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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0-0814. 제1기 라이온스 아카데미(2강)

by 조흥식 2023. 12. 23.

2020-0814. 1기 라이온스 아카데미(2)

申師任堂(신인선), 조선시대 여성지식인(인수대비,강정일당,임윤지당,안동장씨)

 

 

 

 

 

 

申師任堂(신인선), 조선시대 여성지식인(인수대비,강정일당,임윤지당,안동장씨)

1.강릉최씨(신사임당 外家, 선교장)

@“금란반월계명문가 16(맹약 5장 발기문)

.명문가 16명의 금란반월계우의+선비의 금도약속(1466, 세조)

.대사헌 최응현(신사임당 외가 3대조)맹약 5장 발기문작성한다

.금란정(경포호옆)에서 계절마다 후손들이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1000 강릉계)는 폐쇄성, 텃세심리, 경로사상을 태생하였다

.청춘경로회노비 불문하고 70세이상 초청 잔치를 한다(77)

.양반 서열의식, 결속력(학연, 지연), 축구(강릉농고~상고)

.최고령 촌장제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성산면 위촌리, 우추리)

*매년 음력(12), 합동새배의 전통유지(430년간)

 

@선교장(船橋莊)99칸 대갓집

.船橋莊 어원은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한다

.이내번(이성계 13대손, 효령대군의 11대 직계손자)

전주에서 이주(1756~200년간: 9대 거주)

동별당자형 건물(이근우 증축, 1920)

열화당(사랑채)”은 이후(李厚)가 증축(순조, 1815)

.도연명의 귀거래사에서 이름을 인용했다

 

@도연명()23년간 終南山(종남산)을 바라보며 살았다

.도연명의 에는 은퇴(隱退)와 해탈(解脫)도 있었다

.(退)물러감이며, ()벗어남이다

.객기(客氣)를 부려보면, 결국 無心이다

 

@父親(신병화)+母親(용인李氏), 강릉 북평 오죽헌에서 출생(5녀중 2째딸)

.신사임당(19)+남편 이원수(江陵 찰방, 역참관리 종6, 외아들)

.막내아들(이우)栗谷에 가린 당대의 천재, 四絶(, , , )”

.(이매창)의 매창매화도: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다

 

@신사임당은 女必從夫(봉건적 관념)보다 지혜로운 진보적 여성이다

.賢母良妻보다 賢母智妻로 봐야할 것이다

.父不憂心 因子孝 夫不煩惱 是妻賢 言多語失 皆因酒 義斷親疎 只爲錢

 

2.신사임당 유래?(본명: 신인선, 평산申氏, 48)

@문왕(서백창)母親은 동양최초의 太任(태임 9가지 수칙)

.이것을 본받아 스스로 사용(明月황진이~蓬萊양사언: 스스로 自作)

.문왕은 古代中國의 대표적인 聖君이었으며,

.스승(책사)은 강여상(강태공)으로 천하를 재패하였다(나라 제후)

 

3.오죽헌(烏竹軒)

@최치운(外家 4대조, 이조참판)이 건축했다

.1: 아들 최응현(대사헌)이 물려받아 살았으며,

.2: 이사온(2째사위)을 거친뒤,

.3: 무남독녀(祖母, 용인李氏)로 사위(신병화, 부친)에게 상속

.4: 할머니(용인이)4째딸의 아들(권처균)에게 상속한다

조상묘소 관리 당부와 烏竹軒 기와집, 전답을 상속해준다

.권처균은 뒷마당의 검은 대나무를 보고, 烏竹軒을 호로 정한다

 

4.신사임당의 재산상속

@할머니는 2째딸(신사임당)의 아들(栗谷)에게 外家 제사를 조건으로

.한양 수진방(수송동+청진동)의 기와집과 전답을 상속받는다

.신사임당 친정은 3대동안 아들이 없어 데릴사위를 택한다

.男便(신병화)은 강릉보다 주로 한양에서 살았다

.外祖父(이사온)와 친정엄마는 사임당의 재능을 살려주었다

 

@한양시댁 살림은 38세에 주관(사별한 시어머니 봉양, 한양떡집)

.남편(이원수)는 애주가, 호방한 성격의 하위관리

.강릉에서 한양귀경시 대관령에서 세 번 되돌아온다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잘라 여승이 되든지, 죽어 버리겠다고 달래보낸다

 

@栗谷의 남매 分財記

기제사(忌祭祀)輪行하지말고 宗孫집에서 지내되,

子孫들이 각각 쌀을 거출하여 祭祀를 돕고,

친자녀는 10, 친손자녀는 5,

친증손자녀와 외손자녀는 2두씩 거출하여 하라!”

