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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위원장 동우회(2015-2016)

2016-0419. 지대위원장회 월례회

by 조흥식 2023. 4. 19.

2016-0419. 지대위원장회 월례회(창동역 정산포)

*자치통감 15(齊家7)

 

 

 

자치통감 15(齊家7)

제목: 집안의 家風文化

1.부인이 만든 재앙

@무제 말기, 곽광(~bc68)은 고명대신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

*祖父 漢문제(bc202~bc157), 父親 한경제(bc188~bc141), 무제

*부역을 줄이고 세금을 경감시키며 국력을 회복시킨다

休養生息 정책으로 영토를 확장시키고 농업과 경제발전을 이룩한다

 

@선제의 부인, 허황후(bc88~bc71)가 죽었다(검소, 절약)

*곽광의 부인(현씨~bc65)는 가문을 망치는 잔꾀를 내는데,

과도한 욕망으로 막내딸(곽성군~bc54)을 황후로 추천하려고 한다

*평소 총애했던 여의사(순우연)이 허약한 허황후(임신)를 진료하였다

여의사(순우연)의 남편(: 궁궐정문 지킴이)에 대한 승진에 대한

인사청탁을 곽광부인에게 하였는데,

*곽광부인은 이를 역이용(공모)하여 허황후 독살(독약: 附子)을 시킨다

*선제 4(bc91~bc49), 곽광의 딸(곽성군)이 황후에 봉해진다

이후, 천하에 대사면령이 반포되어 중흥기가 완성된다

*곽황후는 화려하고 성태한 큰마차, 시종의 화려함이 사치스러웠고,

황제하사품 1000만전을 모두 허비하였다

 

@곽광(~bc68)은 고명대신으로 후계자를 부탁받앗다

*소제(21, bc94~bc74)가 아들없이 일찍 죽었다

*한소제의 조카(창읍왕 유하 bc92~bc59)가 황제에 즉위를 하였으나,

원로대신들과 충돌이 잦아 27일만에 폐위되었다

*무제의 증손자, 위태자(유거 bc128~bc91): 모친(위자부)의 성을 인용

위태자는 나중에 모함을 받아 모반을 일으켰지만 자살한다(여태자)

*위태자의 손자 유병을 황제로 옹립한다

한선제의 어릴 때 이름”, 황제 즉위후 으로 개칭한다

27일간 황제없는 공백기간이 있었으나,

곽광이 존재하므로 평온하였다

곽광은 황위 찬탈한 욕심이 번혀없었기 때문이다

 

@곽광이 죽었다

*곽씨가문의 멸문지화는 공신가문에 경각심을 고취시키고 말았다

*곽광은 治國에는 탁월하였으나, 修身齊家에는 능력이 부족하였다

*곽광의 권력에 의지하여 부인(현씨)은 정치에 관여한다

큰딸은 소제의 장모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고

막내딸(곽성군)선제의 황후가 된 영광을 맞는다

 

@巫蠱之禍(무고의 화)

*한무제 시절, 강충과 태자(유거)사이에 불화가 많았다

강충이 목각인형을 만들어 태자(유거)를 저주하고 모함하였는데,

태자는 강충을 죽여버린다

*한무제는 태자(유거)에 대한 오해로 토벌작전을 지시하자,

태자(유거)는 결백을 위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5일간 항거한다

결국, 패배하여 도주후 자결하였다

*한무제는 태자의 행동을 비난하며시호를 내렸다(여태자)

 

@한선제의 糟糠之妻 사랑(은혜)

*간난애 시절에 감옥신세와 민간생활에서 만나 혼인했던 허황후였다

*한선제의 조부(여태자)는 모함을 당하여 모반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패배하면서 자살하였는데,

*한선제는 대역죄인의 손자로써 혼자 살아남아 민간에서 고생하였다

이때 황후(허씨)를 만났으나,

허황후 가문에서 한선제가 죄인의 손자라며 혼인을 반대하였다

허황후의 부친은 궁형을 받고서 궁궐에서 노동일에 종사하였다

*한선제가 즉위후,

신분이 낮은 허황후를 멸시하며 대신들이 반대할 때,

곽광부인(현씨)은 막내딸 곽성군을 추천하지만

*한선재는 극구 허황후를 고집하였다

내가 비천할 때 칼 한자루를 차고 다녔는데,

지금은 부귀해졌지만 옛 물건이 그리워지니 경들이 좀 찿아주시오

*남편이 부인을 쫓아낼 때 3가지 조건이 있다

빈천할 때 먼저 고생을 함께했던 아내와

부귀하게 된 후에도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3년후, 곽광이 죽었다

*곽광부인의 음모가 탄로되어 滅門之禍로 치닫는다

*여의사(순우연)이 체포되어 자백을 토로하였을 때,

곽광부인이 순우연의 선처와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곽광의 판단력이 떨어져 순우연을 석방시켰다

*당시, 곽황후 등극후 사치와 교만, 오만 방자한 생활이 계속된다

*人無千日好 花無百日紅

“1000일 동안 좋은 사람이 없고, 100일 동안 붉은 꽃도 없다

 

@한선제의 태자(유석 bc74~bc33, 허황후의 아들)를 독살 모의

*곽황후의 울분 내자식이 황제등극은 못하고, 제후밖에 안되느냐?”

*곽광부인(현씨)은 악랄한 방법을 모색하는데,

곽황후를 이용하여 태자를 독살하려다 들통나서 곽씨가문은 몰살당한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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