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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갑총재(2020-2021)

2021-0218.제6지역, 제7지역 회의(간담회, 김홍구, 박미현 지역부총재)

by 조흥식 2024. 1. 23.

2021-0218.6지역, 7지역 회의(간담회, 김홍구, 박미현 지역부총재)

영조,사도세자(한중록),정조(화성)

 

 

 

 

 

영조,사도세자(한중록),정조(화성)

1.영조(마음에 없는 전위소동)

@生死, 內外, 好惡, 愛憎...거칠고 변덕이 많고, 정에 인색했다

임금 노릇을 그만하리라통영궁으로 퇴궐(, 한국은행)

.평소 화를 자주내는 변덕스러움

 

@1761, ...~~영의정 3정승이 모두 죽는다(1762, 사도세자 죽음)

.영의정 이천보 유서 제발, 화를 그만 내소서...”

.음주자를 엄한 처벌, 병마절도사 참수형(금주령 위반)

.1766, 각질병(피부병)...솔잎차(누룩차, )를 권하지만...

;홍봉한의 반대 이유는 화, 변덕이 더욱 심해질 것을 우려...

@1752, 12(사망 10년전), 출궁(송영궁, 한국은행)..양위소동

.태자는 영문도 모르고 석고대죄(12,5), 폭설

 

@한중록(혜경궁 홍씨)

.이해할수 없는 언행이다(횡설수설)

.2개월전, 홍순해 상소로 화가 났다(10, 이종성; 노론이 소론(이종성)을 탄핵했던 사건)

 

@전위파동 사건의 전말

영조의 반항사건으로 출궁한것이다

.후궁 문씨를 사랑했다(대청록, 박하원 정조24.1752,12)

.3월에 딸을 출산(만약 아들을 생산하면, 세자를 교체하려고 했다)

.매우 엄격 인헌왕후(숙종 계비)는 옹주들이 혜경궁에게 함부로 하질 못했는데...

못 건방진 문씨에게 회초리를 들었다...(정조를 입회)

.사도세자 모친 선희궁(영빈 이씨)도 후궁출신

 

@문씨는 영조에게 고자질...불만, 출궁할 때 야사

.영조는 인헌왕후가 승인했다고 주장한다(인헌왕후 그래라승인)

.신하들이 만류를 해야하는데...하지않아 화가 났던 것이다

.즉시, 신하들은 대비전에 달려간다

나이 때문에, 귀가 어두워 잘못 들었다”...화가 풀린 것이다

 

@1952,12, 7; 정성왕후 환갑날을 2일 남겨두고, 잔치생략(미워해)

.영조가 다니는 길은 기분에 따라 다르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가는길...다른사람 오는걸 싫어해...

;나쁜말을 듣고난 뒤, 귀를 씻고, 양치질, 눈을 씻고 잤다

;사도세자가 죽을때, 경화문으로 들어왔다(불길한 문)

;만안문으로 출입해야 좋은날인데....창덕궁

 

@편집증(피해망상) 심화...정성왕후의 손...일체 만나지 않았다

.왕후의 임종도 일부러 지체, 궁녀들과 몇시간동안 잡담하는등...

.발상이 늦어진것

.상중에 신하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화완공주 사위 문상을 간다

.혜경궁 한중록 정성왕후가 죽을때, 검은피를 한 요강을 토했다

평생 엉어리가 다 나왔을 것이다

.정성왕후 창덕궁 내조전에 한번도 출입을 안했다(손이 부드러워)

병환시 무관심으로 무시

 

@영조의 컴플렉스

1.신임옥사(1721·1722 경종1)에 연잉군 책봉문제로 충격받아 정신적인 혼란..

.“최초의 왕자출신이 왕이 되다

;? 경종은 독살되었나?...의심에 화를 자주냈다(마음고생)

 

2.이인좌의 난(1728. 영조4)무신혁변, 소론의 난, 정권의 위기감...