 

@栗谷 자녀들의 균등상속의 문서(分財記)

.1566(가정45), 형제자매가 부모의 재산 분배를 상의하였다

부모 양쪽의 토지와 노비를 분급하고, 누락된 노비를 찿아오는

먼저 노비 1명을 지급하였고, 장유유서 순서에 따라

경국대전의 규정대로 시행하라!”

.이원수(栗谷父親)과 부인(申師任堂)의 재산을 똑같이 분배하였는데,

토지는 20~40()으로 차등, 노비는 15~16구로 균등하게 분배

.토지 상속은 비옥도~집안 형편에 따라 약간 차이는 있었는데,

栗谷보다 막내(이위)에게는 조금 적개 분배하였고,

둘째딸은 약간 많이, 셋째딸은 조금 적개 분배하였던 것이다

 

5,賢母良妻인가? 賢母知妻인가?

@申師任堂(신인선 1504~1551)

.38(율곡 6), 혼인 20년만에 烏竹軒(강릉 친정)을 떠나

사실상 친정모친과 영원한 이별을 하였고,

한양(수진방)으로 이사하여 홀로된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된다

10년간 한양생활후 세상을 떠난다

.사임당의 부친(신명화)도 한양사람이었으나, 처가(강릉)에서 거주한

男歸女家婚(남귀여가혼)의 풍습 때문이다

.栗谷, 신사임당의 行狀에 모친의 재능과 성격을 묘사하였다

“...7살에 母親은 안견의 그림을 모방한 山水圖를 그린것이

아주 절묘했으며,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시늉낼만한 사람이 없어...”

.외할머니가 재주를 키워준 덕분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자신이 감정에 충실하고, 才能과 기호에 몰두한 女性이다

.賢母良妻로 만든 장본인은 우암 송시열이 일조를 하였다

栗谷學風을 이어받은 畿湖學派(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에

五行의 정수를 얻고, 元氣의 융화를 모아...마땅히 그가 栗谷을 낳으실만 하다...”

율곡을 낳은것 만으로도 현모양처가 되었다는 것인가?

.사실, 申師任堂栗谷 敎育獻身적인 모습은 전해지지 않지만

栗谷이 훌룡한 學者~孝子尊敬받는것은 스스로 努力한 결과이다

.매창(큰딸)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찿아가도록 열어준 지혜도 훌룡하다

 

6.인사청탁도 취소하는 혜안(지혜)

@우의정 이기(명종, 당숙)주변을 맴돌다가 발길을 끊어버린다

.당숙(이기), 윤원형(문정왕후의 동생)과 을사사화 주인공이었다

어진이들을 헤치는 사람은 오래갈수 없다훗날 숙청을 예견했다

 

@남편(이원수)과 긴장관계(정래주, 禮學대가 동계만록”)

.사임당: 내가 죽거든 새장가는 들지 말라

이미 7남매를 두었으니, 더 이상 바랄게 없지요(禮記)

.남편: 孔子가 아내를 내쫓은 이유는 어떤 예법인가 ?

.사임당: 난리에 공자를 따라 제나라로 피신할때 함께 따르지 않았다

부인과 별거했을뿐, 쫏아냈다는 기록은 없지요

.남편: 曾子(증자)가 부인을 내쫏은 이유는 뭡니까 ?

.사임당: 증자부친은 찐배를 좋아했는데, 잘못쪄서 공양의 도리에

어긋났으나, 혼인한 를 생각해서 새장가는 가지 않았지요

.남편: 朱子 집안의 예법은 무엇이요 ?

