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02.세종로라이온스클럽 4월 정기산행(도봉산 오봉)
자치통감 10(제가2)
자치통감 10(제가2)
제목: 자식교육
1.역사가 반고(漢書 32~92), 아버지의 부족했던 자식교육
*靑나라(오문전)의 서재에 붙인 대련
“세상에 몇백년간 이어온 가문중에 德을 쌓지않은 가문은 없고,
천하에서 첫 번째로 꼽아야할 훌룡한 일은 여전히 讀書이다”
@반고는 자식교육과 집안 식솔교육
*가정교육 미흡으로 노복들의 행패(종금), 하극상이 빈번하여
결국, 빈객들이 체포되고 가풍이 무너진다
*부친(반표 3~54)의 史記(속편) 집필을 승계하여 완성시킨다
*동한2대 한명제(28~75)는 반씨부자의 역사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
*4대 한화제(79~105)는 두헌(대장군)과 관계가 매우 좋았으나,
정계의 주축세력으로 확장되자 한화제의 명령으로 권력투쟁이 시작
두헌(두태후의 오빠)가 피살되고, 반고도 체포되어 투옥된다
*“반고가 사사롭게 국사를 고친다”고 고발되어 투옥되어 죽게된다(61세)
@채옹(동한말기, 133~192 채문희의 부친)
*동탁이 죽자, 한숨을 길게 쉬었는데
그 이유는 동탁의 파당으로 내몰릴수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채옹은 옥중에서 억울하게 죽었다
@반고 가문
*반고 가문은 목축사업의 성공으로 경제적 지위를 얻어 번성하엿다
*반첩여(한성제의 총비, 반고의 왕고모)의 덕분으로 가문의 영광이 시작
반고 부자가 이어 역사서를 저술 기회를 얻고, 승상에 오른다
*양웅(후한 명사, 명유)이 반고를 방문하여 독서, 공부하도록 유인하였다
2.재상의 아들교육(교훈)
@당현종의 명재상(재위 40년간)
*요숭+송경=“요송시대” 개원성세의 절정을 이룬다
*재상 노회신, 장거정은 대대로 가풍을 유지시킨 결정적인 이유는
검약의 습관, 가정교육의 엄격함과 실천이었다
*龍生九子 子子不同(용이 새끼 9마리를 낳아도 모양새가 모두 다르다)
*一母之子 不必皆賢(한 어미의 자식이라도 모두 현명한건 아니다)
@위지고(당현종 황문감 647~715)와 요숭(재상)
*위지고는 요숭(재상 651~721)의 추천으로 재상에 오른다
*요숭은 위지고에게 낙양(동도)에서 관리선발 임무를 부여하면서,
송경(이부상서)에게 문하성에서 일하도록 인사발령을 단행하였다
*위지고는 요숭에 대한 불만이 가득하여 당현종에게 폭로한다
“낙양에서 이부상서를 하는데, 요숭의 아들(2명)이 청탁을 해왔다”
*이에, 당현종은 요숭(재상)을 불러 질문하였는데,
“당신 아들은 어떤 사람인가?”
*요숭은 아들 2명이 위지고에게 청탁을 했을것으로 직감하였고,
위지고가 황제 알현 직후인지라 사실대로 대답하였다
“아들 3명중, 2명이 동도(낙양)에 근무하고 있는데,
두 아들은 천성적으로 욕심이 많고 신중하지 못합니다
미처 확인은 해보지 못했으나 틀림없이 이부상서 위지고에게
청탁을 했을것으로 추측됩니다”
*당현종은 위지고를 해임하려했는데, 요숭이 상소하였다
“제 자식의 잘못으로 위지고의 해임은 부당합니다
틀림없이 폐하께서 재상 요숭에게 사사로운 총애를 베풀었다고
민심이 흉흉해질것으로 우려됩니다”
*당현종은 위지고를 재상에서 공부상서로 강등시킨다
위지고는 요숭에 감동하면서 물러난다
@요숭의 아들(요이1, 요이2, 요혁3)의 뇌물수수
*요숭에게 신임받던 조회는 호인에게 뇌물수수한 요숭의 아들을 투옥시켜
사형선고를 하였는데, 요숭이 선처를 건의하여
곤장(100대), 유배되어 죽었다
*요숭은 사임하면서 후임대상에 송경을 천거하였다
유언을 남긴다 “大義는 재산을 축적하지말고, 품성의 함양에 있다”
*요숭의 막내아들(요혁3) 이후, 후손들의 관직진출이 막힌다
큰아들(요이1)의 아들 요굉은 우재상(우선객) 예하에서 근무하던중,
우재상이 투병으로 은퇴할 때, 우선객을 졸라대면서 간곡히 부탁하여
“요혁3(요굉의 막내숙부)을 우재상으로 추천합니다”라는
유표(유언으로 상소문)를 올리게 하였다
