 안옥하다는 뜻이다
또한 後高前低 地形으로 앞이 트인 마을이므로 일조량도 많다
여름에는 시원하다(언덕높이가 50~70m), 서백당이 맨 후미에 있다
.天災地變으로 風水害가 일체 없었다(태풍: 사하라 1959~루사 2002)
.동네 공간이 협소하고 경사도가 심하여 대형 대궐집 건축은 불가능하다
.노비들은 야간에 각자 자기집으로 퇴근하여 서로 자유로워진다
@양동마을은 外孫發福地(외손발복지)의 명당터
.外孫들이 탄생하면 發福한다는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양민공 “손소(입향조)”는 처가동네에서 “득남(우재 손중돈)”하였다
장인어른 류복하(풍덕류씨)의 딸과 婚姻하여 양동에 살게된 것이다
손소의 외동딸은 “이번”을 사위로 맞아 처가살이를 하게된다
이번(李蕃)의 2째아들 “회재 이언적(여강이씨)”이 탄생한 것이다
.당시, 遺産도 남녀평등하여 사위가 떠날수도 없었던 것이다
@外孫發福地(외손발복지)의 3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明堂이다
1)左靑龍~右白虎 줄기에서 갈라진 맥이 좋은 터이다
2)羅城(나성), 안산 너머로 멀리 보이는 朝山(조산)이 좋아야 한다
동네앞쪽으로 20~30리 거리에 좋은산이 있어야 한다
3)패철로 방위를 측정했을때,
巽方(손방: 동남향)위치의 산봉우리가 좋아야 한다.
손방은 外孫이 출세하는 방향터를 말한다
巽(손)은 周易의 팔괘중의 하나이다
즉 장녀를 상징하며, 딸로 해석해야 한다
손방이 좋으면 딸에게 발복하여 外孫이 성공하는 것이다
.右白虎 줄기에서 여러 가닦으로 뻗어있는 형국 豊水로 풀어야 한다
靑龍~白虎에서 뻗은줄기는 “아들~딸” 또는 “장남~차남”을 상징한다
갈라진 줄기가 여러가닦으로 분화되면 地脈마다 穴자리가 맺힌다
양동은 右白虎 줄기가 많은곳이며, 서백당의 위치에는 白虎가 3겹으로
이룬 勿자 맨 뒷편 형국으로 靑龍보다 白虎의 확률이 더 높은것이다
.羅城이 좋은 이유?
앞에 넓은 안강평야를 둘러싼 산세는 매우 중후하다
평평하고 둥글둥글한 산세로써 방정한 모습이다
울퉁불퉁하고 바위가 험한 산세는 절터~道를 닦는데는 좋지만,
地氣가 강하게 방사되므로 殺氣가 강하여 좋지않는 집터인 셈이다
.양동마을 맨 끝에 있는 觀稼亭(관가정)에서 바라본 朝山들은 일품이다
둥그런 금체와 馬體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둥그런 봉우리들이
말 안장처럼 이어지 馬體(일명 벼슬봉) 地勢에서 人才가 배출된다
.서백당의 좌향은 남향이지만, 사랑채의 마루는 동남향으로 열린다
남향은 白狐에서 내려온 안산이 가로막아 약간 답답한 느낌이므로
해소방안으로 손방(동남향)으로 전망을 바꾼것이다
.동남향에 안산 성주산(108m)의 눈높이가 적당하여 매우 편안하다
성주산은 바가지 모형으로 둥그렇고 잘생긴 봉우리이다
서백당을 지으면서 사랑채는 성주산을 의식했던 것이다
@집안을 지키는 고목
.양동마을에는 고목 향나무와 회화나무가 많은 편이다
.서백당 앞마당의 향나무(500년 수령)는 양민공 손소가 식수하였다
재벌가 리죠트에서 구입의사도 있었다(1970년, 2000만원 제의 거절)
.대문앞의 회화나무는 槐木(괴목)이라 칭하는 이유는 水脈을 차단하고
귀신을 쫓는 辟邪(벽사)효능이 있다(궁궐, 서원, 사찰, 명문가)
@格菴遺錄(격암 남사고)의 기록
“후천개벽이 되어 좋은세상이 될 때 靑槐滿庭(청괴만정)이 된다”
“집집마다 정원에 회화나무가 가득하리라”
.회화나무는 재질이 질기고 단단하여 주택, 사찰에서 목재로 사용하였다
禪房에 회화나무 대들보나 석가래로 사용하면,
스님들이 좌선할 때 피로감이 덜하다고 알려지고 있다
.관악산 삼막사는 선방 전체를 회화나무 목재로 건축하였다
.양동마을 사람들은 회화나무가 습기를 빨아주고,
피부병, 문등병 예방에 효험이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거북이(龜)처럼 수명이 워낙 길어 櫷木(귀목)이라 한다
느티나무도 수맥차단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다
