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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1-0221. 총장단회 제주워크숍 3일차, 러브랜드 관광(2021,2,19~2,21)

by 조흥식 2024. 1. 23.

2021-0221. 총장단회 제주워크숍 3일차, 러브랜드 관광(2021,2,19~2,21)

역관(譯官) 홍순언

 

 

 

 

 

 

역관(譯官) 홍순언

@조선중기, 역관 홍순언(洪純彦:1530~1598)의 아름다운 인연

.譯官이란? 朝鮮시대 외국어 통역하는 관리(통역사)를 말한다

.朝鮮 외국어 전문 교육기관인 사역원(司譯院)에서 역관을 양성했다

.사역원은 4外國語(중국어,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를 배웠다

한학청(漢學廳), 몽학청(蒙學廳), 청학청(淸學廳), 왜학청(倭學廳)"

 

.사역원의 연혁과 주요 역관의 행적을 기록한 책도 전해온다

통문관지(通文館志)”는 숙종시절, 사역원의 역관 김지남(金指南)

그의 아들 김경문(金慶門)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책으로,

外交 譯官 담당 관청인 사역원의 연혁과 관제(官制), 고사(故事),

사대교린(事大交鄰)에 관한 외교 자료를 정리한 책이다.

.사역원은 高麗시대, 통문관으로 불렀기에 제목이 통문관지이다

人物 항목을 설정하여 최세진(崔世珍), 홍순언, 김근행(金謹行)...”

歷代의 주요 譯官들을 서술하고 있다

 

@홍순언은 젊어서 불우했으나 의기(義氣)가 있었다.

.일찍이 연경을 가다가 통주(通州)에서 밤중에 청루(靑樓)에서 노닐다가

자색이 매우 뛰어난 한 여자를 보고 마음에 즐거워하였다.

.주인 할미에게 부탁하여 접대중에 여인이 소복(素服)을 입은것이다

.女人이 대답이 안타깝기 그지없어 감동을 하게되는데...

말하기를 제 부모는 본디 절강(浙江) 사람으로서 나라 연경에서

벼슬살다가 불행히 돌림병에 걸려 동시에 모두 돌아가셨는데, 관이 객관에 있습니다.

 

저 혼자서 故鄕으로 모셔가 葬禮지내고자 하나 葬事지낼 밑천이

없으므로 마지못하여 스스로 몸을 팝니다.” 하였다.

.女人은 대답을 끝나자마자 목메어 울며 눈물을 흘리므로,

홍순헌이 불쌍히 여겨 장례비를 물었더니, 3백금이 필요하다 하였다

, 錢臺를 전부 털어 巨金을 건네주고 끝내 가까이 하지 않았다.

.女人이 성명을 물었으나 끝내 말하지 않았는데, 여인이 말하였다

大人께서 말씀하지 않으면 저도 감히 주시는것을 받을수 없습니다

.홍순언은 만 말하고 나오니, 동행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의 우활함을 비웃었다.

@훗날, 여인은 나라의 예부시랑(禮部侍郞) 석성(石星)의 첩이 되었다

.예부시랑은 이 事實을 알고, 홍순언의 義理를 높이 여겼는데,

.朝鮮 使臣을 올때마다 반드시 홍 통관(洪通官)이 왔는지를 물었다.

.당시 조선은 종계변무(宗系辨誣)때문에 戰後 10여회 使臣을 보냈으나

모두 허락받지 못하고 있었다.

 

@갑신년(1584), 변무사(辨誣使)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을 따라

.북경 조양문(朝陽門) 밖을 바라보니, 화려한 장막이 구름에 닿을듯한데,

.기병이 쏜살같이 달려와 홍 판사(洪判事)를 찾으며 말하기를,
예부시랑 석성이 공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함께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계집종 10여명이 떼를 지어 부인을 옹위하고,

장막안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공이 놀라 피하려 하니,

.예부시랑이 말하였다

()은 통주에서 은혜를 베푼 일을 기억하시오?

내가 부인의 말을 들으니 군은 참으로 천하의 의로운 선비인데,

이제야 다행히 서로 만나니 내 마음이 크게 위안됩니다.” 하였다.

 

.부인이 보고는 곧 꿇어앉아 절하므로 공이 부복하여 굳이 사양하니,

.예부시랑이 말하였다

이것은 은혜에 보답하여 군에게 절하는 것이니, 받지 않을수 없습니다

.부인이 말하기를, “군의 높은 은혜를 입어 부모의 장례를 지낼수

있었으므로 감회가 마음에 맺혔으니, 어느 날엔들 잊었겠습니까?”