영조가 제일 싫어하는 열등감, 모친의 출신 성분이다

신하, 겸춘추(춘추관 사관)가 책(사기, 노중련편)을 읽었다

너는 종의 자식이야...영조가 벌떡 일어나서 추궁을 한다

이때, 정조가 대답했다...그런말은 없었습니다

영조는 다시 누워 잠들었다

 

3.출신의 콤플렉스(숙빈 최씨) 각심(궁녀의 여종, 심부름)

;무수리는 출퇴근하는 궁녀이다

 

@ 체제공...(1720~1799)

.사도세자를 질책, 칭찬에 인색한것은,

;영조(부친)는 어렵게 성장했는데...실망,기대에 부응치 못했다

 

@소론의 나주벽서 사건(1755 영조 31)

나운규(전라감사)의 나주괴문서 발견 상계

조정에 간신들이 가득해 백성들이 도탄의 삶에 빠졌다

범인 체포(1주후)...윤지(윤취상의 아들), 윤취상(경종시절 훈련대장, 소론의 강경파)

*1728(영조4), 소론 주도의 이인좌의 난과 비슷한 사건

.영조의 탕평책 포기...소론의 몰락(노론의 정국주도)

 

영조의 여자

@하루 2끼니+小食, 선천적인 장수체질이었다(52년 재위, 83)

.평소 검소한 서민생활과 직접 움직이며 부지런했다

.사치를 배격하고 금주령을 유지하여 식량을 아꼈다

;심지어 종묘제례에도 술대신, 감주를 사용했다

 

@영조는 모친(숙빈 최)의 천한 출신성분도 고려했지요

.궁녀신분으로 숙종의 성은(聖恩)으로 영조를 낳지요

.무수리출신으로 종묘에 없으며, 묘지는 파주 소령원(昭寧園)

;왕비묘에 붙이는 원()을 사용했다

.서얼출신의 청요직(淸要職)의 등용을 허용한다

;청렴하고 능력있는자를 발탁하는 제도

 

@영조가 연잉군시절 원비(정성왕후)와 혼인한다

.영조는 첫날밤에 질문한다 손이 참곱구려...”

.답변에 영조의 안색이 변했다 궂은 일을 한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모친의 고생한 거친손이 생각났던 것이다

.애정이 없었는가? 후손없이 65세에 죽는다

 

@계비(정순왕후)를 김씨 규수(처녀의 존칭어)를 간택한다

.부친이름이 적혀있는 방석에 앉지않아...

.세상에서 가장깊은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가장 좋은꽃은 목화로써 백성을 따뜻하게 해주므로...

.가장힘든 고개는 보릿고개...

.비오는날, 지붕 기와골을 처마낙수물로 금방 헤아렸다

.계비(정순왕후)는 총애를 받았지만, 후손은 없었다

.사도세자를 미워했기에(정빈이씨, 사도세자의 모친)

.정조임금과 갈등이 심했지요?

.그러나, 정조가 죽은뒤 수렴청정을 통하여 정책을 뒤집어

.촉명함이 국가발전에는 후퇴시킨 것이다

 

 

 

사도세자의 조기교육(속성교육)

@1735.1월 출생, 맏아들(효장세자)이 죽은 7년후(영조11. 45)

.1, 세자책봉

.2, 세자공부 시작(조기, 속성교육)

.3, 시좌(侍坐), 국정참여...영조의 사치를 막는 교육(비단? 무명?), 영조는 비단옷을 싫어해...

상의원(尙衣院): 임금의복, 궁내 일용품, 보물을 관리하는 부서)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도 영조지침에 초점을 맞춰 교육한다

.8, 동몽선습(童蒙先習, 어린이 학습서. 작세무, 중종), 완독후 영조에게 자랑, 꾸중들어...

.9, 어지럽다...신하는 영조에게 치료건의...묵살 당한다

영조질문 왜 아프냐?” 세자답변 책을 보면 머리아프다”...꾀병

음식욕심이 많아, 인현왕후가 애정으로 잘먹여...

영조의 호통

(음식은 한때의 맛이요, 학문은 일생의 맛이다...

배부르면서 채하지 않는것은 오직 학문뿐이다...)

