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715.지대위원장회 간담회
창암 이삼만
창암 이삼만
@조선후기 명필가 창암 이삼만(1770~1847, 정읍출생, 본명: 규환)
三晩(삼만: 3가지가 부족함): 학문, 출사, 저술(배움, 벗, 결혼)
50세에 개명(이규환 ☞ 이삼만)한 이유가 그럴듯하다
부친이 독사에 물려 사망한뒤 대문에 글귀(뱀 출입금지)를 붙쳤다(24세)
이후 “축사장군”을 기둥에 거꾸로 붙여 뱀을 저주한 것이다
죽필, 갈필, 약초, 지팡이, 앵우(앵무새 깃털필)를 이용하여
함석, 삼베, 냇물로 바위(전주 한벽당)에 서예 연습을 했던 인물이다
중풍으로 투병중에도 하루 1000자씩 연습하며 벼루 3개가 구멍이 났다
@전주 한벽루 부채장수 이야기(홍명희 “혼불 제망망가, 12,000장 원고지”)
부채장수가 장바닦에서 팔리지않는 부채를 팽겨치고 잠들어 있을떼
창암 이삼만이 부채에 붓글씨를 써준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부채장수는 버럭 화를 내면서 변상을 요구하자
만약 부채가 팔리지 않으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고 호언장담후
순식간에 부채가 팔린 전설적인 야사를 남긴 것이다
중국 상인(대구 약전골목)은 한약보관 장식장을 구입하면서
선물(비단)을 받았는데, 부인이 이미 죽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30세~60세까지 운우지정의 예인(명창 심녀)의 묘비를 써준다
눌인 조광진도 첩에게는 화선지에, 조강지처에게는 한지를 사용했다
@추사 김정희의 제주행 유배를 떠나며 만난 인연도 특이하다
추사 김정희(55세)는 완주(전주)에서 이삼만을 만난다
“시골 서생이 그정도 글씨면 밥은 먹을수 있겠네...”
제주 유배후, 전주를 찿은 추사는 이삼만이 죽은터라 묘비를 남긴다
“평생 갈건을 쓰고, 야복차림으로 초야생활을 했던...”
@추사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에서 초의선사를 만나는데,
원교 이광사의 현판 대웅보전을 떼어내고 무량수각을 써준다
창암 이삼만(71세)에 해남 대흥사 “가허루”를 남겼는데,
훗날(9년후), 제주 유배를 마친 추사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를 찿아
현판 글씨를 최초모습으로 원위치를 시켜달라고 간청한다
@조선후기 3대명필(석전 황욱, 추사 김정희, 강암 송성용)
강암 송성용은 일제 항거, 서예대상 시상식(1956년)에 불참하며
일생동안 2번 상투를 잘랐던 인물이다
@호남 명필(송재 송일종, 창암 이삼만, 벽하 조주승)
송재 송일종은 김제 흥복사에서 맹물 1일 1통씩으로
나무바닦에 글씨를 연습하여 방바닦이 썩을 정도로 연습을 하였으며
벽하 조주승은 흥선대원군이 4절이라 극찬을 하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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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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