크게 잔치를 벌여 부인이 잔을 잡고 올렸다.

@태조 이성계의 선계(先系)를 바로잡는 종계변무가 외교의 최대 이슈였다

.여러번 걸쳐 사신과 역관을 파견하였으나. 뚜렷한 결실이 없었을때

.홍순언은 중국 사신으로 갔는데,

.부인의 요청으로 홍순언을 찾고자 했던 석성과의 극적인 만남이었다

 

@예부시랑이 동방의 사신이 무슨업무로 왔는지를 물었는데,

.홍순언이 사실대로 대답하니, 예부시랑이 군은 염려하지 마시오

.회동관(會同館)에 머문지 한달만에 사신의 일로서 청함을 허락받았다

.특명으로 새로 고친 대명회전(大明會典)”에 기록된것을 보여주었으니,

이는 석공(石公)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것이다.

 

@홍순언이 귀국할 때, 집으로 초대하여 매우 후하게 예대(禮待)하였다.

.부인이 나전함[鈿函] 10개에 각각 오색 비단 10필을 담아 주며

말하기를, “이것은 제가 손수 짜면서 공이 오시기를 기다렸으므로

이것을 공께 바치고자 합니다.” 하였으나, 공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압록강가에 돌아오니 대강군(擡杠軍: 짐꾼)들이 따라와 비단을 두고 갔다

비단 끝에는 모두 보은(報恩) 두 글자가 수놓아 있었다.

.집에 돌아갔을때 비단을 사려고 앞을 다투어 이르렀는데,

홍순언 살던 동()보은단동(報恩段洞)”이라 불렀다고 한다.
  
@석성(예부시랑)의 도움으로 홍순언은 종계변무의 임무를 완성하였고

.석성의 부인은 홍순언에게 은혜를 갚는 의미에서 비단을 짜서 보냈고,

보은단동의 유래가 홍순언과 중국 여인와의 인연에서 비롯된 것이다

.석성과 홍순언의 인연은 임진왜란에 원병을 파병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壬辰倭亂 왜노(倭奴) 침략, 선조는 의주로 피난하고 에 구원을 청하였다

.나라 조정의 의견이 분분하였던 것이다

.압록강을 굳게 지키면서 형세가 변해가는 것을 보자고 청하였고

.또는 이적(夷狄)이 서로 치는것을 우리가 반드시 구원할 것까지 없다

.당시 석공(병부상서)은 구원할것을 혼자 힘써 말하고,

또 먼저 군기와 화약을 줄것을 청하였으니,

조선이 나라를 회복하여 어육을 면할수 있었던것은 석공의 덕이다.

.홍순언은 광국공신(光國功臣)에 책훈되고 당릉군(唐陵君)에 봉해졌으며,

손자 홍효손은 숙천 부사가 되었다
.광해군 때부터 중국 사신에 대해 뇌물을 쓰는 풍조가 생기면서

외교적 폐단이 시작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홍순언 일화 성호사설, 열하일기, 청구야담, 이향견문록...
  .조선 역관은 추천에 의하여 심사를 받고 적격자로 판정을 받으면

사역원 기숙사에서 온종일 공부하고, 매월 2일과 26일에 시험을 쳤다

.3개월에 한번씩 중간고사(기말고사) 원시(院試)를 쳤다.

.수련 과정을 거친후 잡과(雜科)를 치렀다.

문과처럼 3년에 한번씩 잡과에서 역관은 역과에 응시를 했고,

역과의 초시와 복시에 모두 통과해야 역관이 될수있었다.


@국당배어(菊堂俳語)

당릉군이 남의 급한 일을 도운 의리는 가상히 여길 만하거니와,

부인으로서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갚은 것이 이러하니,

더욱이 가상히 여길 만하다. 이에 앞서 변무사가 여러번 가도 청한것을

허락받지 못받아 조정에서 재화(財貨)가 아니면 어렵다고 여겼다.

 

이에 홍순언이 말하기를,

(이일은 오직 지극한 정성이 하늘에 닿아야 할 것이거늘 뇌물을 써서 무엇하겠는가?

또 외국의 사세는 중국과 같지 않은데,

만일 이 길을 한번 열게되면 그 폐단은 반드시 나라가 피폐하기에 이를 것이다)라고 하였다.

광해군부터 비로소 뇌물을 쓰기 시작하여 바로잡기 어려운 폐단이 되니,

하담(荷潭) 김시양(金時讓)선견이 있는 군자이다라고 말하였다라고 극찬을 하였다.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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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