.14, 영조는 공개석상에서 중간평가(양호하게 답변한다)

中庸, 서문을 외어라...

목차, 1장을 외어라...

영의정이 박수(합격입니다...)

영조 四通三略이 합격이다

선비의 합격기준은 (4개이상), (3개이상)이어야 한다

오늘은 1개 합격이다...

中庸 서문을 인용하여 꾸짖는다

.上智, 가장 현명하고 훌룡한 사람도 나쁜생각을 가질수있다

.下愚, 가장 모자라고 어리석은 사람도 착한마음을 갖을수있다

.15, 대리청정 시작(실권은 전혀없으며, 매일 야단만 친다)

 

@세자교육 서연(書筵)14...(經筵: 임금교육)

.朝講~書講~夕講~야간...하루2회 교육받아, 휴강도 많아(행사,병환)

학업에 취미가 없어...뚱뚱한편...

.서연(오전): 정치수업(경전...)

.소대(오후): 역사, 생활습관(예절)

.주입식, 강제교육으로 정신적인 압박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 왕세자의 호위를 맡은 부서

간부가 지방으로 발령나자 세자는 를 써준다

훗날, 지방관리가 소문을 듣고, 영조에게 세자를 칭찬하는데

(세자는 독서가 가장 즐겁다)...영조가 세자를 혼낸다(허위, 가짜)

.世子侍講院은 세자교육을 담당하는 춘방(春坊)이다

정조는 춘방관(친구) 홍국영(4살 많아...)이 있었다

 

@세자의 예술성...서예, 그림에 소질(개 그림)

.혜경궁홍씨 용꿈 태몽...용그림을 그려 경춘전에 부착했다

.소설책 일기로 동기유발을 건의하지만, 영조가 호통을 친다

.옷을 제대로 입지도 못하는 세자교육은 공부뿐이었다

.사람을 사귀는 교육이 전혀없었다

:여항인(閭巷人), 여염의 사람들, 벼슬하지 않는 사람(세자의 동무)

:배동(陪童), 세자를 모시는 심부름하는 아이...

.밤에는 10세이상 남성은 궁궐에 남아있으면 안된다

 

@한중록에 정신질환을 기록하였다

.10세에 혼인, 사도세자가 11살에 이상한 증세를 기록했다

.유난히도 유별스럽고...책을 보면 어지럽다(승정원일기)

.정조는 부친 발병에 대한 공식기록이 없다

.175218세에 발병이 확연했다

.뇌성보화신존; 벼락귀신? 옥주경(경전)을 읽으면 귀신에 홀린다

;천둥번개가 치면 이불속에서 벌벌 떨었다(공포증)

.19. 가슴이 두근두근(경계증, 일반불안장애)...장인에게 편지

.21세부터 여러차례 자살기도

.취선당(장희빈)에 숨어, 밧소주방(은둔형 외톨이)

.술취한 모습 야단맞고, 영조의 실수로 낙선당에 화재(촛불)

.우물에 투신

 

.1757, 정순왕후가 별세후

칼로 내관을 매질하고, 목을 베어 혜경궁에게 보여준다

옷을 가져온 내관의 목을 자른다(강박증)

.24(1768) 영조가 물었더니, “부친 때문에,마음이 상하여 죽였다

알았다, 안 그러마...” 부인에게 자랑하면서, 부친이 설마?

.의대증; 옷을 못입는다

.우물에 뛰어들었다

.2년전부터 헛것이 보여, 가마창문을 막았다

.온양갔을때, 발작이 없어영조가 온양에서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계비를 죽인뒤, 은전군(1)을 통명전 연못에 던졌는데,

荷葉生(연꽃잎에 걸려 살았다)...이재난고(황윤석 유고)

.부모도 몰라보는데, 아들 딸을 못알아 보겠다

영조를 흉보고, 욕을 큰소리로 불렀다

.통명전에서 잔치, 화안옹주...혼숙한다

.28, 비밀 지하방을 만들어...뚜껑, 잔디를 입히고..(후세인)

 

@영조실록 1762. 5.13(사도세자의 성격 기록)

.영조가 직접쓴 사도세자 묘지명 세자시절부터 무도한자는 없다,

자기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미치고말았다

 

.영조실록 기록(공적장소에서도 광증이 보였다)

어렸을때 촉명했으나, 10세이후 발작하면 본성을 잃어버린다

본성을 잃으면 사람을 죽인다

 

@사도세자가 장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울화병이 있다. 몰래 약을 좀 보내달라...”