.사임당: 주자는 47세에 사별했는데, 맏아들이 미혼으로 살림할 사람이 없는데도 새장가는 안갔어요

.남편(이원수)은 신사임당과 사별후, (단골 주막집 권씨)을 삼았다

 

7.申師任堂의 작품

@“草蟲圖帖(초충도첩)” 숙종의 감탄해 칭찬하였다

.송상기(문인)는 여름볕에서 신사임당의 그림을 말리는데,

닭이 그림속의 벌레를 보고 진짜인줄 알고 쪼아 먹었다

.어떤 부인이 비단옷을 빌려입고 잔치집에 갔는데, 옷에 국물이 뭍어

얼룩진 옷에 포도넝쿨을 그려, 시장에 팔아 새옷으로 구입했다

.가지 그림은 富者되라는 염원, 주렁주렁 열리도록 그렸다

돈주머니는 비단을 몇겹을 감싸는데, 마치 가지를 닮은것 같았다

.나비그림은 “80, 長壽를 의미한다(질수도)

나비 두 마리의 그림은 늙은 부부(부모님)”를 상징한다

.방아깨비(사마귀)꼭 그런일이 일어날 것이다성공예감이다

.난초 그림은 잎이 많을수록 子孫이 풍성하다

.포도 그림은 대대로 자손이 번창하다

.남편친구들이 그림솜씨를 독촉하자, “놋그릇에 포도를 그려 감탄했다

 

@민화의 해석(뜻풀이)

.天桃(천도)복숭아를 먹은뒤 3000년간 長壽하였다

동방삭의 삼천년동방삭은 천도를 먹었던 것이다

.저승차사를 대접하여 수명 연장하려다가 잡혀간 동방삭...

.모란꽃은 花中之王으로 富貴(부귀)의 상징이다

.木蓮木筆花, 꽃망울이 붓처럼 닮았다

.壽坮鳥(수대조, )의 부가적인 그림으로 장수를 기원하였다

 

@과거 壯元을 염원하는 그림(옛 과거제도는 3년 간격이었다)

.일노연과(一鷺蓮顆) “백로 한마리와 시든 연꽃과 연 열매

.과거에 연속등과(향시, 전시), 1~2차 시험의 합격 一路連科의미

.백로 2마리는 2(재수를 했으니까 꼭 합격을 갈망했다)

.전려(傳臚: 임금님이 내린 음식) “갈대잎으로 묶은 참게

.참게 갑옷()“1(장원)으로 합격해라는 뜻이다

.이갑전려(二甲傳臚, 참게 2마리): 과거 향시, 전시를 연속 장원해라

 

8.長壽를 상징하는 그림

@內世에서 繼世(계세)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연꽃 연못에 원앙새는 귀한자식(蓮生貴子)을 낳아라

연밥위에 앉은 원앙새 연적은 과거에 연속합격을 원한다(蓮顆)

죽순형 청자 주전자는 결혼식때 사용하는데,

竹筍祝孫으로 변화되어 빨리 손자를 낳아라

石竹은 대나무와 바위장수를 축하(대나무는 60년만에 꽃을 피운다)

회갑(장수)를 상징하는 鳳凰의 열매음식이기 때문이다

대나무 청자병으로 바꿔진다

평안하게 살아라(회갑잔치때 사용하는 주전자)

참외 청화병은 참외(참 오이): 地瓜(지과), 수세미는 絲瓜(사실)

하늘은 높고 땅은 길다(장수, 天長地久)

 

 

9.가문의 영광(이씨가문)

@화폐인물 李氏중에서 덕수李氏3(율곡, 신사임당, 이순신)

.3명의 外家는 강원도(율곡, 퇴계, 신사임당)

.이순신(100),퇴계(1000),율곡(5000),세종(1만원),신사임당(5만원)

 

10.조선 전기의 화풍: 中國을 무대로 모방중심(, , )

@성리학이 정착한 朝鮮 후반기(병자호란 이후)

.조선을 무대로 펼쳐진 문화가 정착(씨름, 빨래터, 산수화)

.美人圖 여자를 멀리하라는 충고

.日月五峯圖 백성들이 편안하도록, 정치를 잘하라”...구여에서 유래

.조선후기(병자호란 이후)의 화풍으로 민속화, 진경산수화가 등장한다

 

11.申師任堂(신인선 1504~1551)

@賢母良妻인가? 賢母知妻인가?