이때, 우선객의 아내가 관청에 고발하여 요굉은 처형되고,
멍청한 조카(요굉) 때문에 요혁3은 지방으로 좌천되어 버린다
훗날, 요숭의 증손자 요합(779~840)의 관직이 고작이었다
“신과 같은 적수를 두려워말고, 돼지같은 동료를 두려워하라”
3.禍, 福은 서로 의지한다
@南朝 창시자 송무제(유유 363~422)
*東晋 宋公시절,
시랑 사첨(형, 385~421)의 걱정이 태산같았다
친동생 사회(390~426 궁궐수비 장군)의 권세와 지위가 높아
대문앞 빈객수레가 길목을 가득 채울정도이기 때문이었다
사첨(형)은 사회(동생)에게 “훗날의 우려에 대비하라” 충고하였다
즉시, 동생의 보직해임을 건의하였다
“복이 지나치면 재난이 닥치므로,
쇠약한 가문으로 낮추어 보존케 해주십시오”
*송무제 즉위후(南朝 건국),
사회(동생)에게 개국공신, 좌명공신(중요한 신하)으로 승진시키고,
사첨(형)은 태수로 임명하였으나, 가문과 동생 때문에 걱정이 심하였다
*형(사천)의 유서
“나는 여한이 없는데, 동생이 걱정이다. 나라와 가문을 위해 일하거라”
*齊家, 가정교육(자식,동생)이 기본이다
자식과 동생교육은 은 어려서부터 시작해야 되며, 절대로 늦으면 안된다
@東晋(南朝시대)의 명문가문은 천하를 공유했다
*왕씨, 사마씨, 사씨(사회: 사첨의 동생)
*唐 유우석(772~842)의 詩 “烏衣巷(오의항)”
“지난날 왕씨, 사씨 저택앞 제비가 보통 백성의 집으로 휘돌아 들어오네”
*사회의 증조부, 사거(둘째형 304~327)
동생 사안(302~385)은 東晋의 명재상이었다
*송무제(유유~422)에게는 사회(동생)의 역할이 매우 대단하였다
결정적인 공로(後晋정벌, 정적제거)에 힘입어
南朝시대 송나라를 건국하여 황제에 즉위한다(경호실장)
*형옥관(옥사심사, 재판관)의 투병으로 결근하였을 때,
사회에게 겸직임무를 부여하였는데, 매우 타당하게 처리하였다
@북방이 침범하자, 한족(귀족)은 망명후 근거지를 마련을 위해
*토지를 점유하고, 납세호구를 은폐하였다
*남방교군을 설치하여 점령토지를 합법화하고, 부패가 심각하였다
세금증가로 재정수입의 피해가 가중되었고,
병역자원을 빼돌려 병력부족현상을 초래하였다
*이때, 사회를 파견하여 토단정책을 순조롭게 처리하였다
@사회, 자신의 참화를 스스로 만들다
*사회는 젊어서부터 출세가도로 승진을 해온지라
결정적인 약점은 크게 떠벌리는 절제력 부족함이었다
*송무제(유유)가 죽었다
고명대신(4명)에게 어린 태자를 부탁하였다
당시, 사회(33세)는 晦(회): 자취를 감춘다
韜光養晦(빛을 숨기고 어둠속에서 실력을 기른다)
*송소제(유의부 406~424), 황음무도한 황제가 즉위하였는데,
송소제가 고명대신(사회, 서선지, 부량)에게 불만이 가득하여
고명대신은 합세하여 송소제를 폐위시켜 유배후 암살한다
*송문제(송무제 유유의 아들 407~453)를 옹립하였는데,
어린나이에 고명대신에 대한 공포감이 두려웠던 시기에,
사회의 권력은 더욱 공고화되고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어린황제(송문제)는 고명대신의 제거작전에 돌입한다
사회를 형주지역에 파견하고,
위선지, 부량은 건강으로 보내 중앙정권에 협조와 견제기능을 강화한다
*고명대신(단도제, 노인 장군)의 단단한 군사적 기반을 이간계에 활용한다
*송문제의 반격작전 개시
서선지, 부량을 체포하고
단도제를 출정시켜 사회를 토벌후, 건강으로 압송하여 참수형에 처한다
@형(사첨)의 충고와 우려가 현실(동생 사회의 참수형)이 되었다
*福禍災生 其應無遠(복화재생 기응무원)
“복이 지나치면 재난이 생기는 법, 그 징험이 멀지않은 듯 하라”
*형(사첨)의 동생(사회)에 대한 걱정으로 상소문을 올렸으나,
결국, 사씨가문의 멸문지화를 초래한 것이다
*父兄의 책임이란?
부친이 사망하면, 큰형이 동생의 교육과 지도를 책임져야 한다
늘빛사랑 조흥식
010-3044-8143
0204mpch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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