 

@永春玉音記...정조의 거소(영춘헌)에서 들었던 정조임금의

옥같은 소리를 사돈 김조순이 적어서 집안에 비전했다는 글

아버지가 미쳤다는건, 누구나 다알고 있는것 아니오?”

 

@정조의 상소문...1776.2.4(영조사망 1개월전, 84)

사도세자의 기록(승정원)을 없애달라...”

.사도세자 죽은지 14년후, 一物(뒤주), 某年(죽은 해...)

.영조 孝孫이구나

.홍국영을 김귀주(정순왕후의 오빠)에게 보낸다 (막후,타협정치)

.법전을 펴고 미친자는 사형하지 않고 유배를 보낸다

김귀주는 거절한다(영조가 잘못한것을 허락할수 없다)

.김한기(김귀주의 숙부)를 찾아갔는데, 조카(김귀주)에게 상의한다

동궁이 직접 영조에게 아뢰시오...”

.결국, 정조는 상소를 올릴수 밖에 없었다

 

@정조는 사당에 참배...김귀주에게 편지는 보낸다

.경희궁으로 돌아가 상소를 올린다(정치공작)

(정순왕후가 영조에게 사전에 귀띔을 했을것이다)

.그래서 영조실록원본에서 기록을 지웠다

 

@어떤 심리학자의 책

1.15세에 발작을 했느냐?...11세부터 발병했다

2.사적공간에서 주변사람들이 몰랐는냐?

3.위기상황에서 왜 발병을 안했느냐?.....그건 모른다

@엄격한 영조에게 견딜수가 없었다(잦은 질책에 자포자기)

.15~28세까지 대리청정을 했을까? ...권한이 없었던 대리청정이다

 

@야사(소문)

.몰래 평양을 다녀올때, 내관들이 흉내를 내면서,

그렇게 하라고 하면서 장난한다

.칼을 좋아했다, 지팡이처럼 뚜껑을 열면 칼이 나왔다

.칼 주문후 가져온자를 맘에 안든다며 목을 잘랐다는 소문이 많았다

 

 

4.사도세자 최후

@1개월전 나경언 상소문(노론 윤급의 청지기)

.사도세자의 죄명

1)왕손의 모친, 후궁 빙애(경빈박씨)를 죽인 죄

완손은 통명전앞 연못에 던져...

2)안암동 여승을 궁으로 끌어들인 죄(비구니 참수형)

3)평양을 다녀온 죄(1년전, 유람으로 세자신분을 망각)

4)북한산성에 놀러간 죄

.이틀전, 늦은밤에 수구(하수도)를 이용하여 경희궁에 해하려한 죄...

.영조는 도성 백성들에게 사도세자가 착취한 돈을 갚아줄게...

.궁성호위령을 발령한다(계엄령, 반란에 대비)

 

@당일 아침

.영조는 선원전에 들려 고백한다

.선원전은 창덕궁 인정전 뒤편에 위치

(역대 임금의 어진을 모신 전각, 숙종에게 보고)

.그리고 휘령전에 들린것은 부인(정성왕후)에게 큰일을 암시했다

(정성왕후가 혼전으로 사용했던 공간으로 현, 창경궁 문정전)

.사도세자를 만나, 혼령과 대화를 하면서 야단을 친다

(경들은 들리는가? 영혼의 소리가...변란이 임박했는데...)

 

@사도세자의 거처는 창경궁 통영전(인현왕후 거처)~덕성악 부근이다

.상소문 소식을 듣고, 영조의 호출을 받는다

.경희궁 흥화문앞에서 엎드려 대가하면서 혼나고, 돌려보낸다

.待命했다(영조를 만나다)

 

@선희궁(사도세자 생모, 영빈이씨)은 영조를 대면한다

.출발전에 혜경궁 홍씨에게 편지를 보낸다(어젯밤 소문이 너무 무섭다...)