@현재 古宅을 지키는 20대 宗孫(선친의 당부를 기억하다)
“喪中(상중, 3년)에는 다방이나 술집에서 사람을 만나지 말라”
.품위를 지키기 위해 선친은 장날에도 외출을 삼갔다
.휴대폰 뚜껑 글씨를 보며 “10만명 가문의 대표로써 처신에 조심한다”
.執中有權(집중유권) “중용을 취하는데서 권위가 생긴다”
회재 이언적(옥산서원)
@이언적(1491~1553)은 외가 월성손씨 서백당(書百堂)에서 출생하였다
.삼현선생지지(三賢先生之地): 혈맥의 “勿”자형 풍수를 안고 태어났다
.손소는 기름진 평야에는 큰 인물이 없어 산 중턱으로 터를 잡았다
.아들 손중돈(이조판서)과 회재 이언적(동방5현)이 태어났다
.월성손씨의 전통 “明堂에서 해산해야 外孫이 번성한다”
.이언적이 경상감사 시절에 지은 향단(香壇)은 동생에게 물려준후
이씨 향단파의 파종가로 변모하였다
.손중돈이 분가한 전망이 탁트인 관가정(觀稼亭)를 세웠다
.여강이씨 대종가는 무첨당(無添堂)이다
@옥산서원(사액서원, 안강 양동마을)
.옥산서원 독락당(獨樂堂)도 출입을 통제한다
회재 이언적의 서재로써 7년간 은거했던 곳이다
.이언적이 죽은뒤 20년후(1574년), 경주부윤 이재민이 건축하였다
.누각 무변루(無邊樓) 현판은 한석봉의 필체이다
.편액(옥산서원)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유배 직전의 필체이다
.회재 어언적은 자옥산 정혜사(터)에서 학업을 하였다
.김안로의 등용반대로 파직되었다가, 김안로가 죽은뒤 등용되었으나,
을사사화(大尹, 윤원형), 양재벽서 사건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성리학의 大家로써, 퇴계에게 계속 이어진다
.회재 이언적, 退溪(이황)는 남명(조식)을 조정에 추천했지만,
남명(조식)은 끝내 거절한 백명 서생이다
@옥산서원 담벽에 창살(창문)을 설치한 이유?
.서원에세 흐르는 냇가를 볼수있도록 했다
.담밖에 심었던 고목(향나무)은 책읽는 소리를 듣기위해
담벽 안쪽으로 나무가지를 길게 뻗어있다
東學(수운 최재우)
@東學창시자 수운(水雲) 최제우(경주 안강)
.최재우 짧은 인생을 살았다(41세, 1824~1864, 동학 창시자)
.출생 당시 해와 달이 밝은 빛을 발하고, 구미산 봉우리가 3일간 울었다
.부모를 사별후, 4년만에 삶의 무의미를 깨달았다(37세, 1860년)
.3년후(1863, 12월), 경주에서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할 때,
문경새재에 東學徒 수천명이 몰려들어 화령(상주)을 넘었다
.과천 역참에 도착했을때(12,20), 철종이 승하했다
@고종(이재명, 12세)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 시대가 열렸다(12,13)
.다시 대구형무소로 향할 때, 고개마다 東學徒가 반겼다
.東學 두목 최복술은 大邱에서 참수되었고(1864,3,2)
.최제우 처형시, 쉽게 목이 잘리지 않아 주변이 놀랐다(3,10)
(나에게 맑은 물, 청수를 한사발 가져오너라...)
.덕산시장 관덕당에서 참수되어, 大邱 남문앞에 3일간 효수되었다
@목이 없는 시신을 맹륜(장조카)이 구미산 용담에 묻었다(3,17,밤)
.東學徒(김경숙, 김경필), 옥바라지(곽덕원),
.정용서(최제우의 양사위), 임익서(해월의 매부)
@東學이란? “西學(천주교)과 구별하기 위한 명칭”
.동학과 서학은 運, 道는 같지만 이치는 다르다
.사람은 모두 한울(하늘, 하느님)인데, 귀천이 없어야 한다
.두 여종을 딸, 며느리로 삼았다
*몽양 여운영은 부친상을 치른후, 노비를 해방시킨 지식인이다
*최시형(2대 교주)이 어어받아 東學 농민혁명(1894)으로 이어진다
.충청지역등에 숨어살지만, 체포되어 처형된다(1898년)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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