.38(율곡 6), 혼인 20년여 만에 烏竹軒(강릉 친정)을 떠나

사실상 친정 모친과 영원한 이별을 하게되고,

한양(수진방)으로 이사하여 홀로된 시어머니를 봉양하게 된다

10년간 한양에서 생활후 세상을 떠난다

.사임당의 부친(신명화)도 한양사람이었으나,

처가(강릉)에서 거주한 이유는 男歸女家婚의 풍습 때문이다

.栗谷(이이)은 신사임당의 行狀에 모친의 재능과 성격을 묘사하였다

“...7살에 母親은 안견의 그림을 모방한 山水圖를 그린것이

아주 절묘했으며,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시늉낼만한 사람이 없어...”

.외할머니가 사임당의 재주를 키워준 덕분으로 공부를 시작하였고

자신이 감정에 충실하고, 才能과 기호에 몰두한 女性이다

 

@賢母良妻로 만든 장본인은 우암 송시열이 크게 일조를 하였다

.栗谷(이이)學風을 이어받은 畿湖學派(우암 송시열)은 신사임당의

그림을 유별나게 과도한 칭찬을많이 남겼다

五行의 정수를 얻고, 元氣의 융화를 모아...마땅히 그가 栗谷을 낳으실만 하다...”

율곡을 낳은것 만으로도 현모양처가 되었다는 것인가?

.사실, 申師任堂栗谷 敎育에 헌신적인 모습은 전해지지 않지만

栗谷이 훌룡한 學者~孝子尊敬받는것은 스스로 努力한 결과이다

.매창(큰딸)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찿아가도록 열어준 지혜도 훌룡하다

 

 

 

 

인수대비(청주한씨), 조선시대 여성지식인

@구시대 여성(바람둥이)

.구시대 여성이란?

감정의 절제를 중요시하는 性理學의 맛에 익숙치 않은 여성을 말한다

.어우동(성종)을 시대를 앞서간 여성으로 평가한 이유는

자신의 感情에 충실하여 여러 남자들과 간통하였던 것이다

.양반여성 유감동(세종, 판관 최중기의 처)은 수십명과 간통하여

장형을 맞고 노비로 내몰렸던 사건이 유명하다

.인수대비는 佛敎 옹호론을 성종에게 제기(압박)하여 친밀감으로

인심이 동요하지 않도록 불교를 하루아침에 배척해서는 안된다

선진적인 지식인 여성, 신여성으로 볼수있다

.당시 조선초기 건국이념으로 유교화는 선진화의 길목이었으므로

성리학은 첨단적인 사상으로 봐야할 것이다

 

@신여성 인수대비(1437~1504)

.청주한씨 명문가문은 고려말~조선초기에 번성하였다

.조선초기, 王妃 4명을 배출하였는데,

父親 한확은 2명의 누나를 나라 황제 후궁으로 보낸 이후,

수시로 가족들이 나라를 방문하여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수대비는 고모와 서신을 나누며 신여성의 문호를 걷는다

.1457, 세자빈(의경세자 죽음)으로 2년만에 출궁하지만

수양대군(세조)의 정치적 파트너로써 파격적인 사랑을 받는다

시동생(예종)이 세자가 되었으나 일찍 죽는다

.12년간 심기일전하여 둘째아들이 성종으로 즉위하여

정희왕후(세조비, 파평윤씨)의 수렴청정이 시작된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인수대비에게 권유했던 이유는

문자도 알고, 사리에 통달하니 가히 국사를 다스릴수 있을것이다

문자를 안다학문적인 능력과 탁월한 지적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1475(성종6), 內訓(여성들의 윤리 규범, 敎訓書)을 만들다

聖人의 학문을 보지못하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귀하게 되면 원숭이에게 의관을 갖추어 준것과 같다

.聖人이란? “道德的 완결성을 갖춘 人間이다(性理學적 의미)” 성리학적 의미에서 이상적인 인간형을 칭한다

.內訓에서 딸이나 며느리들의 어리석음을 근심하여...”로 시작하여

며느리 윤씨(성종비)를 폐비시킨 것도 여기에서 적용되었다

열여전~女敎~明鑑~小學...이 책들은 지극히 간결하고 분명했지만

권수가 자못 많아서 쉽게 알기 어려우니, 이에 그중에서

중요한 말을 뽑아서 7장으로 저술하여 너희에게 주노라!...”

