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25. 제2지역, 제12지역 회의 및 간담회(지역부총재 홍업의, 조찬영)
담양의 정자와 원림(정철 가사문학)
담양의 정자와 원림(정철 가사문학)
@若無湖南 無是朝鮮(호남이 없으면, 그것은 조선이 아니다)
.친숙함: 풍부한 물산, 따스한 인정, 멋진 풍류
.귀한감정, 따스한 고향의 품, 외갓집을 찾는 편안함, 정겨운 이웃
@若無安東 無是朝鮮(안동이 없으면, 그것은 조선이 아니다)
.정신적 성숙,도덕을 중요(지적인 엄숙함,전통의 저력,공동체적 삶의 힘)
@모현관(慕賢館)
.미안 유희춘(1546, 을사사화, 명종) 귀향된후~제주도 이배(1547)
.함경도 종성으로 이배(19년간): 양재역 벽서사건(1547)
.退溪와 교신으로 해배(1567, 선조)~대사성 등용
@창평의숙 설립(고정주: 고재욱의 祖父/동아일보 발행인)
.제자: 인촌 김성수(동아일보),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송진우(언론인)
@취가정(醉歌亭): 담양 고서면
.억울한 의병장(김덕령)을 위해 후손(김만식)이 건축
@담양 고서, 造園과 湖南歌壇(가단)에서 歌辭文學이 탄생한다
.중종시대(樓亭은 885개), 亭子는 휴식처,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다
園林(원림)은 가꾸지 않은 자연 그대로 庭苑(정원)이다
고려~조선시대(家園, 林園, 花園, 林泉, 園林, 宮園)
庭園(정원)은 일본문화로써 집안에 가꾼 정원문화
@소쇄원
梁山甫(양산보, 1503~1557, 55세)이 조영하였다
.양산보는 蒼巖(창암 양사원)의 장남, 창암촌이라 칭한다
15세(1517), 부친따라 정암 조광조의 제자가 되어 현량과에 등용된다
.기묘사화에 조광조가 유배(능주)되고, 양산보는 창암촌으로 낙향하여
초가정자(待鳳臺, 대봉대)에서 處士公으로 은자한다
.학포 양팽손의 화순으로 낙향도 조광조를 따라왔다
면앙정 송순(宋純)의 도움으로 소쇄원을 건축한다(40대로 추정)
.松江 鄭澈(1536~1593)의 “소쇄원에 부치는 詩”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정자를 세워,
사람이 가고 오고 마흔해로다
시냇물 서늘히 벽오동아래로 흐르니,
손님이 와서 취하고는 깨지도 않네)
양산보(34세)가 지석촌으로 낙향한지 17년후 松江이 태어났다(1536)
1575년에 쓴 작품으로, 당시 지실마을로 잠시 낙향해 있었다
양산보는 陶淵明(도연명)과 周茂叔(주무숙)을 존경했다
陶淵明(도연명)의 歸去來辭(귀거래사)를 곁에 두었고
周茂叔(주무숙)의 愛蓮說은 스승(조광조)이 흠모했기 때문이다
소쇄원은 園林의 이름은 황정견(宋나라 명필)이 周茂叔(주무숙)의
인물됨을 극찬한데서 인용한 것이다
胸懷灑落 如光風霽月 (흉회쇄락 여광풍재월)
“가슴에 품은뜻의 맑고 맑음이, 마치 비갠뒤에 해가 뜨며
부는 바람과도 같고 맑은날의 달빛과고 같네...”
.霽月堂(제월당)은 사랑채와 서재가 붙은집
.光風閣(광풍각)은 계곡 가까이 세운 누정
.양산보가 어렸을때 오리들이 헤엄쳐 올라와서 놀았던 연못이다
.자손에게 유언하였다
“절대로 남에게 팔지말고, 돌하나 계곡 한구석 내손길 내발자국이
닿지 않은곳이 없으니, 하나도 상하게 함이 없도록 하라...”
