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07. 클럽4역연수 현지답사(횡성 웰리힐리리조트)
이이첨 난(李爾瞻)
이이첨 난(李爾瞻)
@이이첨(李爾瞻, 광해군 1560~1623 廣州이씨, 음성 태생)
.조선중기 문신, 자(득여 得與), 호(관송 觀松, 쌍리 雙里)
.선조, 大北의 영수로서 光海君이 적합함을 주장하다 유배되었으나,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예조 판서에 올랐다.
.광해군을 보좌하여 조정에서 小北파를 숙청하고, 김제남을 사사하였고
폐모론을 주장하며 인목대비를 유폐시켰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어 아들(3명)과 함께 참형되었다.
@호(號, 湖, 壕)는 무엇인가?
.중국, 조선에서 본명이나 子 외에 허물없이 부르기 위함이었다
(땅이 우묵하게 파여 못이나 늪보다 깊고 넓게 물이 괴어있는 곳)
@이이첨은 누구인가?(戊午士禍의 주인공: 이극돈의 5세손)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608년,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광창부원군에 이르렀다.
.北人이었다가 북인이 大北~小北으로 나뉠 때는 大北의 우두머리이다.
.선조 말기, 영창대군을 왕으로 세우려는 小北파의 음모를 차단하였으며,
.광해군 즉위후, 유영경~임해군(臨海君 남해유배), 영창대군 등을
폐출시키고 사사(賜死)하여 조정에서 小北파를 숙청하였고
.1617년, 내암 정인홍과 함께 인목대비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여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시켜 서궁에 유폐시켰다.
.선무원종공신, 정운공신, 익사공신, 형난공신 등에 녹훈되었다.
.성종~연산군 시절의 훈구파의 거두 이극돈(李克墩)의 후손이다.
또한 이정립과 南人계열로 간 이덕형은 그의 일족이었다.
@가난했던 선비, 이극돈과 5대후손
.이극돈이 戊午士禍에 연루되었다하여 어려서 천대와 멸시를 받았다.
“이극돈은 과거에 뜻이없이 일을 하던중, 부인이 흙묻은 벽지를 뜯어
풀을 핥아 먹는것을 보고 마음을 바꿔 과거시험을 준비하였다
이극돈~5대후손까지 가난에 찌들었는데... ”
.1582년(선조15). 생원~진사에 합격하여 광릉(光陵) 참봉을 지냈으며,
어머니에게 효도하여 고향에 효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오랫동안 가난한 환경에서 학문에 매진하였는데
정인홍(鄭仁弘, 임진왜란 의병장, 조식의 학맥을 계승)의 제자가 되어 그의 문하에서 수학했다.
.이이첨은 부와 권세를 동시에 얻어 호사했으나, 최후가 비참하였다
“배고픔을 조금만 참았다면...”
@관료 생활 초반
.1594년, 별시 문과에 을과 급제, 전적이 되어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고
.임진왜란, 의병을 일으켜 왜적과 싸운 공로로 호일에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1598년(선조31), 사간원정언을 거쳤으며,
황해~평안 순검해운어사(黃海平安巡檢海運御史)로 쇄마 폐단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의주 부윤 황진을 탄핵하였다.
.1599년, 이조정랑이 되고, 이후 여러 벼슬을 거친다
.1608년, 중시(重試)에 장원 합격하여 이조정랑 등을 지냈으며,
.1608년, 선조의 후계자 문제로 大北파와 小北파가 서로 다툴 때에
大北파의 지도자로서 광해군편에 섰다.
당시, 선조가 만년에 광해군을 폐세자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후계로 삼으려 할 때,
소북(小北)의 영의정 유영경(柳永慶)이 이에 찬성하자,
대북(大北)의 영수로서 그의 스승인 정인홍(鄭仁弘)과 함께
유영경(영의정)을 탄핵하면서 광해군(光海君:東宮)이 적합함을
주장하다가 선조의 노여움을 사서 원배령(遠配令)이 내려졌으나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자 복귀하였다
인목대비를 사주하여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하고
인목대비에게 수렴청정을 종용하였던 영의정 유영경이 귀양 가서
사형되고 그 일당인 小北이 크게 참화를 입었다.
.예조판서와 대제학을 겸임하고 승진하여 광창군에 피봉되었다.
.이후 과거(科擧)를 주관하게 된 인연으로 허균 등을
그의 北人 일색의 조정에 끌어들여 권력의 기틀을 다졌고
지지 세력을 넓히려 노력하였다.
