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2.회장동우회 월례회(생생일품두부, 청담동)
*자치통감 22(治道4)
자치통감 22(治道4)
2.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복고회은(~765)이 침공했을 때,
*양지열은 군사 5,000명을 징발하여
백문달(감군: 군사감독관으로 파견된 환관)에게 인계하여
배후를 공격케 하였다
*복고회은은 토번, 토욕혼의 기병(2,000명)으로 백문달의 군사를
야간습격하여 대파하였다
*백문달은 울면서 성으로 철수할 때 양지열이 위로하였다
“이번 행군(전투)으로 도성의 황실을 안정시킨 공을 세웠는데,
병사들이 많이 전사했다고 어찌 슬퍼하십니까?”
*병사들이 그말을 전해듣고 분노하였다
또다시 토번이 침공해오자, 병사들이 용감하게 싸우지않아
양지열은 감주로 도피하였으나, 돌궐 사타족에게 잔인하게 피살되었다
@복고회은(곽자 휘하의 맹장)은 안사의 난 평정에 큰 전공을 세웠다
*이후, 복고회은이 반란을 주도하였을 때,
양지역(하서절도사)는 군사징발후 도성 지원을 하면서
백문달(감군)에게 5,000명으로 복고회은의 배후를 공격하여
계속하여 연승을 거둔바 있다
*안사의 난(유주, 연주)은 주로 하북지역에서 기세를 올렸다
@당헌종(805~820)시절, 큰 가뭄과 홍수가 있었는데,
*이강(764~830)은 상소하였다
“백성들은 가뭄과 홍수에 중앙조정의 지원을 원하고 있으나,
어사는 자신들을 징벌할까봐 두려워 사실보고를 숨기고 있다”
당헌종은 즉시, 조세를 면제하도록 지시하였다
@당덕종(785~805)시절, 경기지역 식량창고가 바닦이 드러났다
*금군 병사들이 식량 배급을 받지못하여 소란을 피웠는데,
한황(양절절도사)은 중앙조정으로 양식 3만곡(1곡; 10두)를
긴급지원하여 경기지역에 도착시켰다
*당덕종은 기뻐서 태자에게 말하였다
“쌀이 이미 도착했으니, 우리 부자가 이제 살길이 생겼구나”
*당시, 장강, 회수지역은 재정수입의 핵심지역이었는데
가뭄과 홍수가 잦아 조정에서 조세를 면제하고 인력을 파견하여
수해복구에 안간힘을 쏱았다
*당덕종은 동일한 상황(홍수, 가뭄)이 반복되는 바람에
국고부족으로 민심이 나빠져 반란우려에 늘 불안해 하였다
3.그들은 백정이지, 적이 아니다
@“어찌하여 소(劍)과 송아지(刀)를 허리에 차고 다니는가?”
*한선제가 평소 신뢰하던 공수를 발해태수로 임명하였다
발해지역에 기황으로 도적이 많아, 공수에게 통치방안을 질문하였다
*공수가 답변하였다
“발해 바닷가는 도성에서 아득하게 먼곳이므로
성군의 교화가 미처 스며들지 못한 지역입니다
따라서 백성이 곤경에 처해고 관리들이 구휼하지 못하였습니다
폐하께서는 백성을 이기시렵니까?
아니면 벡성을 편하게 하려하십니까?”