(唐나라, 이덕유가 平泉莊을 만들고 그랬다며 환기시켰다)
.1755년, 목판화(소쇄원도)를 보고 재건한 모습이 현재건물이다
.현재, 처사공의 유언에 따라 15대째 유지하고 있다
.1400평, 계곡과 야산을 끼고 흙담, 50m...“ㄱ”형
.벽오동, 매화, 목백일홍, 복사나무, 가을단풍...
.소쇄원은 양산인 모씨의 舊業이며,
저절로 웅덩이가 만들어진 槽潭(조담)이다
.당대 제일의 名儒, 名文, 名流들이 소쇄원의 글을 남겼다
(奇大升기대승, 송강 정철, 송순, 백광훈, 고경명, 김인후)
(사돈 김인후는 48가지 노래와 10편의 시를 남겼다)
송시열은 뒤뜰 梅臺에 “소쇄처사 양공지려” 문패를 달게했다
고산 윤선도는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을 벗으로 삼았다
@紫微灘(자미탄), 증암천...“백일홍 여울”
.紫微花 목백일홍(배롱나무)은 단단하며 터럭(俗氣, 속기)이 없고
윤기가 흐르는 裸身(나신)으로 겨울에 손을 대면 부르르 떨어
부끄럼 나무(간지럼나무)이며, 뼈마디가 긁은 여인의 손목같다
원숭이도 미끄러지며, 7우러~9월까지 100일간 붉은꽃이 핀다
백일홍이 시들면 벼가 익어 쌀밥나무라고 부른다
@息影亭(식영정)...“그림자가 쉬고있는 정자”
棲霞堂(서하당) 김성원의 장인어른, 옛주인 石川 林億齡(임억령)
장인에게 쉬도록 지은 정자인데 정자명칭을 정한다
(그림자 이야기...장자, 그림자가 무서워 나무 그늘로 숨었다)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 명명한다(임억령, 65세, 1560, 명종)
.별모(성산)과 마주보는 언덕빼기 벼랑위의 가장 전망이 좋은곳이다
한칸 서재, 팔각지붕, 넓은 툇마루(정면2칸, 측면2칸)
아름다운 老松과 곁가지 현애(懸崖), 뒤뜰의 배롱나무
.호남士林들이 모였다(임억령, 김성원)
(奇大升, 정철, 송순, 백광훈, 김인후, 김윤제, 양산보, 송익필, 김덕령)
.연못옆에 芙蓉堂은 1972년에 지었다
松江 정철의 “星山別曲(성산별곡)”
(어떤 지날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棲霞堂(서하당) 息影亭 주인아, 내말 듣소
인간세상에 좋은일 많건마는
어찌 한강산을 그처럼 낫게여겨
적막한 산중에 들고 아니 나시는고...)
“짝맞는 松이란? 釣臺를 세워두고,
그아래 배를 띄워 가는대로 버려두니...”
