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2.회장단회 워크숍 2일차(영주,단양) *11,1~11,2(1박 2일)
*병자호란2(급박했던 전쟁전야)
병자호란2(급박했던 전쟁전야)
@1636, 봄(인조14년)에 명, 청나라와 사신단이 왕래하였다(양다리 외교)
*춘신사(이곽, 나덕현)을 심양으로 대청(靑) 황제즉위식에 파견하였다
사신단(2명)은 취임식 참석 거부로 갓이 찍기고 폭행당하여 불참한다
300년간 군신관계인 명나라를 존경하기 때문이었다
*황제 청태종(홍타시)는 서신(푸른보자기)를 조선에 하사하였는데,
사신단은 “말이 병들고, 짐이 무겁다”며 통원보 보루 초병에게 버린다
평안감사(홍명구)는 인조에게 사신단의 참수(국경 효시)를 상소하였는데
죄명는 “처음부터 청태종의 서신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죄”이다
*청음 김상헌(이조판서)는 체포지시를 내리면서 극형 수준이 아닌
三司에서 처단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고,
김류(영의정)는 척화를 주장하였으나,
조복양(성균관 유생)은 처단을 주장하면서 조정 의견이 양분된다
@인혈왕후 사망(원주 부론면 출신)
*靑 조문단(용골대, 마부대)이 청태종 형제(10왕)의 서신을 휴대하였는데,
“황제” 칭호를 설명하였고 앞으로 좋은 유대관계를 강조하면서,
청태종 즉위식에 축하 사절단의 불참을 지적하였다
*내빈 접대(靑 조문단) 책임자를 무직자(이명, 박노)를 임명하는 등
홀대하고 업신여겨 맞이하게 된다
몽고인 수행원에게 푸대접으로 망신살이(오랑케 종자)를 주었으며,
靑(10왕)의 서신을 인조에게 상소조차 하지못한다
@인목대비 사망(원주 김제남의 딸, 영창대군의 모친)
*청나라 장수가 조문객으로 방문한다
제사 공간(전각)이 협소하여 금천교(창덕궁)에 장막을 설치하였는데,
세찬바람으로 장막이 날아가고
훈련도감은 훈련중인 상황에서 위협을 느낀 용골대는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용골대, 마부대는 급히 피신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사신을 파견하여 설득하였으나 청나라로 귀국해버린다
이때, 홍익한(장령)과 성균관 유생들은 용골대의 참수를 계속 상소한다
@인조는 전국 8도에 “병자 화의배척”의 지시를 하달한다
*평안도, 황해도에 인조 교서를 내렸는데 청나라 장수에게 빼앗기고,
전국에서 올라온 상소문에는 청과 배척 요구가 빗발치고,
윤황(대사간)은 강화도 행궁 보수를 시작하면서 청과 결전을 건의하였고,
동계 정온(이조참판)은 개성(송도)에 임금이 직접 머물면서
전쟁에 대비를 해야한다고 거듭 상소하였다
@계속되는 인조의 탁상공론
*탁상공론파: 영의정(김류), 홍서봉(좌의정), 이홍주(우의정)
김류는 (제찰사: 군무 총괄)는 척화파에서 주화파로 변신한다
*최명길(주화파)은 화해 주장하면서 참수 상소(윤집, 오달제)하고,
이일상의 헌납하였다
*인조는 역관을 靑에 특사(박노)로 파견하지만 일정시한을 넘겨 도착한다
당시, 청나라의 조건은 11월 25일 이전까지 화의를 강요하면서
“왕자, 대신을 인질로 보내라, 불응시에 조선을 침공하겠다”며 협박한다
이시백(남한산성 수어사)의 부친(이귀)은 영의정(김류)와 상극으로
정치적 대립이 잦아 남한산성 방비작전에 항상 반대하였다
김류(영의정)이 주장하는 남한산성 보수책임자 임명에 있어서
한양과는 장거리 담점과 작전에 유리한 영남출신 병사에게
방비책임을 맡기는게 좋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김류, 김자점은 요충지 선점을 건의하면서 40리길의 주민을 이동시켜
곳곳을 죽은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의주: 백마 *평양: 자모 *황주(황해도): 정방 *평산: 장수
@가도(평안북도 섬)에 명나라 도독(섬세괴)는 명나라에 보고하였다
*“조선이 청나라와 척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명나라는 섬세괴에게 사신(황손무)를 파견하여 격려, 위로하였다
황손무가 귀국하면서 조선에게 강력하게 충고하였는데
“청나라와 관계를 강화하면 조선을 침공하겠다”
도원수에 임명되어 정방산성을 보수시킨 김자점을 처벌하라고 요구한다
*윤집, 최명길은 청나라와 화해를 상소지만,
오달재(홍처원의 뜻도 포함)가 척화상소를 하지만
결국 인조에게 보고되지 않는다
*김자점(도원수)은 정방산성 보수하면서 비상시 신호수단으로
용골산 봉수대(4개)를 설치후 “임금이 놀라 소동이 우려된다”면서
한양으로 신호금지령을 내린다
동절기 침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병력보충을 하지않았다
@1636,12,6일; 용골산 봉수대에 2회 점화된다
*사신단(박노)에 대한 김자점의 오판으로 한양으로 보고하지 않는다
9일후, 인조는 신용(군관)을 의주에 파견하여 현지 판단을 시킨다
*2일차에 순안, 평양부근에 청군이 도착하여 아군에게 발각되었는데,
평안감사(홍명구)에게 통보하였으나, 홍명구는 자모성으로 도주한다
이때, 신용(군관)은 김자점(정방산성)에게 긴급보고를 하였으나,
“유언비어를 날조하지 말라”며 꾸지람을 듣는다
그러나, 병사들로부터 계속해서 전황이 추가 보고된다
*12,12일: 오후 늦게서야 김자점은 인조에게 장계보고를 하지만,
청나라군은 모든 보고서(장계)를 빼앗아 한양에 보고되지 않는다
*12,13일: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준비를 하는데,
강화도 검찰사를 우의정(이홍주)이 추천하여
김경징(영의정 김류 아들, 훗날 처형)을 임명한다
부사(이민구), 유도대장(심기원: 초상중)도 임명한다
@이후, 3일만에 청나라군은 한양에 입성한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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