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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로라이온스클럽(354-C지구)

2014-0616.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재심 게스트하우스 방문

by 조흥식 2023. 1. 30.

2014-0616.세종로라이온스클럽 이재심 게스트하우스 방문(종로3가 인사동)

교산 허균(도문대작)

 

 

허균(도문대작)

@가끔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

소풍 가는 날에나 먹을 수 있었던 김밥,

졸업식 때 부모님이 사 주셨던 자장면,

제철에도 귀해서 특별한 날에나 먹었던 과일 등...

그러고 보면 우리 식생활이 풍요로워진 건 분명한 듯하다.

어디를 가도 먹을 것은 넘쳐나고,

음식의 종류와 요리 방법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해졌다.

옛날 같으면 임금님의 수라상에나 올랐을 귀한 음식도

이따금 서민들의 식탁에 오르곤 한다.

그렇지만 사회 계층별 식생활 수준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며,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마저 섭취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음을 자각하게 된다.

 

@교산 허균(許筠, 1569~1618), 도문대작인(屠門大嚼引)

우리 집이 비록 가난하지만,

선친께서 살아 계실 적에는 사방에서 나는 특산물을 예물로 보내오는

자가 많았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온갖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어보았다.

장성해서는 부잣집에 장가든 덕분에 각종 산해진미를 다 맛볼 수 있었다.

임진왜란에 병화(兵火)를 피해 북쪽으로 갔다가 강릉 외가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진기한 해산물을 두루 맛볼 수 있었다.

벼슬길에 들어선 뒤로는 먹고살기 위해 남북으로 전전하였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나는 색다른 음식은 먹어보지 못한 것이 없었다.

음식과 성에 대한 욕구는 인간 본능인데, 특히 음식은 생명과 직결된다.

선현들이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천하게 여긴 것은 먹는 것만 탐하고

이익만 추구하는 행동을 가리킨 것이었지,

먹지도 말고 그에 대해서 말하지도 말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때문에 팔진미(八珍味)를 예기(禮記)에 기록했겠으며,

맹자(孟子)가 생선과 곰 발바닥 요리를 구별해서 말했겠는가.

내가 죄를 짓고 바닷가 고을로 유배된 뒤로는 쌀겨나 싸라기조차

넉넉지 않아 밥상에 오르는 것은 오직 부패한 뱀장어와 누린내 나는

생선, 쇠비름, 돌미나리 같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날마다 양을 곱으로 먹더라도 저녁 내내 허기가 들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지난날 질리도록 먹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산해진미를

생각하며 침을 삼키곤 하였다.

그런 음식들을 다시 먹어보고 싶지만 아득하기가

하늘나라 서왕모(西王母)의 천도복숭아와 같아,

동방삭(東方朔)이 아닌 나로서는 훔쳐 먹을 재주도 없다.

마침내 그 음식들을 종류별로 적어 놓고 때때로 보며 한 점의 고기로

여기기로 하고 이를 도문대작(屠門大嚼)이라고 이름붙였다.

세상의 영달한 자들이 음식으로 온갖 사치를 부리며

무절제하게 낭비를 일삼지만, 부귀영화란 이처럼 무상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를 통해 경계하고자 한다

 

@교산 허균 1611년 귀양지

*전라도 함열(咸悅)에서 지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의 서문

도문대작은 자신이 접해 보았던 각 지역의 식품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조리법이나 맛 등에 대한 간략한 평가를 덧붙인 식품 관련 저술이다.

도문대작의 원뜻은 푸줏간 앞에서 입맛을 크게 다신다는 것으로,

실제로는 없어서 못 먹지만 먹는 시늉을 함으로써

먹고 싶은 욕망을 달래는 것을 말한다.

 

@식욕은 인간의 생존과 관계되는 가장 본능적인 욕구이다.

유교 문화권에서 식욕은 성적 욕구와 함께 절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공자가 꽁보리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은

그 속에 있다.”라고 하고,

*맹자가 음식을 밝히는 사람을 남들이 천하게 여긴다.”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가 맛있는 음식을 떠올리며 침을 삼킨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허균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욕망을 당당히 밝히며

자신이 먹어본 각종 음식들을 종류별로 하나하나 기록하였다.

이는 요즈음 흔히 볼 수 있는 음식 관련 다큐멘터리나 탐방 프로그램,

만화, 서적 등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게다가 허균이 온갖 산해진미를 나열해 적어 놓고

때때로 보며 한 점의 고기로 여기려 한다.”라고 했으니,

그 표현은 파격이라 할 만하다.

겉으로는 더할 수 없이 청빈한 삶을 추구하는 척하지만 부귀와 권력,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해서라면 온갖 권모술수를 마다치 않는 지식층의

위선을 의도적으로 비꼬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허균의 글에서는 왠지 나도 누구 못지않게 누릴 만큼 누려본

사람이다라는 자부심과 과시욕이 느껴진다.

명문가의 자제이자 경제력 있는 외가와 처가를 둔 소위 특권층이었고,

뛰어난 머리와 충만한 재능을 지닌 채 큰 어려움 없이 관료생활을 하며

평생 누렸던 풍요로운 환경과는 너무도 다른 유배생활에서

그의 심기가 편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기죽어 지내는 대신 뻥뻥 큰소리를 치듯

이 글을 지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그의 의식세계와 반항적인 기질이 보인다.

 

@허균을 얘기할 때 흔히 그의 개혁사상을 거론한다.

*그가 호민론(豪民論)에서 민()의 정치적 역할에 주목하고,

홍길동전에서 신분제 타파와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는 점 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음식을 소재로 한 이 글에서는 하층민의 고달픈 삶에

대한 한마디 언급이 없다.

자신과 같은 지배층이 호의호식하는 동안 뼈 빠지게일하고도

배불리 먹어보지 못했을 백성들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는다.

 

 

 

 

늘빛사랑 조흥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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