(송강 14대손 정하용이 지실마을을 지키고 있다)
@棲霞堂(서하당)
.부용당 뒤편의 김성원의 거처였다
.서하당이 훗날 湖南歌壇의 기초가 되었다
.스승, 장인(임억령)을 위해 식영정을 지었고,
열동네 지실마을 정철은 김성원에게 글을 배운다
.서하당은 송강의 土村이다(처가의 외숙의 재당숙...사둔네 8촌)
@環璧唐(환벽당)
서하당에서 자미탄 건너 마주보이는 사촌의 從姪(종질) 김윤제는
을사사화에 낙향하여 칩거한 環璧唐(환벽당)이다
.성산별곡의 釣臺이 환벽당이며, 뒤편 배롱나무 고목이 아름답다
현판은 송시열이 방문했을때 남긴 필체이다
@醉歌亭(취가정)
김만식이 김덕령(임진왜란 의병장)의 德을 기리는 정자(1890)
.권석주(松江의 제자, 1569~1612)의 꿈에 獄死한 김덕령의 혼령이
“醉詩歌(취시가)를 불렀다”
.두팔은 벌린 소나무가 일품이며, 탱자나무 울타리, 사금바리가 많다
.멀리서 星山, 장원봉, 효자봉, 열녀봉이 보인다
@鳴玉軒(명옥헌)
.조선시대의 원림으로 전망이 탁트이는 시원한 곳이다
.소쇄원에서 비탈길로 7~9굽이를 거슬러 올라야 한다
“인조대왕 개마비”... 고서면 산덕리 후산마을에 있다
.마을입구 은행나무(500년)에 인조가 말고삐를 메어둔곳을 말한다
.인조반정을 준비할 때 월봉 고부천을 찾아 담양 창평을 방문한다
(고부천은 임진왜란 의병장 고경명의 손자)
(인조와 뜻은 같이하지만 광해군의 녹을 먹은지라 사양한다)
.고부천은 오희도를 추천하여, 인조는 후서마을 은행나무에 말고삐를
메어두고 오희도와 결탁하여, 반정이후 한림학사로 등용했다
.오희도는 높은벼슬을 버리고 후서마을로 낙향한다
.아들 오명중(1619~1655)은 세상에 등지고 명옥헌에서 칩거했다
.명옥헌 가운데 사각연못, 소나무와 배롱나무가 장관이다
백일홍(고창 선운사, 해남 대흥사, 강진 무위사)
.唐현종(양귀비)은 中書省(3성6부)에 백일홍이 많아 자미성으로 불렀다
.동네 茅亭(모정)은 시골 노인들의 쉼터이다
.竹林七賢의 주인공은 부자출신으로 호사스런 隱者였다
@松江亭(송강정)
.가사문학 松江 정철(1536∼1593, 고서면 원강리,1955년 개축)
“죽록정(竹綠亭)”이었으나, 후손들이 “松江亭”으로 고쳤다(1770)
.정면 “송강정”~ 측면 “죽록정” (정면2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집)
.식영정을 오가며 “사미인곡~속미인곡~사미인곡(王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女人이 男便과 이별하여 사모하는 마음에 빗대어 표현한 노래)
.정송강유적(송강정, 환벽당, 식영정)
.낙향후 4년동안 지내던 정자
성산별곡은 성산(단양)으로 낙향후 김성원을 위해 지었다(1560,명종)
.처하당, 식영루의 사시풍경의 변화와 처외재당숙의 풍류를 칭찬한다
.서사(緖詞),춘사(春詞),하사(夏詞),추사(秋詞),동사(冬詞),결사(結詞)
@俛仰亭(면앙정)
면앙정 송순(宋純 1493~1582), 담양 봉산면 제월리 마항마을 뒷산
.송순이 퇴계를 비롯한 당대 최고학자들과 토론하고 제자를 양성한곳
.낙향후(중종, 1533) 직접 지었으며,
.임진왜란(선조, 1579)으로 파괴되어 후손들이 지었다(효종, 1654)
.앞면3칸, 옆면2칸, 목조기와집
@담양
.이서(樂志歌)
.송순(1493~1583) 俛仰亭歌(면앙정가, 하늘을 우러러보다)
.송강 정철(1536~1593) 속미인곡,사미인곡,성산별곡,관동별곡
.식영정: 김성원(서하당)이 석천 임억령(스승,장인)을 위해 건축했다
성산별곡 무대: 정철, 고경명
.송강정: 대사헌 낙향, 죽록정(1584 선조17년), 동인~서인 권력다툼
.환벽당: 김윤제(나주목사, 1501~1572) 을사사화 낙향(9월의 상사화)
꿈에 창계천에 용이내려와...정철이 물놀이를 하였다
정철의 스승, 외손녀 사위
@송강 정철
@한양 출생(장의동: 청운동+적선동/장동, 영일정씨 )
큰누나(인종의 후궁), 작은누나(계림군 부인/월산대군의 손자)