@정치 활동과 권력 장악 과정
.사상적으로는 남명 조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남명의 제자였던 내암 정인홍의 문하에 출입했으며,
이후 정인홍과 의기투합하여 현실정치에 강경하게 대처하였다
.서애 류성룡(영의정)을 탄핵한 일화도 유명하다
@임해군, 영창대군 숙청에 앞장서다
.1608년, 광해군의 등극후 왕권에 위협되거나 반대세력을 숙청한다
(유영경, 임해군, 능창군, 선조의 총희, 선조의 장인 김제남 金悌男)
.1611년, 대사간~병조참지~대사성~광창군(廣昌君)에 피봉되었고
공신으로 책록하자는 추천을 사양하였다.
.광해군말기, 이이첨의 세력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비대화되었다.
.1613년, 칠서의 옥(서자들의 난)
박응서(朴應犀)를 사주하여 영창대군을 강화에 안치 죽게 하였다.
영창대군 추대를 빌미로 김제남(金悌男)을 사사시켰다.
.1616년(예조판서),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로 승진했으며,
내섬시 제조, 대제학~예조판서(1617년)
@인목대비 폐비, 유폐시킨 사건을 유도하다
.1616년부터 정인홍과 함께 폐모론(廢母論)을 주장하여
.1618년, 인목대비(仁穆大妃)를 유폐시켰다.
당시, 전횡을 비판하는 성균관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치기도 했다.
.광창부원군(廣昌府院君)으로 진봉했다.
.1618년,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약방제조,
.1619년, 대제학을 거쳐
.1620년, 다시 예조판서가 되었다.
.광해군의 방조 아래 막강한 세력을 구축하여,
혹독한 반대파 탄압으로 악명을 떨쳐가고 있었다.
백성들은 세력가 유희분, 박승종을 3창 부원군이라 불렀다.
@문묘 종사 논란
.1620년 중국 사신을 맞이하는 원접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임진왜란, 세조의 영정을 들고 몽진길에 오른 충성도가 높은 신하였다
.광해군의 장자방 역할자로써 당시 지략가로 볼수있으며
유희분, 박승종과 더불어 정치세력의 핵심인물이다
.이황, 이언적을 문묘에 종사하는 것을 두고,
사상적으로 남명학파인 이이첨이 정인홍과 함께 반대하여 큰 파문을 일으켰다.
.1621년부터 이황, 이언적의 문묘종사를 반대한 것과,
인목대비 폐모론 주동으로 사림의 상소와 유배, 탄핵 등이 계속되고
죽은후 영남사림을 중심으로 근세까지 비판과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인조 반정과 최후(1623년)
.西人 이귀(李貴)~김자점(金自點)~김류(金)~이괄(李适)...
능양군과 함께 반란을 모의하여 대궐을 습격한 인조반정이 성공한다
.이이첨은 실각되어 영남지방으로 도망가던 중,
광주(廣州) 이보현(利甫峴)에서 관군에 체포되어, 4일후 참형되었다.
아들 이익엽~이홍엽(李弘燁)은 함께 처형되었으나
이대엽(李大燁)이 유배되자, 처형되지 않아 모두 분개하였으며
이원엽(李元燁)은 순천부사였기에 추후에 처형되었ek
.선대 둔촌(이집)부터 이이첨의 아들대까지 10代동안 한번도 빠짐없이
연이어 대과에 급제한 내력의 가문이 멸문지화되었다.
.이이첨과 정인홍의 처형으로 大北파는 몰락했고,
1910년 조선이 멸망할 때까지 악의 화신으로 지탄받았다.
.숙청된 광해군과 大北파(8명)은 저작거리체서 처형되었다
(이이첨, 정조, 윤인, 이위경, 이익엽, 이대엽, 이원엽, 이홍엽)
.저서, 작품, 문집들은 西人과 南人계열에 의해 인멸, 유실, 소각되었다
.1908년(융희2), 스승 정인홍이 복권되면서 재평가 여론이 나타났다
@역사적 평가
.인조반정 이전
사림으로부터는 명나라~청나라의 등거리 외교,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도,
광해군으로 하여금 임해군, 능창군, 영창대군을 사사,
이황, 이언적을 문묘 종사에 정인홍과 함께 반대했던 사실로
부정적인 여론과 비판의 시각이 존재했다.
.인조반정 이후
역적으로 매도당해왔으나 1908년에 스승이였던 정인홍이 복권되고,
1980년대 이후, 황음무도한 폭군으로 매도되던 광해군의 재평가
조짐이 있으면서 그의 행위 역시 재평가되고 있다.
.일방적인 간신, 악당, 악인으로 매도당해왔으나 반대파를 제거하여
임진왜란후 전란수습을 위해 현실정치에 강경하게 대응하여
광해군의 왕권을 강화하려는 행동으로 해석되고 있다.
@한음 이덕형과의 관계
.오성, 한음으로 유명한 이덕형은 이이첨의 친족이다
.이덕형은 이극균의 5대손이고, 이이첨은 이극돈은 5대손이다.