.영조에게 포기한듯 대화를 하다

(동궁의 병이 점점 깊어져...바랄것이 없어...차마 말할수는 없으나...대처분을 하소서....)

.영조는 즉시 거동령을 내리고 선원전으로 행차를 한것이다

.혜경궁 홍씨는 영조가 출입한 문을 질문했더니,

.경하문으로 들어온걸 듣고 불안해진다(큰일났구나...불길함)

.평상시에는 만안문을 사용했었다

 

@사도세자는 혜경궁 홍씨를 불러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어젯밤, 통명전에서 뭔가?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더니 불길하다

.부친에게 내가 많이 아프다고 말해야겠다

.정조(아들, 11)의 모자(방한구)를 가져오라고 하자,

.부인은 본인두건을 사용토록 권하자, 짜증을 낸다

자네는 참 모진사람이구려...아들(정조)까지 화를 당할까봐 그러시오?”

.부인은 그럼 아들것을 사용하세요라고 말하자

.삐친 사도세자는 본인것을 들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영조의 호출을 계속 거부하다가, 휘경전으로 이동하여 변명을 하였다

.곤룡포를 벗고 엎드린다

.하얀 상복같은 무명옷을 입은지라, 영조가 호통을 친다

.모친상 이후에 자주 상복을 입은편이었다

.영조는 부친이 빨리 죽기를 바랐다면서 화를 낸것이다

.400백년 종사를 위해 자결하라(칼을 던져준다)

.한참동안 변명하면서 살려달라...” 용서를 빌은뒤, 포기한다

.칼을 들자(신하가 빼앗아...)

.옷을 찟어 자살을 하려하자(신하들이 붙들어...)

.머리를 벽에 부딕쳐 피가 흐르자(신하가 말린다)

 

@최초 뒤주가 왔지만, 너무적어 큰것으로 교체한다(군용대형뒤주)

.뒤주에 갗힌뒤, 밤중에 탈출하여 다시 체포하여 가둔다

.영조는 직접 못질을 하고, 5일간 감시를 하면서 수시로 확인한다

.뒤주아래 구멍으로 밥,,부채를 줬는데...영조가 막아버린다

.영조는 경희궁으로 환궁해 버린다

.20일낮에 숨졌다(번개가 치면서 폭우가 내렸다)

.발상은 하루 늦춰 개방(완전 사망을 위하여...공식사망은 21)

 

@사도세자는 아들(정조)도 정적으로 생각했다

.영조가 수시로 정조한테 대물림을 한다고 흘렸기 때문이다

.세자로써 무거운 책무와 의무를 못이겨, 자포자기 한것이다

.장례도 허름했다

.신하들은 천단복을 입었다(3년상후, 100일간 착용하는 옥색관복)

.3년상 6개월전, 사도세자를 효명세자로 명칭을 교체하니,

정조는 父親이 바뀌어, 상복을 벗어야 했던 아픔을 겪는다

.영조는 2개월후 묘비를 오묘한 표현으로 참한다

.금등지서(영조가 후회하여 쓴 시를 정순왕후 침실에 뒀다)의 소문

.훗날 정조의 공작정치, 부친의 억울한 죽음(영조가 후회했다)...

.체제공(南人)이 혼자 읽은뒤, 영남사림에게 편지를 보낸다

(영조가 후회했다면서...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

 

@閑中錄(?...한가할 ).....읍혈록(泣血綠):피눈물의 기록

.1(1795, 60): 사도세자(남편기록)

.2(1805):개인적인 삶

.3(1806):친정(홍봉한,홍인한)의 변명

.某年(모년:사도세자가 죽은해, 아무해), 一物(뒤주)

.영조 不忍聞之敎”...차마 들을수 없는 임금의 하교(임금을 그만할래...)