 

 

 

 

강정일당(여성 性理學者), 조선시대 여성지식인

@강정일당(1772~1832)

.죽은뒤, 남편은 정일당 유고문집을 편찬하게 된다

.강정일당(20)은 남편(14, 윤광현)과 혼인하여 가난한 생활이었다

삯바늘질로 생계를 유지하고, 남편은 과거를 준비하는 도중에

호기심으로 어깨너머 배웠는데, 남편과 토론하자며 자주 괴롭히고

궁금한것은 남편을 시켜 스승에게 질문하도록 했다

 

@정일당유고

.부인의 질문내용을 송치규(남편의 스승)에게 전해졌다

中庸戒愼恐懼(계신공구)朱子는 항상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둔다고 하였으니, 이는 을 통용하여 말한 것입니다.

存養省察(존양성찰)로 말한다면 戒愼恐懼(계신공구)

전적으로 에 속할것 같은데 어떻게 봐야 마땅하겠습니까?”

.스승(송치규)은 지적요구가 매우 왕성했던 태도를 존중하였다

 

@大夫(남편을 대신하여 지었다)

.강정일당의 글 후미에는 대부분 大夫로 쓰여있다

.행장이나 묘지명은 죽은사람을 기억하는 글을 써서 주고받았다

우리집 것은 친구네 집에서 쓰고, 친구네 집의 글은 우리집에서 서로 써준것이 유행하였다(조선시대)”

당시 강정일당의 행장은 그녀의 종형제(사촌)이 쓴것이다

.남편은 능력이 탕월한 부인에게 글을 쓰게한 것이다(행장, 묘지명...)

 

@姜靜一堂(강정일당, 조선 여성 성리학자)

.척독(尺牘) “남편과 주고받은 쪽지 편지가 유명하다

각자 주거공간을 상호 존중하여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

.남편은 대부분의 활동공간은 바깥 사랑채에서 지냈으며,

함부로 內堂(부인의 생활공간)에 출입을 하지 않았고,

.부인은 內堂에서 거처하며,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함부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

.禮記 男子는 집안일을 말하지 않고, 女子는 밖의 일을 말하지 않는다

 

@강정일당의 도덕적 열방

.자녀 9명이 모두 영양실조로 일찍 죽은 불행한 과거사를 가졌다

.남편(윤광연)祭文을 보면 특이하다

“9남매를 낳아 하나도 기르지 못했으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고,

3주야를 굶었으나 근심하는 기색이 없었다...”

.(성선)에서 인간의 성품은 착하니까 애쓰면 성인이 될수 있다고 했다

.언필칭 ~聖人, 어떻게 하면 를 알고 완벽한 인간인 성인이 되는가?

 

@남편과 주고받은 편지

.남편에게 열심히 공부하여 당시 최고 목표인 聖人이 되라는 것이다

.무려 46쪽의 편지에는 학문적인 토론과 남편에 대한 채근으로 채웠다

.스스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불만은 없어 보인 여성이다

.오직 남편(윤광연)의 도덕적인 완성이 열망이었다

 

@강정일당은 부친 강재수(姜在洙)와 어머니 안동권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몽에 至德을 가진 아이가 나올 것이란 말을 듣고 지덕(至德)이라고 이름하였다.

.20, 윤광연(尹光演)에게 시집간 뒤로 시부모의 상을 치르고

기울어지는 가세속에서 어려운 살림을 꾸려나가면서도

남편에게 학문에 힘쓰고 재물때문에 지조를 잃지 말것을 당부하였다

.61, 강씨가 세상을 떠나자,

남편 윤광연은 강씨의 유고를 직접 수습해 편차하여 1836년에 1책을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허난설헌이나 윤지당의 유고가 모두 친정 형제들에 의하여

출간되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죽은후 얼마 안되어 당대 문장가인 홍직필(洪直弼)의 묘지명과

송치규(宋穉圭)의 발문을 받고, 남편에 의해 출간되었다는 것은

당대의 사회적 인식 변화를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일이다.

.또한 윤광연이 지은 제문을 보면 부부간의 정의도 매우 좋았던 듯하다.