(이인손의 4째아들: 이극돈, 5째아들: 이극균)
@이이첨의 정치노선
.간교하고 독살스러워 속임과 가식이 가득하였다
.3년동안 시묘살이도 죽만 먹는다고 소문을 내고서,
남몰래 성안에 들어와 자택에 머물면서...
.유생으로 성균관(반궁)에 있을때에도 부정한 기미가 있었다
.선조가 간교함을 알고 멀리 유배를 보냈으나,
내암 정인홍과 음모하여 상소하여 유영경을 공박하여
광해군을 왕위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나, 멀리 유배가기전에 선조가 죽었던 것이다
.박자흥(사위)의 딸이 폐동궁의 빈이 되어 권세가 드높았으며
정인홍, 김개, 원종, 신경희...한패거리가 된다
.신율(봉산 군수)을 사주하여 황혁을 무고하도록 조장하였고,
진릉군(선조의 아들, 순화군의 양자)의 옥사를 일으켰다
.정협을 유인하여 사류를 끌어들여 옥사를 일으켜 일만타진할 흉계를 꾸민것이다
.유세중을 보내 해주옥을 일으케게 하여 최기 일문을 참살하였다
.신경희를 자기자택에 숨기고 의금부가 수색해도 내놓지 않았으며,
처음에는 허균과도 공모하였으며,
하인준, 황정필의 공초에서 밝혀졌는데도 어전에서 큰소리로
대신들을 제압하여 다시 언급하지 못하게 하였다
.제멋대로 난지도(鴨島)를 개간하여 사유지로 만들고
무덤의 나무를 토벌하여 사택을 건축하였다
심지어 집의 규모가 한마을을 차지할 정도였다
.재물을 탐하여 착취하면서 베옷을 압어 거짓으로 검소하게 하였으며
남을 해치면서 선비에게 굽신거리며 아부를 일삼고
거짓 효행으로 스스로 마을 집 앞에 旌門(정문)을 세웠다고
실록에 기록되었으나, 실제 효자임에는 틀림없는 인물이었다
.5가지 훈공을 독차지하고, 임금의 수족을 묶어놓고 아첨을 하였다
.종실 금성군(이성윤)과 이수(귀천군)가 분개하여 상소를 올렸으며
유생 윤선도, 이형 등이 강개하여 항소하였다
.영남유생 400여명이 한양에 상경하여 궐기하였을때 모리배로 몰았다
*진시황제의 분서갱유가 될뻔하였다
“조고가 사슴을 馬이라고 한것처럼 머지않아 변고가 있을것이다”
.아들(4명)이 한결같이 무식하였다
원엽 홍엽이 심하였는데 청현직~현직을 차지하고탐욕과 방종하였다
대엽은 오랫동안 이조를 점거하였다
@이이첨 운명을 예견한 맹인 점쟁이
.1622년(광해군14), 약 10여년 권력의 중심이자 대북의 영추...
아들은 예언가 맹인 점쟁이를 불러 부친의 앞길을 점치게 하였다
.점쟁이는 “광해군 15년(1623), 3월에 반드시 흉한 꼴을 볼것이다”
.화난 아들은 점쟁이를 심하게 구타하고 옷을 찢어 혼쭐을 냈으나,
이이첨이 하인을 시켜 점쟁이를 불러 친히 사과하고 대접하였다
.이이첨은 아들에게 한탄하였다 “내가 지은죄가 많으니,,,”
@묘지 인연
.선비(곽씨, 영동지방)는 지관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죽게 되었다
아들에게 음택 명당을 점찍어줬으나, 아들은 다른곳에 매장하였다
.지관은 묘터를 펼가절하 하였는데 “겨우 군수하나 나올자리이구나...”
.평소 선비와 지관을 따라다니던 계집종이 지관의 말을 엿듣고서,
지관이 최초 잡아줬던 음택명당에 부친을 장사한 것이다
이후, 모친과 한양으로 도망쳐 재산을 부풀려 나갔다
.계집종은 부잣집의 청혼을 거절하고 가난하고 미련한 고관(김씨)의 아들과 혼인하였다
.마침 이웃집에 이이첨이 살고 있었는데,
계집종은 남편에게 안방문을 개방해 놓고 항상 책상에 앉아
글을 읽는 모습을 이이첨이 볼수있게 했던 것이다
.이이첨이 병이 났을때, 계집종은 깨죽으로 병간호를 하여 쾌유되어
남편의 관직을 여러번 천거했으나 극구 사양하였다
.이후, 남편에게 이이첨을 탄액하는 상소를 올리게 하였다
.인조반정 직후, 남편은 탄핵상소 유공으로 벼슬길에 나갔으며, 아들고 공부하여 등과하였다
.그때, 곤궁에 처했던 선비(곽씨)의 후손이 찿아왔을때, 계집종은
옛상전을 반갑게 대우하였고, 군수자리에 나가도록 주선하였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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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허재갑총재(2020-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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