.정조 갑자년구상(1794), 순조가 15(1804)에 양위후, 화성에서 살겠다

.명의록(明義錄, 1777, 정조1), 홍인한등 제거기록

 

5.정조즉위(이산) 1776(사도세자 사후 17)

@홍인한(좌의정)을 유배(여주~고금도, 사약)

.외조부 홍봉한의 이복동생...정조등극을 방해했다고 오해

.三不必知(삼불필지), “당파~인사~나랏일영조를 위한 답변

.영조의 질문에 조석(두번)에 같은 대답을 한다

.영조가 홍인한에게 편지(대리청정을 허락하라)를 보낸다

한글을 몰라서 저녁에도 같은 대답을 했을까?

.혜경궁도 같은 생각으로 묵인하라고 한다

.사약: 逆情(역정), 역모 흔적은 없어 유배를 보냈으나,

異志(이지), 반역이 있어 사약을 내린다(정조의 돌변)

#莫須有(막수유, 중국고사), 어지로 꿔어 맞춘말을 말한다

.15년후, 정조는 다른 이유로 변명한다

모년모월(사도세자 죽은사건)에 구선복와 죄가 같아서...”

구선복(훈련대장, 의금부 판사)

 

@홍인한은 거만, 하급자에게 가혹, 풍류와 멋을 알고있었다

.정조가 어렸을때(11), 업고다니고, 옷입는 맵시를 배운다

.숙청으로 희생된후, 철종시대(80년후)에 복위되었다

 

@홍낙임(외삼촌)을 친국(정조의 직접심문), 이미 죽은목숨이다

.죄인복장으로 충분한 변명의 기회를 준다...용서받는다

.1778, 홍봉한(외조부)의 사망은 스트레스??

#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2c~1453년 로마역사)

황제의 유죄추정의 원칙...혐의는 증거이며, 재판은 유죄

 

@혜경궁 지축사(정조 18, 1769)

.정재화(정조의 매부, 홍은 부위)와 기생비에 놀러간다

지축별감사건을 고모(화완공주)가 혜경궁에게 알려준다

.혜경궁은 父親(홍봉한, 영의정)에게 협조...거절당하자 단식투쟁

.홍봉한은 형조참의를 시켜 정재화(정조의 매부)를 유배보낸후,

.동궁(정조)에 유배사실은 알리자, 화를 크게낸다

.이때부터 외가를 미워한다(한중록, 승정원일기, 명의록)

.홍씨 외가에서 서자(은언군, 은신군에 관심돌린다)고 소문이 나돈다

 

@습율회(拾栗會)는 비원에서 밤줍기 행사후, 보름후에 나눠준다

.이때, 은원군과 은신군에게 줬다고 소문이 났다

.영조는 궁궐계엄령(궁성호위령)을 내리고, 홍봉한에 앙심(오해)

 

@정조의 숙청...죄명(권력을 크게, 오랫동안 유지한 죄)

.외가, 처가, 정순왕후(할머니),

.노론벽파(친정을 방해한 권력); 김상로, 홍계희(홍인한 가문)

.기득권 세력은 모두 제거하고, 절대권력자로 거듭난다

 

@실세였던 홍국영(4살 고참, 44)도 제거된다

.홍인한의 10(손자뻘)으로 가문에서 총애를 받았다

.퇴임한 홍봉한에게 부친의 취직을 부탁하는데,

.홍봉한은 좌의정 홍인한에게 편지를 보낸후,

기다리던중 답신을 가로채 훔쳐보았다

이런놈을 어떻게 취직을 시키나요?...”

.홍국영은 이를 악물고돌아갔다

 

@1777, 경희궁(인왕산) 침실에 자객이 들어오다

.독서하던중, 지붕에서 기와소리~돌구르는 소리가 들려

.근위대장(홍국영)을 불러 추격하지만 자객은 잡지못했다

.궁궐거차를 창덕궁으로 옮기고, 수배령을 내린다

.포도대장 이주국을 해임하고, 구선복을 임명한 직후에

.자객 용의자, 금호문 월담자를 체포하여 허위자백을 받는다

 

@홍상범(홍계희의 손자)일파를 일망타진한다

.특히 사도세자의 서자(은전군)을 추대음모를 뒤집어 씌운다

(통명전에서 연못에 던져진 은전군)

 

@“홍인한을 모친이 죽이라고 했다고 혜경궁 홍씨를 속여...

