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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6-0617.세종로라이온스클럽 회장 이취임식

by 조흥식 2023. 4. 24.

2016-0617.세종로라이온스클럽 회장 이취임식(파티피에스타, 뚝섬유원지)

삶은 쓰디쓰다

 

 

 

삶은 쓰디쓰다

@일연(一然, 1206~1289) 삼국유사(三國遺事)

삶은 쓰디쓰다(死生苦兮. 사생고혜)”

三國遺事의 의해(義解)편에는 사복불언(蛇福不言) 사복이 말을 하지 않다라는 제목의 글이 전한다.

원효와 사복이 활동한 신라로부터 전승된 설화를 고려후기에 일연이 채록하여 서술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읽어 보면 그 의미가 알쏭달쏭한데, 불교사상 특히 화엄사상을 함축하고

그에 따른 여러 상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내용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울 만선북리(萬善北里)에 한 과부가 살았는데, 남자와 관계하지 않고 잉태하여 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12살이 되도록 말도 하지 않고,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동(蛇童)이라고 불렀다.

사복(蛇卜)이라고도 하였다.

(), ()이라고도 하였는데, 모두 아이라는 뜻이다.

 

어느 날 그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때 원효(元曉)가 고선사(高仙寺)에 머무르고 있었다.

원효가 그를 보고 예를 갖추어 맞이하였으나

사복이 답례를 하지 않고 말하기를 예전에 그대와 내가 경전을 실어 나르던 암소가 지금 죽었다.

함께 장례를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하니, 원효가 좋다고 하였다.

함께 집에 와서 원효에게 참회하는 계()를 주도록 하니,

원효가 주검 곁에서 축원하기를

태어나지 말지어다, 죽음이 괴롭다. 죽지 말지어다, 태어남이 괴롭다라고 하였다.

사복이 말이 번다하다.”라고 하니,

원효가 고쳐서 말하기를 죽고 태어남이 괴롭, 死生苦兮라고 하였다.

둘은 주검을 싣고 활리산 동쪽 기슭으로 갔다.

 

원효가 말하기를 지혜(智惠)의 호랑이를 지혜의 숲속에 장례지내야 마땅하지 않은가?” 라고 하였다.

이에 사복이 게송을 지어 말하기를

옛날 석가모니 부처는 사라수 사이에서 열반에 드셨다.

지금 바로 그와 같은 이가 있어, 연화장세계(蓮花藏世界)에 들어가려 한다.”라고 하였다.

말을 마치고 풀줄기를 뽑으니 그 아래에 한 세계가 있었는데,

청명한 기운, 칠보 난간, 누각의 장엄을 보아 인간 세계가 아니었다.

사복이 주검을 메고 함께 들어가자 돌연 그 땅이 합쳐졌고, 이에 원효는 돌아왔다(하략)

 

@복잡한 함축과 상징에 대한 해설은 생략하겠다.

다만 이 만만찮은 이야기 속에서 가장 핵심적인 구절을 고르라면 죽고 태어남이 괴롭다라는 말을 들고 싶다.

이 말은 원효가 사복의 어머니에게 준 계, 곧 규범인데 궁극적으로 그녀를 열반에 들게 한 한마디였다.

사생고혜(死生苦兮)생사는 고통이다’,

삶은 쓰디쓰다정도로 번역할 수도 있을 텐데, 얼핏 생각하면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의미로 들린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는 불교 사상의 출발점이다.

삶이 고통임을 자각하는 것,

곧 고통이 존재의 현실임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불교의 출발점이다.

엄연한 현실임에도 그 받아들임이 어렵다.

우리는 삶이 행복하기를,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혹은 행복하기만 할 수 없음을 머리로는 안다.

그러나 머리와 가슴의 거리는 멀기만 하다.

그러므로 사생고혜, 이 한마디는 삶이 쓰디씀을 깊이 받아들이라,

그러면 새로운 삶이 열리리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사복과 어머니는 발밑의 풀을 뽑아 새로운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자각을 통해 열리는 삶의 새로운 지평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 새로운 지평을 표현한 말이 지혜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혜로우면 자비로울 수밖에 없다.

다른 존재의 현실에 대해서도 무관심할 수가 없다.

요즘말로 하자면 공감과 연민, 공존과 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할까

사복이 연화장세계로 홀로 들어가지 않았듯이 말이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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