명종(8세, 경원대군, 인종의 이복동생)과 손꼽동무(10세)
27세 장원급제 재회, 명종의 초청(1562)
17세 혼인(담양부호 유강항의 딸, 4남2녀), 첫날밤(유종헌가옥)
.을사사화에 계림군(정철의 매형)이 역적으로 죽으며 파탄이 온다
.父親은 함경도 경원~경상도 영일로 유배된다
.맏형도 유배 후유증으로 병사한다
.부친을 따라 祖父고향(담양)으로 낙향한다
.김윤제는 환벽당을 건립(현 광주 충효동, 환벽리+김덕령의 고향/석저촌)
.스승 김윤제(의병대장 김덕령의 曾祖父)의 외손녀사위
.사하당 김성원(김윤제의 사촌조카)과 동문수학하였다
.고봉 기대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하서 김인후(기대승의 스승),송천 양응정,석천 임억령에게 글을 배웠다
.星山앞으로 흐르는 맑은 냇물을 본떠 松江(호)이라 하였다
@26세,장원급제후 東人~西人갈등으로 담양으로 낙향하였다
.당시 퇴계는 재야 영남학파(남인)의 수장이고,
.율곡은 갈등조정을 하지못하고 사직해 버린다
.동인천제 정권에서 14년간, 출사와 낙향을 반복하였다
@45세, 강원도관찰사(원주감영) 시절에 關東別曲을 완성한다
.경포대 경내에 詩碑가 있다(1977)
.선조18년, 율곡이 죽은뒤에 창평으로 낙향한다
.담양 식영정에서 “사미인곡, 속사미인곡”을 쓴다
.息影亭은 김성원(서하당)이 장인(임억령)을 위하여 건축했다
(식영정 四仙: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선조22년, 정여립의 모반사건이후 우의정~좌의정으로 등용된후,
이후, 파직되어 함경도 명천~진주~함경도 강계로 유배된다
.선조25년(1592), 임진왜란에 전라도제찰사가 되었다
.명나라 사신, 강화도에 칩거...病死 1592(57세)
.묘소: 충남 고양 송강마을(김유신 출생지, 박문수 묘, 독립기념관)
담양(가사문학)과 장성(文不如)글자랑 마라)
@정철의 성산별곡을 창작한 무대...식영정
.지실마을을 배경(식영정+환벽당+소쇄원)의 동양화가(석정 김영수)
.가사문학관에 정철 송강본 330장 목판을 보관
.무등산 서석대에서 흘러 증암천/송강+담양천/오례천...영산강합류
@면앙정(송강정)...하늘을 우러러 보는 앙, 땅을 굽어보다
.공자왈, “두 번째 낙은 면앙의 낙이다”
.면앙정(오례천+담양천)...합류하여 영산강이 시작된다
.호남 정자의 특징은 가운데 방이 있는게 독특하다
@1976년, 광주댐 준설(무등산 서석대에서 흘러온 강...)
@송강정...사미인곡/ 임금에 대한 그리움(담양 고서면)
.담양...대나무, 영산강의 시원지(용소), 가사문학(송강 정철)
@풍영정(광산)...기대승, 이황, 김인후의 흔적...한석봉의 현판글씨
.전설; 임진왜란에 극락강으로 변했다가 원위치 되었다고 전해진다
@무등산 장불재(900m)는 단양/광주의 분기점(샘골, 우물)이다
.증심사/우제길 미술관(운림동)...
Ti-story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조흥식
0204mpcho@naver.com
(매일밤 돼지꿈을 꿔라)
'허재갑총재(2020-2021)'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227. 2021년도 동계골프대회 2일차(2,26~2,27 영암 아크로CC) (0) | 2024.01.27 |
---|---|
2021-0226. 2021년도 동계골프대회 1일차(2,26~2,27 영암 아크로CC) (1) | 2024.01.27 |
2021-0225. 흥인라이온스클럽 김기범 자문위원 별세 (0) | 2024.01.23 |
2021-0224. 제9지역, 13지역회의 및 간담회(지역부총재 이원선, 성계욱) (0) | 2024.01.23 |
2021-0222. 제10지역 회의및 간담회(오문기 지역부총재) (0) | 2024.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