.혜경궁 홍씨거짓이다, 어미를 죽이는 꼴이다

.외롭다면서 사돈에게 세자(순조)를 당부한다(안동김씨, 김조순)

과인은 고위하다(孤危, 외롭고 위태)”

 

6.원행을묘화성(정조19)

.1일차: 한강도하 배다리정약용 착안

상선 36척 동원(부교중대, 조립교중대)

.2일차: 시흥행궁 숙박후, 화성향교 대성전 참배

.3일차: 낙남헌(洛南軒) 과거시험(,무과 별시)

*中國 後漢, 도읍(洛陽城 南宮에서 유래)

.4일차: 현릉원(융릉) 참배, 모친(혜경궁 홍씨)의 대성통곡

야간 군사훈련(서장대 지휘, 5000명 참여)

.5일차: 모친 회갑잔치(奉壽堂: 만년의 를 받들어 빈다...)

궁중화가(단원 김홍도)

.6일차: 낙남헌 노인잔치(70세 이상), 노대신+노인 400명 초청

득중천, 활쏘기(매화포, 정조가 과녁에 명중하면 표식)

.7일차: 귀경길 지지대고개(수원을 돌아보다)

擊錚上言(격쟁상언, 민원청취)

 

@화성건축

.다산 정약용의 건설(장안문: 우진각지붕, 무지개문, 반월형 옹성이문)

신풍루(정문), 壯南軒(장남헌: 정전)

.수원부사 조심태, 주민이주 담당

.사도세자(1735~1762)융릉(현륭원), 윤선도의 음택추천

1789(정조13), 영웅원(양주 배봉산)에서 이장

용주사 창건(1790), 최초 길양사 터(신라 염거화상이 창건)

.방화수류정(동북각루), 화홍문(석교7, 홍예수문)

 

@정조도 정권확립에 무려18년간 최선을 다했으나 못한채 죽었다

.지방행차시 백성들의 의견을 청취하였고 잔치를 베풀었다

.노인들에게는 지팡이와 손수건을 선물로 하사하였다

붕당(朋黨)이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결합체”(정당체제)

 

@조선 중기(선조), 儒學이 뿌리내려 큰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士禍이후 주춤했던 士林派가 권력을 장악, 관리임명권을 놓고 대립

.김효원의 집은 동쪽(東人)...처음에는 東人이 우세했다

.신의겸의 집은 서쪽(西人)...일본의 침공예상에 상반된 의견충돌

 

@東人은 “정여립 역모사건”으로 北人~南人으로 붕당

.南人은 온건파...유성용, 퇴계학파(남쪽에 거주)...허목, 윤선도

.영남지방 주축(귀족층, 부자)...장희빈(숙종)의 득세한 세력

.北人은 강경파...이괄(북쪽에 거주)

.임진왜란이후 확장(광해군 집권), 집권과정에서 잦은충돌

 

@北人은 대북파(大北)~소북파(小北)으로 붕당

.대북파(大北)은 광해군의 정권집단(이산해~홍여순, 노장파 세력)

.七庶의 獄...廢母殺弟(영창대군, 인목대비), 광해군을 몰락시켜...

.소북파(小北)은 탄압대상(남이공~김신국, 소장파)

 

@西人은 노론~소론으로 분리(숙종)

.인조시대는 西人이 집권하지만,

.숙종의 붕당정치 중심은 西人~南人...인현왕후는 西人의 핵심

.소론의 수장(숙종).....기사환국이후...송시열의 등장

.노론은 수장(영조), 탕평책은 공신 때문에 실패(思悼世子 壬午獄死)

.홍봉한, 율곡학파 노론의 장기집권 비결(청빈이 많았기 때문)

붕당정치 대신에 안동김씨(풍향조씨), 세도정치가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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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밤 돼지꿈을 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