문집의 내용도 남편에게 올린 시와 편지, 남편을 대신해 지은

척독(尺牘)과 기문, 발문, 묘지명 등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강씨가 시모인 지일당전씨(只一堂全氏)의 원시(原詩)

봄이 오니 꽃들은 한창이건만 春來花正盛

세월 가니 사람은 늙어가누나 歲去人漸老

설워하고 탄식한들 무엇하리오 歎息將何爲

선한 도리 하나만 있을 뿐이네 只要一善道

 

@시모인 전씨(全氏) 또한 한시에 능하다는 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원시는 세월 따라 늙어가는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선한 도리로 살아갈 것을 다짐한 내용이고,

.차운시는 강씨가 논어(論語)의 구절을 인용해 올바른 학문은

바로 인륜을 실천하는 것이고 자신도 며느리로써 이를 따르리라고 읊은 것이다.

.내용 자체는 특별한것이 없지만 시모와 며느리가 漢詩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뜻을 펼치는 광경에서 조선 후기 여성 문인들이

자신의 지성을 발휘하는 일면을 엿볼수 있다

 

@강지덕(姜至德, 1772~1832),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조선후기 여류시인 정일당강씨(靜一堂姜氏 강지덕 姜至德)의 시이다.

시모 지일당의 운을 따라 짓다(1797년 정조21)

下學須敦倫 慈幼且安老 直轡從此行 自是坦坦道

공부는 모름지기 삼강오륜 닦는 것, 아이 잘 돌보고 어른 편히 모시리

한마음 올곧게 이 길 따라 행하는 이것이 본래 평탄한 길이랍니다

.강정일당은 허난설헌(許蘭雪軒)이나 임윤지당 임씨(允摯堂任氏) 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여류 성리학자로 글씨와 시에도 뛰어났다

 

 

 

 

임윤지당, 조선시대 여성지식인

@임윤지당

날마다 성인되기를 기약하라”(인수대비, 內訓의 말미)

.윤지당께서 말씀하시길

나는 비록 夫人이지만, 하늘에서 받은 性品애당초 男女의 차이가 없다고 하셨다(정일당 유고에서 인용)

.임윤지당은 강정일당보다 먼저 여성 성리학자로 명성을 남겼다

남편과 스승에게 질문을 주고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이유는

聖人이 되기위한 노력을 했던 것이다

.임윤지당은 聖人의 목표보다 학문적으로 이어받은 인물로써

성품에 남녀의 차이가 없다의 주장으로

남녀의 역할은 달라도 인간 자체로는 똑 같다는 의미로써 여성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주었다

 

@임윤지당과 강정일당의 理論的 差異

.강정일당의 공부하는 환경을 강조하였는데

바느질하며 청소하는 여가에 옛 經書古典을 읽으면서

그 이치를 궁리하고 옛사람들의 행실을 본받아

先賢들의 경지(聖人 되기)에 이르기를 작정하고 있습니다...”

.강정일당은 이치를 알아서 聖人의 경지에 나가는것을 더 중시하였다

핵심적인 방점은 聖人 되기에 두고있다

.임윤지당은 理論에 중점을 두었다면, 강정일당은 實踐에 더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정부인 안동장씨, 조선시대 여성지식인

@정부인 안동장씨(1598~1680)

.이문열 小說 선택의 주인공으로 유명하다

.대학자 이현일(조선후기, 재령이씨)母親으로 貞夫人에 봉해졌다

재령이씨 집안에서 불천위에 모셔진 대표적인 賢母良妻이다

.소설가 이문열은 선택을 통하여 현대여성은 자기성위 중심으로

내조와 자녀양육을 경시하는 풍조를 지적했는데,

여성단체에서 시대착오적 발상으로 반발하여 논쟁이 대단하였다

 

@안동장씨는 自己 成就를 포기하고 여자 일을 선택했을까?

짓고 글씨 쓰는것은 모두가 여자가 할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여자의 일이란? 봉제사 접빈객~자녀 교육에 매진함을 말한다

.장씨부인은 聖人이 되고 싶어했던 것이다

여자의 일을 열심히 하면, 궁극적으로 聖人이 될수있다고 믿었다

, 人倫의 날마다 하는 일(주어진 日常)에 잘 실천한다면 성인이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善行聖人에 이르는 基礎를 말하au 자식들이 立身揚名보다 聖人되기目標로 삼기를 바랐다

.孫子(신급)에게 지어준 에서 성인의 의미를 알수있다

孫子聖人을 배우려는 태도가 있어 매우 기쁘다...”

 

@정부인 안동장씨의 여성 사회진출과 자아실현의 추구로 시작되어

.훗날 임윤지당~강정일당...여성성리학자가 등장하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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