*한선제가 응답하였다
“현명하고 어진 관리를 등용하는 것은 백성을 편안하게 하려 함이오”
*공수(신임 발해태수)가 간언하였다
“어지러운 백성을 다스림은 헝크러진 실타레를 푸는것과 같아서
절대로 서둘러서는 안됩니다
승상과 어사가 법률로써 저를 구속하거나 재촉하지 말고,
안정될때까지 권한을 위임해주시고, 시간을 넉넉히 주셔야 합니다”
@공수가 발해태수에 취임하였다
*임지에 도착시, 말 한 마리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관청에 도착하였다
*도착즉시 명령을 하달하였는데,
“지금부터 도적을 잡는 관리는 그만두라
농기구(호미, 낫)을 든 백성은 양민으로 간주하여
관리들은 그들을 문초하지말라
그대신 무기를 든자는 도적으로 간주하라”
*즉시, 창고를 개방하여 빈민을 구제하고 어진관리를 등용하여
백성을 위로하고 적극 보살폈다
*刀劍을 차고 다니는 백성은 劍을 팔아 소를 구입하였고
刀를 지닌자들은 刀를 팔아 송아지를 구입하였다
*머지않아 백성들의 창고에는 양식이 가득하였고, 訴訟이 그쳤다
*父母官이란? “지방관리는 부모와 같은 관리”
4.政治는 變化에 대처하는 것이다
@당나라, 창주에 전란피해가 극심하였다
*은유를 절도사에 임명하여 병졸들과 동고동락을 함께하고,
백성들을 위무하면서 농업과 양잠을 장려하여 형편이 매우 좋아졌다
*지방 군대(3만명)의 재정지원을 중앙정부에 요청하는 형편이었는데,
1년후, 조세로써 지역재정의 절반을 충당하게 되었고,
2년후, 중앙 조정의 재정지원이 필요없다고 건의하였으며,
3년후, 인구와 호구가 대폭 증가되었으며 식량ㅍ창고가 가득하였다
@당문종(809~840) 시절
*섬괵관찰사 최언(768~836)을 악악관찰사로 임명하였다
*악악지역은 중첩된 산악과 장강을 끼고있으며,
백월, 파, 촉, 형, 한땅과 교차되는 요충지역인데,
도적이 많아 운행선박의 약탈이 극심했던 지역이다
*최언이 악악관찰사로 취임하여 병사들의 훈련을 강화하고
무기와 전함을 제작하여 도적을 추격 섬멸시켜 모두 주살해버린다
*섬괵관찰사에 재임당시에 최언는 전혀 다른 통치스타일을 보여줬는데,
늘 관대하고 어진 마음으로 고을을 다스렸다
그 이유는 “섬괵지역은 땅이 매우 척박하여 백성들이 빈궁하고
위무하기 어려운 실정으로 행여나 백성들이 놀랄까봐 두려워하였다”
*악악절도사로 근무 당시에 준엄하게 형벌을 시행했던 이유는,
“악악은 땅이 험하고, 인종이 잡다하여 사납고 매우 교활한 편이다
오랑케 풍속에 젖어 간사한 짓을 일삼는 풍습인지라
엄격한 형벌이 아니면 그들을 다스릴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政貴之變(정귀지변): 정치는 변화에 잘 대처할 줄 아는걸 귀하게 여긴다
@물에 대한 평가
*물은 일정한 모양이 없고,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老子
“견고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 것으로
물보다 뛰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천하에서 가장 견고한 것을 부린다”
*孫子(물: 無勢無形)
“군사를 부리는 사람은 강물의 변화를 잘 알아야 한다
군사 운용의 형태는 물과 같다
군사 운영에는 고정된 형세가 없고 물에도 고정된 모양이 없다”
*나의 아집도 없다(無我)
장수는 고집스러움을 버려야하고, 변화에 능숙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적의 형태에 따라 시종일관 변화에 능숙한 상태를 유지하여야 한다
@당문종 시절,
*이동첩(창주지역 장수~828)은 부친의 절도사 직위를 승계를 위해
반란을 일으켜, 3년만에 평정되었다
*이에, 은유를 절도사로 임명하여 전후 재건을 추진하였다
병졸들과 동거동락하면서 유민에게 농업회복의 기회를 부여하고
인구증가와 경제구조를 회복시켰다
*은유 통치이론
“착실한 업무처리와 몸소 노동으로 솔선수범을 하였다”
은유는 명문가 출신으로 경전과 역사에 통달한 유명한 淸流학자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늘빛사랑 조흥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6-0701.동중22 재경동창회 (0) | 2023.04.27 |
---|---|
2016-0514.북한산포럼 정기모임 (0) | 2023.04.20 |
2016-0430.무등산포럼 발기인대회 (0) | 2023.04.19 |
2016-0414.호남향우회 양주연합회 (0) | 2023.04.19 |
2016-0301.북한산포럼 이성춘후보 구미(을) 선거사무소 방문 (0) | 2023.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